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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를 떠난 것은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이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에이르디르. 터키에서 4번째로 큰 호수가 있는 곳이다. 터키 여행은 보통 이스탄불을 기점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을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시계 방향으로 돌아도 내용 면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었는데, 에이르디르는 그 시계 방향 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이다.

ⓒ 오소희
내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에이르디르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엇갈린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에이르디르? 정말 근사한 곳이죠!”
“에이르디르? 대체 거기서 뭘 했죠?”

이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말해 주듯이, 에이르디르는 훌륭한 자연 풍광을 지닌 조용한 호숫가 마을로서, 그곳에서 무언가 할 일을 찾는다면 딱히 할 일은 없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려 들지 않는다면 에이르디르 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에이르디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멋진 사람들이었다. 자연과 휴식의 의미를 알고 천천히 걷고 느긋하게 사색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에이르디르, 서두름이 필요없는 곳

카파도키아에서 에이르디르까지는 버스로 아홉 시간 거리. 아이와 밤차를 타는 것은 터키에서 처음 시도하는 모험이다. 낮에 이동할 때는 장거리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밤은 또 다를 것이다. 자다가 일어나 쉬를 하더라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는 제대로 받아내기 어려울 것이고, 좁은 좌석에서 불편하게 잠든 아이가 칭얼댈 것은 뻔한 일이다. 하지만 카파도키아에선 밤에만 장거리 버스가 출발하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밤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건 좀 피곤한 일일 거야. 하지만, 에이르디르에 도착하면 멋진 호수가 있단다. 우리 호수에서 보트도 타고 재미나게 놀자. 중빈이가 좀 불편해도 잘 참아 준다면, 엄마는 네가 무척 자랑스러울 거야.”

아이는 자신 있다는 듯 오케이를 외친다. 그러나 밤에 반쯤 잠에서 깬 아이는 언제나 반인반수(?)의 상태가 되므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때마침 버스는 영국인 관광객들로 채워졌다. 이상한 일이다. 순박하고 친절한 터키인들로 둘러싸인 장소에서는 모두가 친구 같고 가족 같아 마음이 편한데, 창백하고 지적인 인상의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그렇질 못하다.

우리를 둘러싼 영국인들의 대화를 들어 보니, 우연히도 대학 교수에, 컴퓨터 엔지니어에, 선생님이다. 현대 예술과 매스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토론 형태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어쩐지 은발의 노교수 부부는 평생 아이를 갖지 않았을 듯하고, 컴퓨터 엔지니어는 아이가 울면 사탕을 주기보다 짜증스럽게 귀를 틀어 막을 것 같은 인상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아이란 천사처럼 까르륵댈 때도 있지만, 작은 악마처럼 울어 젖힐 때도 있는 법. 신참 엄마이었을 때는 공공장소에서 아기가 울기만 해도 당황스러워했지만, 아이가 세돌이 지난 지금, 나 또한 아이와 함께 성숙했다.

향수 냄새 풍기는 예쁜 아가씨가 버스에 올라타서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있다면, 때로는 술 취한 사람이 버스에 타서 토사물을 게워 낼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사람살이임을 깨달은 것이다. 즉, 세상에는 잘 걷고 달리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절룩이는 사람도 있으며,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손을 잡고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 미술과 매스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토론만큼이나 자라나는 아이의 울음소리 또한 소중하다는, 조금은 엉뚱하고도 독자적인 결론을 내리고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그래, 가 보자. 최대한 방어하겠지만, 자다 깨서 우는 건 나도 할 수 없다. 어른도 불편한 야간 버스가 아닌가. 게다가 이들은 모두 여행 중이니, 이들의 여행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편한 에피소드 가운데 오늘 우리가 있을 뿐이다.

버스가 출발한 지 두어 시간 후, 버스 내 조명이 꺼지고 운전석 옆 TV에서 쟝 끌로드 반담 주연의 액션 영화를 상영한다. 아이는 지금까지 한번도 노출된 적 없는 강도 높은 폭력 장면에 "What's that?"을 연발하며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배우들이 때리고 감옥에 갇히고 총을 쏘아댄다.

어른만 보는 영화라고 말해주었지만, 쟝 끌로드 반담이 "으악!" 소리를 지를 때마다 궁금해진 아이는 총알 같이 벌떡 일어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야 만다. 나는 포기하고 눈을 감는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다. 여행이란 여행자에게 좋은 것만 주는 것이 아니며, 여행자가 여행이라는 외부 상황을 항상 통제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날 밤 잠든 아이는 많이 울었다. 비좁은 버스 좌석에서 비 오듯이 땀을 흘렸고, 똑바로 발을 뻗지 못해 계속 칭얼거렸다. 새벽 네 시. 버스에서 내릴 때 아이가 잠결에 내리지 않겠다며 발버둥쳤고, 그 와중에 영국인 노교수의 어깨에 발도장을 찍었으며, 노교수는 심히 불쾌한 표정으로 어깨를 털어냈다.

고된 밤 버스는 잠을 재촉하고

에이르디르 버스 터미널에 내렸을 때, 주변엔 불빛 하나 없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달려드는 빗물에 잠이 확 달아난 듯, 아이는 울음을 뚝 그친 채로 새로운 어둠을 탐색했다. 칼처럼 매서운 바람이 땀으로 흥건한 아이의 옷깃을 파고들었다. 나는 한손으로 최대한 아이를 감싸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커다란 가방을 간신히 주체하면서, 미리 예약한 펜션에서 마중 나올 차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시 밤차는 타지 말자, 결심하면서.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차가운 침대를 파고든다.

“엄마, 피곤하다. 빨리 자자.”

재워 주기 전엔 잘 생각을 안 하는 녀석이 제 입으로 피곤하다 빨리 자자 하니 웃음이 쿡 나왔다. 우리는 비에 젖은 외투를 그대로 입고, 머리 끝까지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아침 아홉시까지 한번도 깨지 않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

테라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주변을 둘러 보니, 너무 외진 곳에 있는 펜션을 골랐다. 에이르디르는 호수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외지다는 것은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밥 한 끼를 사먹기 위해서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펜션 안에 들어 앉아 있으니, 시멘트 정원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완전히 갇힌 느낌이었다.

호숫가로 산책을 나가면서 다른 펜션을 알아보기로 했다. 또, 마침 랄레 펜션에서 자전거를 빌려 준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그 곳에도 들러 보기로 했다. 자전거가 있다면 번번히 아이를 설득하지 않아도 이동하기가 좀 수월해질 것이다. 돌 지나자마자 내 자전거 뒤 보조석에 앉아 시골길을 달리곤 했던 아이는 자전거를 빌린다 하자, 신이 났다.

펜션을 찾아 에이르디르의 큰길을 따라 걷다 보니 결국 호숫가를 따라 걷는 셈이다. 호수는 마치 바다와 같이 넓다. 파도와 백사장이 없는 잔잔한 바다. 가까이 들여다 보니 맑디 맑은 산호색 물에 색색의 둥근 돌들이 가득하다. 호수 건너편 저 멀리에는 흰 눈에 뒤덮인 커다란 산봉우리가 있다. 언젠가 스위스에서 지나치듯 들여다 보았던 호숫가와 모든 것이 너무나 흡사하다.

호수를 끼고 꽤 자주 놀이터가 등장한다. 중빈이 "Wow! It's a playground!"를 외치며 그네로 뛰어간다. 중빈이 평생은 말할 것도 없고, 내 평생에도 이렇게 훌륭한 놀이터 배경은 처음이다. 매일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그네를 타는 아이들의 심성은 얼마나 곱고 넓을까?

ⓒ 오소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랄레 펜션을 물으니 아무도 모르겠단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서인지, 정말로 랄레 펜션을 모르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때마침 점심 시간에 밖으로 나온 한 무리의 고등학생을 만났다. 학생들은 간단한 회화를 할 수 있으리라는 짐작에 그들에게 물었더니 따라오란다. 예쁘고 친절한 두 명의 여고생이 우리를 안내한다. 그들은 함께 걸으면서 마치 영어 회화 연습 상대를 만난 듯 신이 나서 아는 영어를 총동원하여 질문을 퍼붓는다.

“Your favorite color?" (좋아하는 색깔이 뭐예요?)
"How old are you?" (몇 살이세요?)
심지어는 “What time is it?"까지. 그러나 연신 키득대고 깔깔대는 그들이 귀엽기만 하다.

랄레 펜션은 상당히 멀었다. 곳곳에 있는 놀이터마다 들르고 싶어 하는 중빈을 이끌고 4km 가량 떨어진 곳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자전거'를 반복하며 아이를 북돋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게는 멀고도 지루한 길이었다. 중간에 아이가 또 한번 주저앉았는데, 마침 제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 응, 아빠. ……자전거 타러 가. ……근데 너무 멀어. …… 아빠 보고 싶어.”

아이의 입은 뾰로통하게 튀어나왔고, 말투나 표정은 완전히 고자질하는 초등학생의 모습 그대로다. 남편의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고 아이에게 뭐라 말을 했는지, 아이가 금세 힘을 낸다. 무슨 대단한 말을 했는가 나중에 물었더니, 별말 안 했단다. 힘내서 여행 다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아빠랑 토마스 가지고 재밌게 놀자고 했다나…….

마침내 랄레 펜션에 들어가니 입이 떡 벌어졌다. 모든 더블 룸은 원목으로 되어 있고 호수를 향해 커다란 창이 나 있으며, 창으로 새파란 호수가 넘칠 듯 밀려 들어 온다. 딸린 화장실에는 얼룩 한점 없고, 샤워 부스까지 있는 게 아닌가. 대부분의 터키 욕실은 유명무실한 세면대(너무 작아 세수조차 할 수 없거나, 달려 있는 수도꼭지가 고장 난) 하나가 달랑 있거나, 아니면 아예 세면대 없이 벽 중앙에 샤워기 하나만 있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아이 손 하나 씻어 주려면 아이 옷에 물이 다 튀곤 했었다.

JB, 자전거 때문에 한바탕 눈물 바람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는 내일 오겠다며 방을 예약했다. 3일 밤을 묵는 조건으로 하루에 15000원. 언제나 좋은 방을 한눈에 알아 보는 중빈이, 청소부 할머니가 침대 시트를 바꾸는 방에 들어가 눈치도 없이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더니 제 장난감을 침대 위에 늘어 놓으며 자기 방을 꾸민다. 할머니가 침대 시트를 손에 든 채 내게 상냥하고도 곤란한 미소를 짓는다.

"JB, please, GET OUT!"

내가 몇 번을 반복해 불러도 못 들은 척,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전거였다. 그들이 대여한다는 자전거는 오직 한 대뿐이었고, 그나마 주인 이브라힘이 타고 다니는 것을 형편에 따라 대여하는 것이었다(하루 7달러). 그런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이브라힘이 자전거를 타고 나갔단다. 자전거를 타겠다는 일념으로 4km를 걸어온 중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자전거! 자전거……."

아이에게 내일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초인적인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리라. 중빈은 이브라힘이 돌아올 때까지 랄레를 떠나지 않겠다고 있는 힘을 다해 울며 버텼다. 난처한 일이었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아직 랄레에 체크인한 사람들도 아닌데, 다른 여행객들이 쉬고 있는 조용한 펜션에 들어가 소란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 달래도 보고 혼도 내보다가, 마지막 히든 카드를 내밀었다. 그것은 안아주는 것. 골목에 위치한 랄레에서 큰길까지 안아줄 테니 나가겠느냐 묻자, 아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눈물을 닦았다.

여행을 할 때, 내겐 나름대로 지키고자 애쓰는 원칙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최대한 걷는 것이다. 무거운 가방이나 피로한 몸은 모두 내가 짊어져야 할 나의 무게이다. 길 위에서 내가 나의 무게를 느끼며 내 곁에 존재하는 것들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 그것은 여행, 나아가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굵직한 교통 수단은 이용하지만, 나머지는 웬만하면 걷는다. 어느 여행지에서나 택시는 내게 있어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이와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뒤로, 나는 아이에게도 혼자 걷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무척 노력했다. 어떤 엄마들에게는 가베나 오르다 같은 것이 중요한 교육적 선택이 되는 시기에, 나는 아이를 부단히 데리고 다니며 걷게 했다. 열이 높이 오를 때에도 졸음이 쏟아질 때에도 아이는 더 걸을 수 없을 때까지 제 힘으로 걸었다.

같이 놀던 제 또래 친구들이 모두 엄마에게 안겨 걸을 때에도, 아이는 묵묵히 혼자 걸었다. 그때 내가 해 준 것은,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벌써 큰 형아가 다 되었구나 하는 속삭임과 뜨거운 포옹뿐이었다.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주면 훨씬 수월한 상황에서도, 항상 내 자신에게 이렇게 되뇌이며 인내하였다.

여행지에서는 걸어야 한다

'걷는다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다, 높은 곳을 올라갈 때도, 가파른 곳을 내려올 때도, 너는 네 페이스대로 걸으며 네가 가고픈 곳을 선택하고, 네 마음대로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걷는 것에는 언제나 돌아오는 과정이 있다, 돌아올 때의 피로 또한 너의 것이다, 피로를 끌어안으면, 돌아와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지…….'

아이와 나는 되도록 느리게 걸으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는 술 취한 사람도 보았고, 교통사고 현장도 보았다. 새싹이 돋는 봄, 차도를 건너려 애쓰는 애벌레도 있었고, 손발이 얼어 붙는 겨울날 웅덩이에서 그대로 동사한 어미 쥐도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 어느새 애벌레가 차에 치인다며 울음을 터뜨렸고, 동사한 어미 쥐를 묻어 주며 어딘가에 있을 아기 쥐를 위해 과자 봉지를 옆에 놓아 주기도 했다.

부서진 자동차 헤드라이트 조각을 손에 집어 들고, 보지 못한 교통사고를 추측하고, 사고로 다친 사람이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갔을까, 그 사람은 뼈를 다쳤을까, 의사 선생님은 붕대를 매어 줬을까, 그 사람의 가족이 병원으로 찾아 왔을까, 그렇지 않다면 혼자 외롭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의 갈래를 점점 키워 나갔다.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로부터, 사람살이에 필요한 마음씀씀이를 배워나갔던 것이다.

치사하게도, 내가 랄레에서 아이를 안고 고작 십여 미터 내려온 뒤 이제 걸을 준비가 되었느냐고 묻자, 아이는 고맙게도 "I'm ready"하며 품에서 내려온다.

마침 장날이다. 사프란볼루에서 본 것보다 스무 배는 됨직한 커다란 장이 섰다. 싱싱한 원색의 청과물들이 햇빛에 찬란히 반짝거린다. 움직일 수 없는 청과물인데도, 한국의 대형 할인 매장에서 보았던 것들에 비교하니, 살아서 펄떡대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장터 구석에서 오렌지와 사과를 조금 산 뒤,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을 쌓아 놓은 곳을 발견하고 아이에게 1000원짜리 버스를 사 주었다. 녀석의 더 할 수 없이 흐뭇한 얼굴.

장터 옆 식당에 들어갔다. 닭요리(3500)에 밥(1500), 여기에 물(500)과 샐러드(1500)를 곁들이니 금방 하루 숙박료의 반을 넘긴다. 그래도 둘이 먹기엔 여전히 부족한 양. 그래서 하루 한 끼만 아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식당에 들어 오고, 나머지 아침과 점심은 펜션에서 나오는 터키쉬 브랙퍼스트와 길에서 파는 치킨 케밥이나 샌드위치(2, 3천원선)로 때운다. 여행자에게 터키의 체감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숙박비는 확실히 저렴하지만, 기타 식대나 잡비면에서는 조금씩 예상 경비를 초과하고 있다.

식당에서도 중빈의 인기는 대단하다. 이슬람 여인들은 주로 집안에 있기 때문에, 식당은 온통 남자들로 가득한데, 그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담배를 핀다. 식당 전체가 마치 연기로 가득 찬 굴뚝 같다. 그들은 담배 연기를 아이 얼굴에 후우 내뿜으면서 아이가 예뻐 죽겠다는 듯 얼굴을 비빈다.

담배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콜라에 대한 태도와 같다.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도 없고, 관심을 갖는다 해도 그런 것에 대한 정보가 부재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도 한때는 콜라를 귀한 손님 대접에 사용했고, 남자는 성인이 되면 누구나 다 담배를 태우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웰빙이니 몸짱이니 하며 몸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유행처럼 번지는 추세이니, 터키도 오랜 시간 경제발전과 더불어 비슷한 수순을 밟으리라.

펜션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 청남빛 어둠이 깃들고 샛별 두 개가 총총히 빛나고 있다. 사람들 그림자는 하나둘 사라지고, 장이 섰던 자리에 설익은 사과들이 으깨진 채 뒹굴고 있다. 호수 쪽에서, 태풍이 오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 만큼 거세게 바람이 불어온다. 먼 곳의 눈 덮인 산봉우리가 어둠 속에서 두드러지고, 거센 바람은 얼음처럼 차다. 아이와 함께 호숫가로 가까이 가보니, 호수물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커다란 파도가 일고 있다.

"JB, 별님이 뭐라고 하던?"

"We're blown away!(우리가 바람에 날아간다!)"

아이가 먼저, 바람이 센 날이면 우리가 즐겨하는 고정 레퍼토리를 시작한다. 두 팔을 벌려, 오는 바람을 있는 대로 맞으면서 뒷걸음질치는 것이다. 엄청난 바람이 15kg 남짓한 아이의 몸뚱이를 금방이라도 날려 버릴 듯하다. 그러나 아이는 제가 웃을 수 있는 웃음, 제가 들이킬 수 있는 바람을, 온몸으로 웃고 들이키면서 “We are blown away!”를 지침 없이 외친다.

뒷걸음질치던 아이가 이제 그네 위에 올라탄다.

“엄마, 밀어 줘! 아주 높이!”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최악의 날씨에서 아이는 최상의 기분이 되어 놀고 있다.

“그래, 저어기 별님한테 갔다 와.”
“와아- 재밌다!”
“별님한테 갔다 왔어?”
“응.”
“별님이 뭐래?”
“……?”
“그럼 다시 갔다 와.”

있는 힘껏 아이를 민다.

“별님한테 갔다 왔어?”
“응.”
“별님이 뭐래?”
“응, 중빈이 왔어?, 그랬어.”
“그리고 또 뭐래?”
“……?”
“그럼 다시 갔다 와.”

아이가 하늘로 높이 솟구쳐 오르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렇게 아이는 그네를 타고 하늘 높이 별님을 만나러 세찬 바람을 가르고 또 가른다. 나도 아이 옆에 앉아 같이 그네를 탄다. 있는 힘껏 발을 굴러 본다. 그네가 하늘로 높이 향할 때마다, 다시는 내려오지 않을 것만 같다. 이대로 저 까만 우주로, 내 앞에 펼쳐진 이 망망대해의 어둠 속으로, 기꺼이 빨려들 것만 같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 어둠과 별과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와 거기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뿐. 발구르기를 멈추자 그네의 움직임이 약해지고 더욱 거세진 바람이 에이르디르 전체를 뽑아 놓을 듯 뒤흔든다. 나는 아주 어린아이일 때 그랬던 것처럼 그네에서 몸을 뒤로 누이고 머리카락으로 땅바닥을 쓸었다. 아이가 나를 따라하며 우우, 즐거운 소리를 낸다. 우리는 누운 채로 오랫동안 바람의 소리를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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