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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을 앞두고 있는 시간에 딸애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아빠, 엄마 지금 병원에 갔는데, 나영이랑 옥상에서 놀다가 나영이 양말이 더러워져서 같이 빨았거든! 그러니까 엄마한테 말해야 돼!"
뜬금없이 앞뒤 자르고 전해 온 아이의 전화 내용으로 봐선 무슨 사고를 친 모양인데, 미리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려니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엄마는 병원에 갔고, 아빠가 귀가하는 시간하고 맞아떨어지려니 생각하고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의 기대와 달리 사무실 직원들과 저녁을 함께 하고 밤 11시쯤 해서 집에 돌아갔더니 애 엄마가 하는 말이, "욕실에서 논다고 온통 거품을 풀어놓고 난리를 폈어요"하고 투덜대는 것이었습니다.
"아냐, 나영이 양말 더럽다고 같이 빨았대!"하고 아이의 말을 전하자, "양말 하나 넣고 세탁기 돌리는 게 나았겠다"라며 받아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가 스스로 빨래를 할만치 자랐다는 게 어디냐며 아이 편을 들었습니다.
아이의 자라는 모습은 아이들과 애엄마가 나누는 이야기들을 적었던 노트를 펼쳐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 이맘때에 적었던 글을 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작년 7월 기록****
집에 들어서는 순간 딸아이가 와락 달려들며, “아빠, 아빠방 제가 깨끗하게 정리했어요”하며 으스댔다. 그러자 집사람이 나서며 하는 말이, “은혜는 바닥만 닦고, 제가 정리를 다 했어요”하며 아이의 으스댐을 가로막았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 아이들에 의해 늘 어지럽혀져 있던 서재가 말끔히 정리가 돼 있었다. 아마 집사람이 아빠방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며 청소를 한 모양이었다.
집사람과 딸아이의 실랑이는 잠시 후 다시 이어졌다. 아이가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혼자 노래를 하다가 뜬금없이, “아빠, 15는 파이브틴(fiveteen)이 맞지?”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집사람은 “15는 피브틴(fifteen)이야!”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제 여섯 살 밖에 안 된 딸아이는 영어를 따로 공부해 본 적이 없지만, 아빠랑 있다보면 영어를 들을 기회가 많다보니, 영어에 흥미가 있었는지 혼자 영어를 공부한답시고 달려들었는데, 영어가 영 못 마땅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지 여러모로 따지고 들었다.
“아냐, 14는 포틴(fourteen)이쟎아! 그리고 21은 twenty-0ne이고, 24는 twenty-four이고, 25는 twenty-five쟎아. 그러니까 15는 파이브틴(fiveteen)이지.”
딴에는 제법 논리적으로 엄마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영어에서 불규칙변형이 있다는 얘기를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 엄마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웃기만 하더니, “너, 그거 읽어 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딸아이는 곧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빠, 이거 노래할 수 있어?” 사실 딸아이는 알파벳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단어를 읽을 줄은 모른다. 엄마의 판정승이었다.
둘의 신경전은 잠시 후 옥상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이어졌다. 딸아이는 선교원에서 훌라후프를 배운 후, 이것 저것 시도를 해 보고, 엄마 아빠에게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곤 엄마에게 권한다. “엄마, 이렇게 해 봐” 엄마는 그 정도쯤이야 하듯 대뜸 훌라후프를 받아들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일단 훌라후프가 작은데다 오랫동안 운동을 안 했던 사람이 쉽게 될 리 만무하다.
여기서 딸아이의 당돌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엄마, 운동 좀 해.” 그러자 엄마는 “재미없어. 자전거나 탈래”하며 훌라후프에서 신경을 꺼 버린다. 일이 싱겁게 돼 버렸다.
옥상에서 내려온 후, 샤워를 마치고 포도를 먹으면서 집사람에게 딸아이의 단어조합 아이디어의 기발함과 운동신경이 많이 좋아졌음을 전하자, ‘커가면서 다 그렇지’ 하는 투다. 하루종일 여섯 살 난 딸아이와 세 살배기 아들 녀석과 씨름하는 집사람이고 보면, 하루에도 별별 일을 다 겪었을 테니, 도통한 수준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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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한 집사람과 당돌한 딸아이를 늘상 볼 수 있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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