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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의 지하철인 메트로 MALOSTRANSKA 역
ⓒ 배을선
3월 15일. 갑자기 찾아온 봄에 유럽대륙이 기지개를 폈다. 새벽 6시 30분 오스트리아에서 체코로 떠나는 기차는 따뜻한 봄날씨가 반가운 듯 엔진소리를 드높이며 달렸다.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 한 곳인 프라하. 날씨는 맑고 따뜻했지만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체코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영 여행사 '체도크'에서 690코로나를 주고 산 '프라하카드'는 기쁨보다 우울함을 먼저 안겨주었다. 3일 동안 프라하 시내의 모든 대중교통 수단(지하철, 버스, 트램)을 이용할 수 있고 프라하의 국립관광지를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카드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카드나 잘츠부르크카드에 비하면 할인혜택도 적고 사용방법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벌금을 내다니...

프라하의 지하철은 오스트리아나 기타 다른 유럽의 도시처럼 본인이 스스로 티켓을 펀칭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3일짜리 카드나 일주일, 한 달 기간의 교통카드는 특별히 펀칭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스트리아 시스템만 믿고서 프라하의 지하철로 내려간 게 실수였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자마자 사복차림의 경찰이 다가와 티켓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티켓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400코로나를 벌금으로 내라고 요구했다. 펀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인 친구 사오리와 나는 "관광객이라 지하철 펀칭시스템을 알지 못했고 방금 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 펀칭을 하겠다(오스트리아에서는 100번이나 가능한 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체코어로 무조건 400코로나를 내야 한다며 우리의 티켓을 그의 지갑 안에 넣어버렸다.

이리저리 설명해도 전혀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우리의 사정이 딱했는지 지나가는 체코 아줌마와 아저씨가 사복차림의 경찰에게 좀 봐주라고 특별한 부탁까지 해주었으나 끝끝내 그의 강건한 태도를 굽히지 못했다.

경찰서에 갔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티켓을 샀으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일본인 친구 사오리와 나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는 경찰서에 가면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며 경찰서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러나 경찰서에는 한 명의 경찰, 그것도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경찰이 있을 뿐이었고 우리는 억울하게도 400 코로나를 벌금으로 지불해야만 경찰서를 나설 수 있는 처지에 몰렸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우리가 잘못이지'라고 생각하면 더욱 우울해질 뿐이다. 차라리 계속 화가 나 있는 게 나았다.

▲ 황당한 벌금건을 기사화하겠다는데도 아주 자랑스럽게 포즈까지 취해준 체코 경찰.
ⓒ 배을선
400코로나는 13유로 정도로 2만원 정도의 돈이다. 까짓 것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체코를 여행하는 배낭여행객에게 있어 400코로나면 웬만한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4번이나 할 수 있는 돈이며, 이 돈 역시 체코인들에게는 만만한 액수는 아니다.

프라하의 관광지를 둘러보기도 전에 벌금부터 내야 하다니. 돈이 아까웠냐고?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분이 나빴던 것은 프라하의 사복경찰들이 관광객을 위주로, 특히 돈이 많아 보이는 아시아인(일본, 한국인)들을 겨냥한다는 것이다. 지하철 내를 돌아다니면서 이날 하루만 5번이나 티켓 검사를 강요당했다.

아시아인은 봉이다

그리고 5번 이상 아시아인들을 검사하는 사복경찰 차림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화가 치밀었던 것은 펀칭은 고사하고 티켓이 없어 당황해하는 체코인들을 '우리나라 사람이니'하며 그냥 보내주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였다. 자기네 사람들에겐 자비롭고 관광객들에겐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체코 경찰 앞에서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오직 경찰뿐일까?

오후에 있었던 불쾌했던 벌금건을 잊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레스토랑. 체코의 맥주는 정말 맛있고 싸며 음식 또한 훌륭했다. 그러나 그 유쾌함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기어코 발생하고 말았다.

500ml 생맥주가 20코로나(900원 정도), 99코로나(4500원 정도)의 튀긴새우요리, 다 합쳐 119 코로나의 음식을 먹고 10% 정도의 팁을 계산해 130코로나를 지불할 것을 웨이터에게 말했으나 웨이터는 140코로나로 계산을 했다. 계산이 틀려 얼마의 팁이 웨이터에게 지불되었는지를 묻자 20코로나가 자신의 팁(사실 그는 21코로나를 팁으로 가져갔다)이라고 했다. 119코로나의 음식을 먹고 21코로나를 팁으로 지불하면 18% 정도의 팁이 되는 셈이다.

체코에서는 웨이터가 팁을 정한다?

어처구니없는 계산에 놀란 나는 체코의 팁 시스템에 대해 물었다. 웨이터의 위풍당당한 대답은 이러했다.

"음식값엔 팁이 포함되지 않고 21코로나도 얼마 되지 않는 돈이잖아요?"

황당한 나는 "그래도 팁은 손님이 정해서 주는 건데 체코에서는 웨이터 맘대로 팁을 정하나 보죠?"라고 물었고, 그 웨이터의 대답은 정말 기가 막혔다. "네, 체코에서는 웨이터가 팁을 정해요."

웨이터가 팁을 정하는 나라는 아마도 체코뿐일지 모르겠다. 이와 같은 일은 프라하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에게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는 체코의 바츨라프 광장과 국립 박물관
ⓒ 배을선
프라하가 갖고 있는 신비한 매력 덕분에 다른 동유럽의 도시에 비해 상당히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온 체코인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관광객들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듯하다.

80년대 한국이 외국인들에게 택시 바가지요금을 씌웠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한 달만 지나면 EU 회원국이 되는 체코이기에 기대만큼 실망이 컸던 게 사실이다.

프라하의 문화유산이나 자연경관 등은 결코 서유럽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관광객들을 봉으로 여기는 미숙한 국민성이 여전히 잔재한다면 그 누가 프라하를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기억할까.

여행이란 잘 가꾸어진 도시의 표면을 훑는 게 아니라 숨겨진 구석구석과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체험하는 데서 더 강한 인상을 받기 마련이다. 관광용 미니버스를 타기보다는 직접 부딪히며 지하철을 타고 버스에 오르고 작은 골목길을 걷고 그들의 음식을 맛보고…. 그러나 프라하의 첫날은 그 체험에 도전한 여행객에게 솔직히 실망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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