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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며 가는데 한 차량이 우리 차가 가고 있는 차선에 끼어들더니 급히 옆 차선으로 비켜간다. 마치 두 차선을 밟아 트위스트를 추고 빠지는 것 같았다. 옆 자리의 아내가 말했다.

"저, 저, 저런."

그날은 오전에 비가 왔다. 비가 멎은 뒤의 여름 습기가 대기에 가득했다. 별다르게 마음 상하는 일이 없다 해도 왠지 짜증이 날 것 같은 날이었다. 평소에 다른 사람의 난폭 운전을 관대하게 봐 넘기며 핸들을 잡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보나마나 뒤따르던 그가 내 운전 태도에 기분이 상해 저지른 일이거나 다른 차의 영향으로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전 중에 해코지를 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다른 차 때문에 속도가 더디어진 그의 차량 옆에 차를 붙였다. 그리고 나서 큰 뜻 없다는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20대 중반쯤 돼 보였다. 그의 입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입 형태로 보아 욕을 하는 모양이다. 옆자리의 아내가 질타했다.

"나쁜 자식."

청년은 다시 재빠르게 내 차 앞으로 끼어들어왔다. 사고 일촉즉발이었다. 참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봉고차 속의 청년에게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묻고 싶었다. 젊은이가 모는 차 옆으로 차를 바짝 붙였다. 젊은 친구도 나보다는 운전 솜씨가 덜하지는 않다는 듯 30㎝까지 가까이 왔다.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얼마나 이런 일을 보고 경멸했던가. 빼도 박도 못하는 어떤 사건에 걸려든 느낌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얼굴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입을 사정없이 열어 무어라고 우리 쪽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 표정으로 봐서는 이제는 차량끼리 부딪쳐 사고가 나든지 아니면 도로 구석에 차를 정차해놓고 원인을 가릴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청년이 먼저 도로 가에 차를 붙이라고 차유리를 내려 말했다. 그가 우리 차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고, 우리 역시 그의 차 뒤에 곱지 않게 바퀴를 멈췄다. 청년이 그의 차에서 내리자마자 휴지 뭉치를 들어 내 차쪽으로 향해 던졌다.

"야 이 새끼야."

그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드러나 있었다.

"뭐?"
"이 새끼라고 그랬다. 왜?"
"왜 이 새낀데."
"왜 차를 그 따위로 모냐."
"어떻게 몰았는데."
"천천히 갔단 말야 이 ×××야"
"천천히?"

그가 몰았던 봉고차를 힐끔 봤다. 차 속에 무엇이 잔뜩 쌓여 있다. 짐작이 되었다. 배달 차량이었다.

"나는 그렇게 차를 천천히 몰지 않았어. 이 인간아! 단지 앞차와의 간격을 벌렸을 뿐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위험하게 끼어들어 와."
"내가 언제 끼어들었다고 그래."
"언제?"
"그래 언제?"
"이 사람이 정말!"

이쯤 되면 이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게 된다. 상대가 먼저 거짓말을 했다. 한쪽은 어떤 사실에 그렇다 하고, 다른 한쪽은 그 행위를 부정하겠다고 하면 아니 우기면, 대화는 원 모양의 레일을 도는 장난감 기차처럼 된다.

"치사한 놈."
"뭐 치사한 놈?"
"그래, 치사한 놈이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청년의 주먹이 내 쪽을 향해 날았다. 재빨리 나는 고개를 비켰다. 작은 오차로 청년의 주먹이 내 왼쪽 광대뼈 부근을 스쳤다. 그의 허점이 순간적으로 내 눈에 잡혔지만 나는 기회를 살리지 않았다. 청년 시절 나는 키가 작기는 했지만 운동깨나 했었다. 미미하나마 그 실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편이다.

잠시 그가 이렇다 할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휴전으로 보였다. 침묵이 흘렀다. 이대로 싸움이 끝날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청년이 전열을 가다듬었는지 입가에 백태까지 드러내며 이번에는 손 동작까지 써가며 전투를 다시 개시했다.

나는 귀담아 듣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내가 우리들 사이에 끼어들어 청년과 입싸움을 벌인다. 청년은 싸움의 원인을 따지려는 의지가 없었다. 싸움의 원인을 찾아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 보려는 의지는 애당초부터 없는 듯했다. 악감정만 충만했다.

사려를 하고 싶었다. 이 꼴이 뭔가? 얻은 것 하나 없을 이 전투를 꼭 치러야 하나. 따져 보면 홀로 모범적으로 운전을 하는 듯한 나의 태도에서 이 청년은 화가 났을 것이다. 나는, 교통 흐름을 방해할 만큼의 거리를 둔 것도 아닌데 청년이 나를 향해 당돌한 운전을 한 것이 불만이었다.

청년은 나보다 스무살은 더 어려 보였다. 차를 몰다 시비가 일게 되면 나이 값을 쳐 상대방 운전자에게 대접을 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문득 이 싸움은 이겨 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거머쥐었다. 112를 눌렀다. 그 틈에 아내와 말다툼을 벌리던 그가 내 통화 내용을 들은 모양이다.

청년이 말했다.

"너 경찰 불렀니? 야, 경찰! 그래, 너 경찰 좋아하신다. 니가 그렇게 잘난 놈이야. 나 바빠서 이만 실례하니까 다음에 봐. 이 ×××야."

청년은 내 동의도 없이 차로 가 시동을 건다. 그러더니 우리가 '어어'하는 사이 가버렸다.

경찰이 도착하면 싸움이 끝났다고 대답할 생각을 하며 나 역시 아내를 옆 좌석에 태워 차의 시동키를 돌렸다. 한참 후 나는 112에 다시 전화를 걸어 조금 전에 신고한 내용은 해결이 잘 되었으니 오지 말라는 얘기를 사과의 말과 함께 했다.

"청년은 분별도 사리도 없어요."

아내가 말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년 역시 지금쯤 어디를 가며 바쁜 와중에 나라는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날 오후 남은 시간 동안에 우리 부부는 그날의 그 일을 화제로 삼지 않았다. 어쩐지 그런 요량들을 견뎌야 하는 세대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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