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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민주노동당 당선자 초청강연 내용을 '짜깁기' 보도로 왜곡한 것으로 드러난 <조선노보> 15일자 기사.
ⓒ 조선노보 PDF

'조선일보식' 편파·왜곡의 전형으로 지적돼온 '짜깁기' 보도가 <조선노보>에서도 재현된 것인가.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자 17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조선일보> 노조 강연을 둘러싼 파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노 총장 강연 요지를 담은 <조선노보> 기사가 짜깁기 보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노보는 특히 조선일보와 관련한 발언에서 비판적인 내용은 대폭 뺀 채 덕담 수준의 호의적인 표현을 집중 부각해 강연 취지를 왜곡시켰다. 이로써 조선노보 역시 조선일보의 '짜깁기' 보도행태를 탈피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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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닷컴>이 지난 15일 오전 게재한 「"조선은 주장 강해… 변화 흐름 읽어야"」 제하 기사에 딸린 노 총장 연설 동영상을 확인한 결과, 조선노보는 거두절미 인용으로 강연 맥락을 변질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조선닷컴에서 제공중인 동영상은 초청강연 44분 26초짜리와 질의응답 29분58초짜리로 이뤄져 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의 11일 노 총장 초청 특강은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그중 주요 내용의 1시간 15분여 정도가 동영상에 담겨 있다.

▲ <조선닷컴>은 15일 노회찬 당선자 초청강연의 주요 내용을 담은 동영상으로 게재했다.
ⓒ 조선닷컴 화면
'30년 독자'와 '품질론'의 진실

우선 노 총장 발언 중 가장 논란을 일으켰던 '30년 독자'와 '품질론'의 경우 발언취지가 왜곡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덕담을 곁들인 인사성 발언이 거두절미된 채 인용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30년 독자'와 '품질 때문에 (조선일보를) 본다'는 발언이 겹치면서 노 총장은 졸지에 아주 오래된 '조선일보 품질론자'가 돼버렸다.

'30년 독자론'은 노 총장이 중2학년 때인 1970년 조선일보를 처음 보게 됐다는 말에서 비롯됐다. 노 총장은 "그때부터 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보고 있다, 수배중일 때도 봤고 감옥 안에서도 봤다"고 덧붙였다.

노 총장은 이외에도 72년 유신 선포일 구입한 조선일보 가판을 역사의 기록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연, 고교 시절 선우휘 조선일보 편집국장에게 강연을 요청했던 일화 등을 중간중간 곁들였다. 이들은 결국 '조선일보에 얽힌 노 총장의 개인사'로 엮어 소개됐다.

그런가 하면 확연한 논조 차이로 인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을 동시에 집에서 보고 있다는 설명도 되레 오해를 샀다. 노 총장은 "왜 두 신문을 보는지는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고 말한 뒤 "조선일보 보면 안 된다는 운동을 할 때도 동요하지 않고 봤다"고 이어갔다.

또 "필요하고 습관이 오래 돼 있으며, '기사품질' 때문에 본다"며 "근간에 와서 볼 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정도가 기사 품질이 제일 낫지 않느냐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논조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논조이기 때문에 본다, 한겨레신문은 다른 데 안 나는 게 있는가 체크하기 위해 본다"는 다음 설명은 아예 묻혀버린다. 노 총장은 "(한겨레와 다른) 논조 때문에 조선일보를 본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조선일보 보면 안된다는 운동을 할 때도 동요하지 않고 봤다'고 말했지만 그 취지는 '변함없는 애독자'로 변질된다.

조선노보는 이를 "그는 자신이 조선일보를 보는 이유에 대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조선일보의 논조는 내가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볼 필요가 있고, 품질에 있어서도 제일 낫다는 생각에서 조선일보를 보고 있다"고 옮겨 적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정도가 기사품질이 제일 낫지 않느냐'는 대목에서 <중앙일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또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같이 본다는 언급도 전혀 없다.

같이 언급된 경쟁지 중앙일보는 쏙 빼고

노 총장은 강연 내내 "우리 사회가 큰 흐름에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약진 등 17대 총선 성과도 수십 년간 계속된 한국사회 변화의 결과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따라서 지난 두 번의 대선과 17대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한나라당 등 기득권 세력의 침몰도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노 총장은 이런 맥락에서 조선일보 지면과 논조에 대해서 여러 번 '쓴소리'를 했다. 정치면의 경우 세태변화에 기민하면서도 세상 변화를 못 읽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대 흐름을 쫓는 조선일보의 변화를 일관되게 촉구했다. 신문사로서 정도를 넘어선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는 문제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노보는 자사 논조 및 보도태도를 조목조목 비판한 내용 대부분은 소개하지 않았다.

노 총장은 "조선일보가 주요 사안에 특정 입장을 표출할 때 보면 신문사인지 '조선일보당'인지 모르겠다"면서 "언론의 입장을 넘어서 우리 사회에 조선일보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게 너무 세다"고 표현했다. 그런 차원에서 수재민 돕기나 아름다운 가게 등 사회캠페인에 신문이 나서는 것도 좋지 않게 본다고 전했다. 요즘 빈곤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에도 신문사 주장이 너무 강하게 흐르고 있다고 풀이했다.

총선 기간 문성근, 명계남씨의 잡탕론, 분당론이 언급됐을 때도 예로 들었다. 노 총장은 "그때 조선일보는 면 배치도 주요하게 하면서 이를 대대적으로 다뤘다"면서 "무슨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다루면서 열린우리당이 매우 불완전한 당으로 보이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대로) 그런 분당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는 단언했다.

▲ <조선닷컴>이 제공한 노 당선자 강연 동영상과 <조선노보>의 기사내용은 큰 차이가 난다.
ⓒ 조선닷컴 화면

"민주노동당은 '더 크면 안된다'는 의지까지 느껴졌다"

노 총장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보도태도의 문제점도 제시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이 이문옥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해 왜곡보도조차 하지 않을 때 "무시를 넘어서 너희는 크면 안돼'라는 의지로 읽혀졌다"고 혹평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같은 당은 '더 크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민주노동당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게 아닌가 느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4.15 총선 혹은 4월 2일 후보등록 이전과 이후 조선일보의 민주노동당 보도태도는 해명이 필요할 정도로 급변, 급증했다고 노 총장은 지적했다. 달라져도 점진적으로 변해야 하는데 너무 급격하게 보도량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노 총장은 농반진반으로 "조선일보의 민주노동당 기사량 자체에 불만 없는 게 처음"이라는 말로 빗대며 "조선일보는 이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노 총장은 조선일보뿐 아니라 동아일보 보도태도에 대한 불만도 나타냈다. 노 총장은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는 '조중동'에 그 문제의식의 뿌리가 함께 있다"면서 "지난 2∼3년간 동아일보 정치면을 보면 동아일보 인터뷰 거부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조선노보는 이 역시 "문제의식의 뿌리에는 조중동에 대한 문제제기가 함께 있는데 왜 하필 중앙과 동아는 놔두고 조선일보만 거부하냐, 그게 모순이란 것도 알고 있다"는 대목만 뽑았다.

"<조선> 주식 상장으로 다원화...인터뷰 거부는 당론"

노 총장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 편집권 독립, 소유지분제한 등 민주노동당이 총선 전 밝힌 언론개혁에 대한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노 총장은 다원화 측면에서 조선일보 주식상장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절대적 지배주주 구조가 언론발전에 바람직한가라는 질문도 던졌다.

하지만 시장점유율 등과 관련, "신문시장과 배급체계에 문제가 꽤 있는 것은 인식하지만 시장점유율 몇% 등으로 구획을 정하고 제한하는 것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 전에 선행될 과제가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노보는 소유지분 제한과 조선일보 주식상장, 신문시장과 배급체계의 문제 등에 대한 언급은 뺐다. 대신 조선노보는 "(일부의 주장처럼)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을 과연 몇 프로 몇 프로로 구획을 정할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해선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묘사했다.

이어 민주노동당의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 방침에 대해 "초창기부터 당론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답했다. 노 총장은 이와 관련, "정당과 신문사의 관계에서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취재는 허용하면서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도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조선일보 보도태도와 논조에 대한 강한 반대의식이 표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맥락도 퇴색됐다. 조선노보는 민주노동당의 인터뷰 거부 방침이 세워진 배경과 그 전제 등에 대한 노 총장의 설명은 생략한 채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관계로 넘어가기를,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쌍방이 더 적극적이고 좋은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며 이제 적극적인 모색을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발언만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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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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