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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직전부터 높은 산 길가나 숲에 자그마한 꽃대를 세우고 예쁜 꽃봉오리를 내고 있다가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피는 어린 동자승의 얼굴을 닮은 꽃이 있습니다.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진 '동자꽃'이 그 주인공입니다. 꽃말이 '기다림'인 것은 동자꽃의 전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 김민수
강원도의 첩첩산중 조그만 암자에 할배스님과 어린 동자승이 살고 있었단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고 할배스님은 시주를 나가질 못했단다. 긴 겨울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양식이 거의 다 떨어져가니 쌓인 눈을 헤치고라도 시주를 나가야만 할 상황이 되었단다. 봄은 아직도 멀었고 쌓인 눈으로 암자 근처를 서성거리는 산짐승들도 배가 고파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지.

할배스님은 동자승과 함께 마을에 내려가 겨울을 보내고 올까 생각도 했지만 너무 많이 쌓인 눈 때문에 함께 내려갈 엄두를 내질 못했어.
"얘야, 이틀만 참고 기다려라. 마을에 가서 시주를 해 오마."
"네, 스님. 살펴 다녀오세요."
워낙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암자라 마을까지 내려가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렸어. 그런데 산을 내려갈 때 하늘이 흐려지더니 끝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하루 종일 내렸고 스님이 양식을 마련해서 돌아가려고 했을 때에는 허리도 넘게 쌓였다. 할배스님은 길이 막혀 돌아갈 수가 없었단다. 발만 동동 구르면서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 시작하자, 눈도 녹기 시작했단다. 할배스님은 서둘러 암자로 돌아갔어.

암자에 도착한 할배스님은 그만 돌부처처럼 우뚝 서고 말았단다. 동자는 마당 끝에 나와서 스님이 내려 간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앉은 자세로 죽어 있었던 거야. 스님을 기다리다가 얼어죽은 것이지. 스님은 불쌍한 동자를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 주었단다.

그런데 동자의 무덤가에서 이상한 풀들이 자랐고 여름이 되자 그 풀에서 꽃들이 피기 시작했단다. 사람들은 이 꽃을 죽은 동자의 넋이 꽃이 되었다 하여 '동자꽃'이라고 불렀데.


ⓒ 김민수
꽃말 '기다림'과 잘 어울리는 꽃의 전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 꽃의 전설을 읽으면서 떠올린 암자가 있지 않으신지요. 제가 떠올린 절은 2001년 작고하신 영원한 소년 정채봉 시인의 작품 중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진 <오세암>입니다.

'오세암'은 신라시대 설악산에 불원을 개척한 자장율사가 장경을 전하고 구운의 대도를 찾고 서 선덕여왕 13년(644)에 창건한 암자입니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뒤에 중건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김시습, 조선중기에 불교 부흥을 꾀했던 보우, 근대에는 스님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도 머물렀다고 합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오세암>은 길손이와 눈먼 소녀 감이, 설정스님이 주 인물입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는 길손이의 소원은 한번만이라도 엄마를 보는 것입니다. 엄마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감이와 길손이는 추운 겨울이 시작되려는 즈음 설정스님을 만납니다.

사고뭉치 길손이가 순식간에 조용한 절을 뒤집어버리지만 오히려 그 길손이의 행동으로 인해 조용하던 절은 활기를 찾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면 엄마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어떻게 하면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는지' 고민을 하던 길손은 설정스님이 겨울 양식을 준비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가 혼자 암자에서 잠든 날 자신을 품에 안고 정성스럽게 토닥거려주는 손길을 느낍니다. '이런 따스함이 엄마의 품일까….'

폭설로 인해 눈이 녹은 봄에야 암자에 돌아온 설정스님은 엄마의 품에 안긴 것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죽은 길손이를 발견하게 된다는 슬픈 줄거리입니다.

동자꽃은 모두 다섯 장으로 되어 있는데 잘 보시면 한 장마다 심장(하트)의 모양을 닮았습니다. 심장의 모양이 상징하는 바가 '사랑'이니 어쩌면 사랑하는 엄마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하던 길손이의 마음을 담고 피어난 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민수
저는 동자꽃을 보면서 '그리움을 가득 담아 핀 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배스님,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꽃으로 피어난 아이, 그 동자꽃에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이 들어있는 듯했습니다.

영원한 소년 정채봉 시인은 이런 것들을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비 온 뒤에 한 켜 더 재여진 방죽의 풀빛을 사랑합니다.
토란 속잎 안으로 숨는 이슬 방울을 사랑합니다.
외딴 두메 옹달샘에 번지는 메아리결을 사랑합니다.
어쩌다 방 웃목에 내려오는 새벽 달빛을 사랑합니다.
화초보다는 쑥갓꽃이며, 감꽃이며, 목화꽃이며, 깨꽃을 사랑합니다.
초가지붕 위에 내리는 새하얀 서리를 사랑합니다.
무 구덩이에서 파낸 무들의 노오란 순을 사랑합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왔다는 담양의 그 죽순을 사랑합니다.
고향의, 해질 무렵이면 정강이에 뻘을 묻히고 돌아오던 건강한 수부들을 사랑합니다.
지나가는 걸인을 불러들여 먹던 밥숫가락을 씻어서 건네 주던 우리 할머니를 사랑합니다.

<정채봉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서>

그가 사랑하던 것들 중에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 죄다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압니다. 그런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려면 어떤 강을 건너야 하는지, 어떤 아픔들이 있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 줄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것의 실상을 보기까지는, 삶으로 살아가기 전까지는 피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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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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