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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욕'의 어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말이려니 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발노무색기'(소리나는대로 적을 수 없음을 이해바라며)도 그같은 사례가 아닐까.

'시발노무색기(始發奴無色旗)'란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 이은우 사무국장은 지난 7일자 노보에 '최동윤의 고사성어'(http://210.217.241.12/~gosa/)를 인용해 관련한 글을 실었다.

▲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노보에 실린 '시발노무색기'.
그는 이 글에서 중국 고사의 삼황오제 이야기에 나오는 '시발노무색기' 유래를 빗대어 소개했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 고사에 삼황오제의 이야기가 있다. 그중 복희씨는 주역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어느날 복희씨가 다스리던 태백산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래서 복희씨는 그 마을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마을은 황하의 물이 시작되고 있는 곳이라 하여 시발현(始發縣)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복희씨는 전염병을 잠재우기 위해 3일 밤낮을 기도했다.

3일째 되는 밤에 웬 성난 노인이 나타나서 "나는 태백산의 자연신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곡식을 거두고도 자연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니 이를 괘씸히 여겨 벌을 주는 것이다. 나는 집집마다 피를 보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했다.

복희씨는 이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자연신의 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집집마다 동물의 피로 붉게 물들인 깃발을 걸어두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인 현(縣)의 관노(官奴)가 '귀신은 본디 깨끗함을 싫어하니 나는 피를 묻히지 않고 깃발을 걸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시행했다.

그날 밤 복희씨가 다시 기도를 하는데 자연신이 또 나타나 노여워하며 말하길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정성을 보여 내가 물러가려 했으나 한 놈이 나를 놀리려 하니 몹시 불경스럽다. 내 전염병을 물리지 않으리라" 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그 마을에는 전염병이 더욱 기승을 부려 많은 이가 죽었다.

이에 대해 복희씨는 "이 마을(始發縣)의 한 노비(奴婢)가 색깔없는 깃발(無色旗)을 걸었기 때문이다(始發奴無色旗)"라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始發奴無色旗(시발노무색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최동윤의 고사성어 중에서.


이은우 국장은 '始發奴無色旗' 어원의 맥락에서 최근 노동자들의 분신과 자살 정국을 바라보는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을 두고 "친일행각으로 지탄받아온 보수언론, 박물관 자료실에서나 찾아봄직한 언론들이 앞다퉈 '친노동자 정권'이라고 몰아세운 참여정부 아래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노동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개탄한 뒤 "자본과 결탁해서 노동자 죽이기에 앞장섰던 보수언론이 무한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한국일보의 노동 보도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노조 공화국'으로 보는 보수우익 집단의 찌라시 수준에 버금가는 노조관은 다른 매체와 별로 다르지 않다"며 "노동자들의 자살이 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관심은 없고, 야구 중계하듯 현장 스케치에만 필설을 놀리고 있다"고 했다.

또 "예전의 유서대필 사건의 악령이 되살아난 듯 '기획된 자살'이라는 얘기가 신문 지상 한켠에 버젓이 자리잡을 수 있는 데서도 노조를 사회악으로 바라보는 소위 자본가와 권력층을 대변하는 충실한 '대변지' 악취가 난다"고 비유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사 노조 출범(10월 29일) 17주년을 언급하면서 "지금 한국일보 노사화합에 가장 커다란 걸림돌은 경제니 광고니 이런 것이 아니라 사내 요소요소에 불필요하게 산재해 있는 '始發奴無色旗'들을 찾아내 척결하는 게 화합의 지름길이라 말하고 싶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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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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