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그 울창하던 당숲을 가로질러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만들었다.
ⓒ 김대호
늙은 느티나무 냄새를 맡아 본적이 있는가? 그것은 잘 숙성된 두엄 덕에 살오른 흙 냄새 같기도 하고, 때때로 인이 박힌 자판기 커피 향처럼 목젖을 기분 좋게 간지럽히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 냄새를 참 좋아했다. 어른들은 그것이 당산나무라 함부로 하는 것을 떨떠름하는 편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이 늙은 나무는 최고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나무에서는 까치를 비롯해 서너 마리의 새들이 집을 지어 겨울을 나고, 여름이면 매미와 반딧불이가 밤낮을 바꿔가며 서로 주인 노릇을 하려 하며 다시 가을이면 단풍 사이로 나비들이 고치를 품었다.

▲ 임진년, 피흘리던 당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신 제각
ⓒ 김대호
그러나 느티나무가 항상 그 넉넉한 어깨 가지들로 아이들을 품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이 절정에 이를 즈음, 나무는 발정기를 놓쳐 뒤늦게 수태할 대상을 찾는 늙은 암염소처럼 노릇한 암내를 풍겨 야멸차게 아이들을 밀어내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첫 몽정을 겨우 마쳤을 동네 형들은 그 냄새가 싫지도 않은지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또 이때쯤이면 어른들은 어김없이 나무에 금줄을 쳤고, 주변으로는 황토로 원을 그려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철없는 아이들이 나무에 오르려 금줄이라도 건드릴 양이면 어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작대기를 들고 고함을 질러댔다.

공동 우물에도 금줄이 쳐졌고, 아낙네들은 수백 미터는 족히 떨어졌을 개울로 물 길러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바로 정월대보름 풍경이었다.

▲ '전쟁이 당할머니를 떠나게 했다'는 신귀봉 할아버지
ⓒ 김대호
완도군 약산도 당목리에 가면 하늘까지 가린 느티나무 수십 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당숲이라고 하여 매우 신성시 여긴다. 전국 어느 시골마을에 간들 당산나무를 중이 여기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이 마을 사람들의 당산나무 사랑은 유별나다.

전해 내려오는 설에 따르면 300여 년 전, 이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 숲 주변으로 배수로를 파는데 알 모양의 둥근 바위돌이 나왔단다. 그런데 이 바위에 괭이질을 할 때마다 피를 '똑똑' 흘리더라는 것이다(아마 임진왜란 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쪽에서도 둥근 바위 하나가 나왔는데 그 바위도 만찬가지였더라는 것. 이를 두렵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당할머니, 당할아버지 바위로 모시고 제각(祭閣)을 지어 당제를 지내게 됐다.

마을 할머니들이 '새각시(새색시)때'만 해도 당제를 모실 때를 제외하고는 대낮에도 겁이 나 당숲을 지나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말을 타고 이 당숲을 지나려고 하면 말굽이 빠지고, 가마를 타면 손잡이가 부러져 아무리 높은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이 당숲을 돌아서 갔다는 이야기다.

▲ 제주로 떠나는 배가 정박했을 당목항
ⓒ 김대호
마을 사람들은 300년 전부터 매년 정월 초엿샛날이면 올 한해 액운을 물리쳐 주기를 바라며 제주를 뽑아 당제를 모시고, 한달 내내 마을 전체가 어우러지는 흥겨운 농악놀이를 벌였다.

이런 신성불가침의 당숲에 큰 변화가 생겼다. 당할머니의 위엄에 도전하는 수많은 사건들이 터지고 있지만 숲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사건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 후, 경찰들이 이 당숲의 나무들로 탁자며 가구를 만든다고 나무를 마구 베어냈던 것. 그러나 당할머니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빨갱이로 몰려 귀신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두려움에 이를 말리지 못했다고 한다.

▲ 하늘까지 가리던 당숲은 이제 너무나 작아져 버렸다.
ⓒ 김대호
또 30여 년 전에는 당목리 당제의 내력을 기록한 고서를 관에서 가져간 뒤로 돌려보내지 않아 분실했고, 중장비를 동원해 숲 가운데를 관통해 신작로를 만들었지만 마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5년 전, 제각에 보관하던 청자 제기를 모조리 도난당했고, 숲 사이로 경로당에 작은 공원도 만들어졌지만 당할머니는 꿀 먹은 벙어리인양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그 원인에 대해 이 마을 신귀봉(78세, 약산면 당목리) 할아버지는 '당할머니가 이제 당숲에 살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신씨에 따르면 전황이 다르다 보니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날에야 약산에는 인민군들이 들어 왔다. 그전에 군경이 보도연맹으로 엮어 좌익경력자들을 죽인 뒤라 그 가족들은 인민재판을 통해 복수극이 펼쳤다. 나중에 장흥에서 군경이 밀고 들어오면서 또 좌익 부역자를 죽이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 좁은 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

▲ 당목항을 떠나는 철부도선
ⓒ 김대호
"섬에 총소리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다 봉께 마을 사람들 선몽(꿈)에 당할머니가 나타나서 '나는 시끄러워서 못살것다. 제주도로 갈란다'고 한 뒤로는 당숲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더 이상 당산할머니가 살지 않는다는 할아버지 주장의 근거이다.

나는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던 '야만의 시대'에 이 마을 사람들은 당할머니의 이름을 빌어 자신들의 맺힌 심사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나무도 오래 살면 요물이 된다'는 동네 어르신의 말씀처럼 역한 피비린내와 파괴를 중단하라는 자연의 경고일 수도 있다.

당숲 나무등걸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다. '휘~잉' 당목항에서 에돌아 오는 바람소리와 무심한 철부선 뱃고동 소리뿐 나무는 아무런 기척을 하지 않는다.

나무가 밀어내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당숲을 찾지 않는다. 까마귀집도 그대로고 여기저기 나비고치도 봄날을 기다리고 여름이며 매미에 반딧불이가 천지를 울리고 밝힐 것인데 아이들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떤 스승을 만나 이 길고 긴 겨울을 보내는 것일까. 이 섬에 또 어떤 슬픔이 있었기에 당할머니는 제주도로 미련없이 떠난 것일까?

또 날이 새고 내일 만날 약산도는 어떤 섬일지…. 피로에 지친 몸을 의탁하러 나는 노을을 등지고 가사동으로 차를 돌린다.

▲ 당숲 풍경
ⓒ 김대호

뭍의 약산흑염소와 비교할 수 없지요
삼지구엽주 곁들인 <고향회관> 수육 맛 으뜸

▲ 박연숙씨가 직접 요리한 약산 흑염소 맛을 보는 조각가 양공육씨

섬에 가면 싱싱한 횟감에 소주 한 잔을 떠올릴 것이다. 더욱이 완도에 간다고 하면 지인들은 농어, 광어, 참돔은 기본이고 '비싸다'는 전복 한번 푸지게 먹고 오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약산도에 가면 섬 전체에 자생하는 삼지구엽초를 비롯 200여 종의 산약초를 먹고 자란 흑염소 수육을 뜯고 와야 제대로 먹고 왔다는 소리를 듣는다.

조각가 양공육 선생과 함께 완도군 약산면 장용리에서 위치한 <고향회관>을 찾아 수육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허리띠를 풀었다.

염소 특유의 노린내도 없이 담백한 냄새가 코 끝으로 스며든다. 씹는 다기 보다 입안에서 녹는 듯 육질이 부드럽다. 부추로 양을 채운 수육이나 고기 서너 점이 헤엄을 치는 국물은 아예 기대하기도 힘든 도회지의 질긴 염소탕 하고는 수준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고향회관> 박연숙씨(여, 50세)는 산약초를 먹고 자란 방목염소를 잡아 3시간 정도 물을 갈아가며 피를 빼낸다. 여기에 삼지구엽초와 표고버섯을 넣고 끓여 염소 특유의 노린내를 죽일 수 있다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 12시간 넘게 뼈로 고아 육수를 내고 고기는 4시간 가량 삶는데 치아가 부실한 노인도 쉽게 드실 수 있는 정도까지 끓인다고 박씨는 말했다.

거기다 야생 삼지구엽초로 숙성시킨 삼지구엽주의 쌉싸름한 맛은 흑염소와 궁합이 제대로 들어맞는다. 여기에 곁들이는 반찬은 완도산 다시마 국물에 찹쌀가루로 진한 국물을 낸 동치미와 고추 장아찌와 무채를 썰어 만든 파래 김치가 제 맛이다.

“외지에 유통되는 약산흑염소 태반이 가짜다. 한 마리에 35만원을 넘다보니 육지축사에서 사료 먹여 키운 값싼 염소를 약산흑염소라고 속이는 것이다.”

박씨가 뭍에 나가 ‘약산흑염소’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유명식당에 간 적 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약산도 청년회장 사진까지 걸어 놓고 가짜 약산흑염소로 장사를 하더란다.

거기다 뼈를 고아낸 육수를 사용해야 하는데 뼈는 한약재로 미리 팔아 넘기고 고기 양을 늘리기 위해 살짝 데쳐내서 상에 올리니 질기고 제대로 된 국물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며 도회지 사람들의 상술을 나무랐다.

제대로 된 약산흑염소를 맛본 터라 이제 도회지 흑염소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도시에서도 더 이상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연숙씨처럼 제대로 된 흑염소 요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 김대호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 놓을 자리 보지 않고, 마음 길 따라가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이 기자의 최신기사"마음도 수납이 가능할까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