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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받았던 공안과 복도 표지판
ⓒ 김형수
2002년 1월 22일, 남녀 대학생 두 명이 서울 세종로 이순신 동상에 올라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그들은 30분 동안 동상 앞을 지키다 소방관들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이 일로 동상 아래에서 도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이던 휠체어 장애인들과 대학생들, 활동도우미들과 목발을 짚고 취재를 하던 내가 연행됐다.

다음날, 대학생들은 즉결심판으로 벌금을 내야 했고 나는 불구속 입건되었다.

나는 종로경찰서 수사2계 조사에서 취재 중이었음을 주장하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과 녹음기, 사진기 등을 내밀었지만 이런 정황증거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점과 과거 대학생 시절 같은 수법으로 공모한 적이 있지 않느냐는 의심, 이순신 동상에 올라간 학생 중 한명이 같은 학교 후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 2년 뒤인 2003년 12월, 난 다시 서초동 공안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5월 7일 속달 우편으로 받은 법원 명령장
ⓒ 김형수
검사는 "목발로 전경을 때리지 않았느냐"고 집요하게 캐물었고, 나는 "목발이 다리인데 어떻게 때릴 수 있겠냐"며 취재중이었음을 강변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가 나의 신분을 확인해준 뒤에도 검찰의 추궁은 계속되었다.

결국 올해 초 다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고, 결국 경찰은 그 당시 나를 연행한 전경까지 다시 불러 검찰이 원했던 진술을 받아냈다.

그리고 어제 5월 6일 오후 늦게 속달우편 한 통이 배달되었다.

서울지방법원 약식명령이란 제목의 그 우편물은 2002년 1월 이순신 동상 점거 농성 주동자 및 피고인에게 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한다는 공소 사실을 담은 법원 명령서였다. 집시법 제16조 제2항 위반과 일반교통방해죄가 내 죄목이었다. 게다가 2000년 에바다 투쟁으로 받은 기소유예 처분이 더해져 나는 다른 사람보다 좀더 무거운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를 그 사건에 대한 주동자 및 피의자로 몰아 벌금형을 내린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난 무죄다. 사건 당시 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사건을 취재했을 뿐, 이순신 동상 점거 및 도로 점거를 하며 농성을 벌이지 않았다. 검찰은 나에게 구호를 외치면서 농성을 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잡아가지 말라"고 외쳤을 뿐이다.

과거 내가 그와 비슷한 투쟁을 한 적이 있고, 그날 시위한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고 해서 나를 주동자로 모는 것은 명백한 '연좌제'다. 만약, 내가 장애인으로서 그 시위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 기자를 인정하지 않는 검찰의 차별에 불과하다.

당시 나는 기자증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 여러 차례 신분을 확인해 주었고, 취재 증거도 충분했다고 본다.

내가 장애인이어서 내 취재 활동 및 기자활동을 인정받을 수 없다면 난 벌금을 내지 않을 것이다. 정식 재판을 통해 기자신분을 확인받을 것이다. 그래도 법원이 내 취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당당히 감옥살이를 하러 스스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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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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