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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작금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문득 17세기 초 요동에 군대를 파병하라는 조정과 재야 사대부들의 압박에 시달렸던 광해군이 떠올랐다. 4세기라는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많은 역사적 조건들의 차이는 물론 고려해야한다. 하지만 두 사건에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려운 많은 유사한 역사적인 경향성이 있다.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수직적 질서속에 편입되어 안주하며 나름의 평화(?)를 구가하던 조선에게 명나라는 단순한 이웃의 커다란 외국이라기보다는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찬탈한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지켜주는 존립의 근거였고 성리학은 이런 차별적인 관계를 합리화시켜주는 철학적인 이론을 제공하고 있었다.

게다가 16세기말 명은 군대를 보내서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던 조선을 물리적으로 도와주기까지 했으니 조선 지배층의 처지에서 본다면 자자손손 잊지못할 은혜를 입은 것임이 분명하다. 많은 사대부들의 문집과 기록에서 보이듯 명은 만세를 누려야할, 하늘로부터 그 정당성을 부여받은 '영원한 제국'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불과 십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명은 내부 농민반란과 만주에서 새로이 흥기한 후금에 의해 그 존립이 위태롭게 되었고 급기야는 조선에까지 원병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물론 조선 지배층의 반응은 적극적인 파병이었다. 받은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의리를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하는 국제질서를 주목하던 광해군은 대단히 신중했다. 결국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의 결단으로 형식적인 파병은 하되 후금에 대한 적극적인 적대는 하지 않는 타협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그러나 이런 광해군의 외교에 적극적인 불만을 가진 일군의 정치세력에 의해 광해군은 폐위되고 조선의 대후금정책은 아주 강경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참담했다. 두 번에 걸친 후금의 침입, 그리고 '오랑캐'에 대한 치욕적인 국왕의 항복.

역사적인 평가는 항상 다면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광해군의 처신을 높이 평가한다. 사실 사대부들이 그토록 외쳤던 임란 당시 대명의 은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 평야지대인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일본군을 맞아싸우기보다는 산이 많은 조선에서 사전에 일본군을 차단하고 싸우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명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조선의 다른 지배층이라고 몰랐을리 없지만 '무조건' 적인 파병이 대세를 이루었던 것은 조선왕조내에서 그들의 기득권이 명에 대한 사대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성리학적 세계관 속에서는 조선의 왕이 명의 황제에 대해 보이는 충성은 곧 조선의 피지배층이 지배층에게 보여야하는 복종과 논리적인 연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절을 기억하면서 느끼는 아쉬움보다는 오늘의 상황을 직면하면서 느끼는 절망감이 훨씬 강렬하다. 4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그 대상만 바뀌었을뿐 여전히 미국이라는 대국을 기반으로 탄생했으며 그 기반위에서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우리의 국군을 '무조건' 파병해야한다고 우리 안에서 외치고 있다.

그것을 정당화시켜주는 가장 큰 논리는 6·25 전쟁 당시의 은혜(?)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이들은 미국이 소련과 대립하며 한반도의 남부를 수중에 넣기 위해, 즉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또 보수 교회의 일부 목사들은 미국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공공연히 설교하고 다니면서 이런 종속적인 상황을 '우주적인 질서'로 합리화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광해군 때에는 3만에 가까운 외국군대가 주둔하면서 파병을 압박하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미국을 기반으로 하면서 기득권을 행사하는 지배층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군은 미국을 기반으로 한 기득권층의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고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다. 국민의 군대다. 한 줌도 안되는 기득권자들의 경제적인 이익-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을 고려해서 파병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미국의 보복이 두려울 수 있지만 언제까지 미국의 눈치만 보고자 하는가? 언제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질서 속에서 안주하며 나름의 평화(?)를 구가하고자 하는가? 피종속자가 스스로 종속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종속의 대상만 바뀔뿐 종속의 상태는 지속된다는 사실을 우리 역사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광해군의 시절로부터 400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의 지배층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고, 때로는 비난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400년 후 우리 후손들이 오늘날의 상황을 보고 무엇이라고 비판할지를 먼저 헤아려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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