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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학교발전기금 폐지’를 골자로 한 교육부의 입법예고안이 발표되었다. 98년 음성적 찬조금 문제 해결과 책임경영제를 목표로 학교발전기금이 도입된 지 5년만의 일이다.

이미 많은 현장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음성이든 양성이든 무상교육, 국가책임을 기본 원리로 하는 공교육기관에서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걷어들이는 행위자체를 문제 삼아 왔으며, 이미 입시 과열 경쟁에 자유로울 수 없는 학교 상황과 비민주적 학교운영구조에서 학교발전기금은 이전의 찬조금(직·간접적으로 학부모로부터 돈 걷기)에 합법이라는 거죽을 씌운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지적해왔다.

교육부의 폐지 결정 이후 수요자 논리를 즐겨 사용하고 있는 관변학자와 시장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학교발전기금을 다시 살리려는 흐름들이 엿보인다. 그들이 사용하는 논리들을 잠시 엿보자.

학교발전기금을 바라보는 허구 논리

1. “학교발전기금 문제는 잘못 운영하는 일부 학교의 문제다. 일부 학교의 문제를 일반화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학교발전기금제도는 종전의 음성적인 기부금(찬조금)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

“임원이 되었으니, 돈을 좀 내야 하지 않겠어요. 체육진흥회, 어머니회 회원은 회비를 냅니다.” 어머니회, 육성회, 체육진흥회 등 임의단체를 통한 기금 할당과 강제적 분담은 이미 학교에서 구조화되어 있으며, 사용용도 또한 교사회식비, 교사-학부모 상견례비, 교직원연수지원비, 스승의 날·체육대회 기념품, 자율학습비 등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이런 관행들이 금지되고 있지만, 학교발전기금이 도입되기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찬조금은 사교육비와 마찬가지로 쉽게 잡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교육비가 근본적인 입시개혁과 맞물려 있듯이, 찬조금 또한 정부의 공적투자와 학교운영의 혁신과 맞물려 있다.

98년 학교발전기금이 도입된 이후에도 찬조금 행태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다음과 같은 2000년 교육부 개선안에서 제출된 기금 조성과정의 금지행위들이 현재 학교발전기금의 운영 행태로 일반화되어 있다.

“학생과 교사 동원, 할당, 최저액 책정, 사전 납부 희망조사, 전화·방문·통신문에 의한 직·간접적 강요, 기타 자발적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사항을 법제화한다” -'학교발전기금제도 운영 개선방안', 교육부, 2000년

참교육학부모회의 5월 11일 기자회견에 따르면, 3월 말 이후 5월 초까지 1개월 반 동안 100여 건의 불법모금사례가 접수되었다. 이미 관행화되어 있어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 달 반 사이에 한 단체에 이렇게 많은 신고건수가 들어올 정도만 보더라도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러한 관행화된 구조 속에서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학부모 분담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예로 2·17 사교육경감방안으로 제시된 EBS 수능과외정책은 EBS 수강을 위한 시설설비 보완 비용을 학교발전기금 조성으로 해결하고 자율학습 공간 마련과 감독비를 학부모로부터 갹출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학교발전기금을 모으는 데 있어 이러한 관행에서 자유로운 학교가 몇 개나 될까? 이러한 뿌리 깊은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지적이 타당한 것일까? 현장교사 입장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반론이 있을지 모르나, 현재 학교발전기금에 있어서는 장보다 구더기가 훨씬 더 많다.

2. “단위학교의 책임경영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있어 학교발전기금이 필요하다.”

단위학교 책임경영제의 의미가 교육 활동에 있어서의 현장 자율성을 높이는 개념이 아니라, 재원마련까지 단위학교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개념이라면 이는 공교육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교육은 교육의 사유화에서 공공영역으로의 전환이며, 그렇기 때문에 재원마련과 운영에 있어서의 공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물론 공적통제라는 것인 수직적 관료적 억압과는 구별되며 단위학교 구성원들에 의한 소통과 조율이 가능한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학교발전기금과 단위학교 책임경영제의 억지스런 연결은 공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듯하다. 또한 학교장의 경영능력을 교육활동에서보다 재원조달능력으로 보는 관행과도 무관치 않다. 학교장 입장에서도 다른 학교와의 경쟁적 재원조달에 나서야 하기에 학교발전기금 존재자체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다.

3. “수요자중심 논리로 볼 때 학교발전기금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학교발전기금의 정당화 논리는 교육을 수요자중심으로 보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안인 95년 5·31교육개혁안의 핵심논리가 수요자 논리다. 이 논리는 학생 인권을 억압하고 학생을 대상화시켰던 비민주적 학교운영을 비판했던 학생중심교육을 한낱 소비자의 논리로 대체함으로써 공교육의 개념을 근본부터 바꾸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이 논리는 공교육을 개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출세의 도구로 평가절하하고 소비자의 능력에 따라 상품의 질이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수요자인 학부모들이 자기자식을 위해 돈을 더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가 되느냐?”식의 말들이 교육학자들조차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경이다. 공교육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개론이 있는 학자들이라면 학교발전기금과 수요자의 논리의 억지스런 연계를 거북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4. “학교의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한 불가피한 제도다.”

2001년 학교운영비 현실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더욱 불법적 학교발전기금 전횡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학교 재정이 모자라서라기보다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는 기금마련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3년 기준으로 볼 때, 무상의무교육기관인 초등학교의 기금 조성이 고등학교의 2.5배, 중학교의 4배가 되는 것은 초등학교 재원이 중등보다 모자라기보다 이미 촌지와 찬조금 관행이 중등보다 심하기 때문이다.

동작, 북부교육청소속 초등학교보다 성동교육청 소속 초등학교가 약 3배가 넘는 기금을 조성하고, 강남교육청은 그 이상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있는 상황은 학교발전기금이 학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경쟁적 재원마련 관행에서부터 기금이 조성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대안으로서 국가투자 현실화와 민주적 학교운영

1. 공교육기관의 재정운영은 수요자의 논리가 아닌, 공공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정부의 교육투자가 현실화 될 때까지 학교발전기금을 한시적으로 두자는 논리 또한 양식이 충분해 질 때까지 ‘독 묻은 사과’를 계속 먹자는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보통교육단계에서 무상교육체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조건에서 학부모는 사부담 공교육비, 사교육비외 학교발전기금까지 내야하는 상황을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정부의 교육예산이 좀처럼 늘고 있지 않다. 복지예산 축소와 공공영역 민영화를 골자로 한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현 정부체제에서 교육예산의 현실화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번 학교발전기금 폐지에 따른 조치를 강구하는 데 있어 교육학자와 교육주체들, 그리고 국민들이 학부모에게 짐을 지워주기보다 공교육의 실질적 재정책임의 주체인 정부에게 교육예산의 현실화 요구에 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겠다.

2. 투명성과 교육력을 위해 학교민주화를 앞당기자.

현재 학교발전기금 마련은 구조화된 관행과 학교장의 열성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던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학교발전기금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조화된 관행과 학교장의 독단적 기금조성이 몇 마디의 명문화된 지침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 임의학부모단체가 학부모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교사들의 생각과 무관하게 교장의 독단적 학교운영이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금마련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돈을 만들어 내는 대상으로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는 일반 학부모들의 생각이 공식적으로 소통되고 의결되는 학부모회의 법제화가 필요하며, 이러한 공식적 학부모회의 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들의 잠재적인 교육력들이 억압적인 학교운영구조에 짓눌리지 않고 각각의 판단과 생각들이 존중되고 소통될 수 있는 교직회의 법제화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수요자의 논리를 재정적 차원에서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주체적인 삶의 조건을 형성하고 그들이 목소리가 민주적인 소통을 통해 건전하게 걸러질 수 있도록 학생회가 법제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식적 기구들의 활동구조 마련이 학교의 투명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교육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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