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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감각을 내세운 대학 언론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학생들의 젊은 지성과 시각을 보여주기는커녕 기존 언론과 차별화되지 않은, ‘진부’한 모습으로 대학 내에서도 외면받기 일쑤다. 대학언론 종말의 시대에 대학언론은 이렇게 저물어갈 것인가 개혁할 것인가.

A대학 학보사에서 편집장을 맡고 B양은 신학기 학보사 활동이 어렵다. 신입부원 모집을 일주일째 하고 있지만 지원서는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고, 관심도 전무하다. 지난 학기 세 번에 걸쳐 신입부원 모집을 했지만 역시 학보 기자는 모자란 상태다.

그뿐 아니라 캠퍼스 내 학생들의 관심도 예전에 비해 줄어들어, 매주 힘들게 발행하는 학보를 아예 보지 않거나 쓰레기 정도로 취급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학보사의 기사와 운영 부실도 문제이지만, 학내 무관심이 더 큰 문제다. 이렇게 해서는 학보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B양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대학언론이 떠나고 있다

▲ 요즘 캠퍼스 내에서는 사회보다 취업에 더 치중하는 분위기다.
ⓒ 박은
앞의 예는 단지 특정 대학의, 학보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대학생 대상 설문조사 결과, 학내 언론을 꾸준히 읽고 있다는 답변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학내의 무관심은 대학 언론사들을 ‘자기 잔치’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실제로 매주 발행되는 학보는 학생들에게 도서관 열람실 가리개 정도의 용도로 쓰이고, 일 년에 두 번 발행되는 교지는 가득 쌓여 있기 마련이다. 영어로 발간되는 영자신문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독자 호응이 적어서 그냥 기자들끼리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할 때도 있다고 한다.

“예전처럼 대학생을 하나의 여론집단으로 묶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대학 언론이 학내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일단 대학 언론사에서 학생들을 계몽 내지 선동하려는 태도나 대표성 등을 강조하는 태도가 지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승희(22·연대 독어독문학과 00)양은 반문한다.

낮은 학번들의 외면도 대학언론 침체의 요인 중 하나이다. 신입부원들의 지원 현황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고대 학보의 경우, 1년에 2번 신입부원을 뽑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지원자가 줄어들어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 이유로 저 학번들이 힘든 대학 언론사 활동보다는 앞으로의 사회활동에 인정되는 경력 쌓기나 학점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 언론사 내에서도 요즘 한두 번 나오다가 힘들면 쉽게 그만두는 책임감 부재가 팽배해 있어 기사 수 채우기도 어렵다.

<서울대 저널>의 박연주 편집장(24·경영학과 00)은 “예전에 비해 귀속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기 발전 없이는 안 된다”

▲ 새로운 개혁을 하고 있는 대학 언론들
ⓒ 박은
그렇다면 대학 언론은 점점 캠퍼스 내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대학 언론 내에서 자성과 자기 발전의 목소리가 높다. 대학 언론은 학내 사안과 국내 여러 사안을 다룸에 있어 얽매어 있지 않은 젊은 시각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기성 매체들이 왜곡된 사회 인식을 보여줄 때도 대학 언론은 외부 세력의 견제 없이 ‘할 말을 하는’ 힘이 있었다. 캠퍼스 내 여론을 이끄는 역할과 동시에 학우들의 반응과 분위기를 담는 대학 언론 고유의 역할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동안 학교에서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담아낼 수 있는 고유한 부분이나, 대학 언론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반영한 기사를 통해 사회적 흐름을 짚고, 그에 대한 평가 역시 중요한 역할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대학 언론의 몰락은 매우 위험하다. 아무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대학 언론이라면 20대 대학생의 사회 관점을 담을 수도 없고, 그것을 사회에 피력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대학 언론사에서는 자기 발전을 꾀하고 있다. 우선은 한정되었던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오프라인 출판지와 함께 인터넷 매거진을 동시에 운영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대 신문의 경우, 독자들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한다는 취지 아래, 97년부터 ‘인터넷 고대 신문’을 만들어 오프라인 내용을 그대로 싣고 있으며, 한양대 교지 역시 2001년, 인터넷 교지 the hanyang.com을 만들어 학우들과의 소통(communication)과 피드백(feedback)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한양대 인터넷 교지를 창간한 전민수(24·정외과 99) 편집장은 “대학 언론은 주어진 예산 내에서 학우들에게 다가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off-line 면에서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된 the hanyang.com의 경우에도 ‘빡쎄지기를 각오하고’ 한 만큼 <업 데이트>에의 노력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용 개혁도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학 매체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나름대로의 색깔을 찾는 것이다. 대학의 각 언론사들은 자신들만의 관점, 그리고 뚜렷한 색깔을 찾되, 너무 학내와 동떨어진 얘기는 배제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관심사와 캠퍼스 이슈를 고려하고,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의 끈도 놓지 않는 것이 대학 언론 변화의 요지이다.

<서울대 저널>의 박연주 편집장은 “학내 언론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학생들의 전반적인 무관심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던 만큼,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학 언론의 공간을 되찾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들 중에 대학 언론사 출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과거 대학 언론이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개인 발전에도 도움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현재 캠퍼스 내의 대학 언론 위기는 단지 동아리 개념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대학생 전체의 사회적 시각의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생이 대학 언론을 거부하면서 기존 언론을 보고,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현재 끊임없는 자기 개혁으로 학우 곁에 다가서려 하는 만큼 독자들도 대학 언론의 공간을 확보해 줘야 한다. 대학 언론이 ‘소통의 장’으로 다시 설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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