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또 다른 논거는 '고려는 고구려의 후계자가 아니므로 고려를 계승한 대한민국 역시 고구려의 후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사료상으로도 많은 논쟁이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를 위해, 고려 건국 초기 동아시아 국제 사회를 살펴 보기로 한다.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은 새로 수축한 평양성을 북진 정책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이후 고려의 영토는 대동강 이북의 청천강 유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고려는 발해 유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943년에는 발해 세자 대광현(大光顯)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고려-거란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 양국 관계가 냉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란은 947년 후진(後晋, 936~947)을 멸한 뒤에, 국호를 중국식 명칭인 요나라(遼)로 바꾸었다. 한족 출신이 세운 국가는 아니지만, 요나라는 다음 2가지 면에서 정통 중국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 첫째, 요나라의 역사를 담은 <요사>(遼史)가 중국 정사(正史)인 <25사>(二十五史) 안에 편입되어 있다. 중국 역사 체계에서 요나라는 정통 중국 국가로 승인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요나라는 936년 중원의 전략적 중심지인 연운 16주를 획득함으로써 중국 및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점들을 근거로 요나라를 정통 중국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정통 중국 국가인 요나라는 고려와 고구려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그리고 이 문제를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했을까? 당시 요나라가 고려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하는 것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고려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보다도 더 객관적이고 더 신뢰할 만한 것이 된다.

처음에는 고려와 요나라 모두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 자처했다. 지금 같은 역사 전쟁이 당시에도 있었던 것이다. 이른 바 '중세판 동북공정'이라고 할까. 중세판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 전쟁으로만 끝난 게 아니라, 양국간의 물리적 충돌과도 맞물려 전개되었다.

이 점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10세기 후반의 동아시아 형세를 잠깐 검토해 보기로 한다. 당시 요나라의 국제 전략에 있어서 최우선적 관심은 송나라에 있었다. 요나라는 송나라를 압박하기 위해 송나라와 주변 국가들을 갈라 놓는 방식을 취했다. 983년 정안국을 멸한 요나라는, 압록강 연안에 위구(威寇)·진화(振化)·래원(來遠) 등 3개의 성을 수축함으로써 송나라와 여진족의 연결을 차단했다.

그런 뒤에, 요나라는 고려 침공을 결심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첫째, 고려와 송나라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요나라가 송나라를 침공할 때에 고려가 요나라의 배후를 공격할 가능성을 예방하고자 한 것이었다. 둘째, 고려의 북진을 사전에 저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셋째, 고구려 계승권을 확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고려와 고구려의 계승 관계를 부정함으로써, 만주(당시 명칭은 요동) 주민들이 고려에게 충성을 바칠 가능성을 미리 막고자 한 것이다.

정통 중국 국가 요나라도 고려의 고구려 계승 인정

이러한 전략적 판단 하에, 요나라는 993년 제1차 고려 침공을 단행했다. 처음에는 고려 정부 안에서 항복론이 우세했다. 서경 이북을 할양하고 충돌을 막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걸출한 외교관 서희의 활약에 힘입어 고려와 요나라는 적절한 타협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꼭 서희의 외교술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요나라의 군사력이 고려의 군사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면, 요나라가 굳이 외교적 절충을 시도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나라의 국력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 구체적으로 어떤 협상안이 나왔을까?

(1) 고려는 요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는 고려가 요나라를 역내(域內) 패권 국가로 인정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2)요나라는 고려의 고구려 계승권을 인정했다. 고려가 고구려의 정통 후계자임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요나라는 압록강 동안(東岸) 280리의 땅의 대한 고려의 영유권도 인정해 주었다.


2년 뒤인 995년, 요나라는 이러한 협상안을 바탕으로 고려왕을 책봉했다. 요나라가 고려의 고구려 계승을 정식으로 인정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정통 중국 국가로 인정하고 있고 또한 당시의 대표적 중국 국가였던 요나라도 이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고려의 고구려 계승은 당시 국제 사회에서 법적으로 공인된 사실이 된 것이다.

혹 어떤 사람들은 '요나라가 전술적 차원에서 고려의 고구려 계승권(정통성)을 인정해 준 게 아니겠냐'며 이 사실을 평가절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통성은 최고의 명분인 동시에 최고의 실리다. 정통성은 명분과 실리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나라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고려의 고구려 계승권을 인정했을 리는 만무한 것이다.

이처럼, 당시를 살았고 당시를 가장 잘 아는 중국의 요나라가 고려의 고구려 계승을 합법적으로 승인했고 그런 요나라를 중화인민공화국이 계승하고 있다면,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도 고려의 고구려계승을 인정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고려가 고구려의 정통 후계자라면, 고려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대한민국도 당연히 고구려의 정통 후계자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려의 후계자인 대한민국도 고구려의 후계자가 아니'라는 동북공정의 중국 측 논거는 그 존립 근거를 상실하는 것이다. 정통 중국 국가인 요나라가 인정했듯이, 고려는 분명 고구려의 정통 후계자였으며, 그 고려를 계승하는 대한민국도 당연히 고구려의 정통 후계자인 것이다.


관련
기사
[동북공정의 중국측 논거 비판 1]'책봉' 받았다고 고구려가 중국 지방정권 아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