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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자 강의
ⓒ 신성용
"한국민족과 중국민족 나아가서 일본민족은 모두 '고조선'의 후손들이다."

지난 7월 3일 저녁 8시, 전주시 예술회관 맞은 편에 위치한 '설예원' 2층에서는 백발의 노학자가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던 '고조선'의 역사를 거침없이 파괴하고 있었다.

노학자는 "사마천이 집대성한 중국의 역사 사기(史記) 첫 번째 장 오제본기(五帝本紀)가 고조선 및 고한(古韓)시대"라고 일갈했다.

처음 접하는 난해한 문자들로 강의 내용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처럼 우리의 역사인식을 뒤흔드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자리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날 강좌는 한국문자학회 소남자(召南子) 김재섭 회장의 '고금문(古金文) 강의'였다. 한자(漢字) 이전의 문자 즉, 상형문자(象形文字)를 통해 고조선의 역사를 규명하고 공부하는 자리였다.

강의에서 고조선 역사의 규명과 새로운 인식의 근거는 상형문자였다. 상형문자는 4500년 전에 사용된 그림글자로 문자학(文字學)에서는 고금문(古金文)이라고 하며 청동기(靑銅器)에 새겨져 있는 글자를 의미한다고 했다.

강의는 상형문자 즉 고금문의 기록이 한자로 정리되면서 빚어진 문자의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고금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역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강좌의 취지였다.

소남자 선생은 "고조선은 청동기시대로 상형문자를 사용했으며 청동기에 새겨진 상형문자 즉, 고금자는 고조선문자다. 따라서 2000년 전에 만들어진 한자를 가지고 한자보다 2500년이나 앞선 문자초창기 고조선문자를 접근한다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동기에 각인된 상형문자를 해석해 고조선의 역사를 규명했다. 청동기시대 단도(短刀-당우삼과병명) 등 청동기에 새겨진 고금자(상형문자)가 고조선 역사를 되짚는 지도였다.

또 고조선 역사 찾기의 키워드는 '朝鮮'과 '韓'이었다. 강의는 "고조선시대의 기록이 없었다면 조선(朝鮮)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생겼겠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4500년전에 만들어진 朝鮮의 형상과 사건, 행위, 경험 등을 추적하는 것이다.

소남자 선생의 강의는 한마디로 朝鮮이라는 고금자가 반만년 전에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를 추적하고 이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소남자 선생은 "중국의 고서 '산해경'(山海經)중 해내경(海內經)에서 발견한 朝鮮을 고문자로 추적해 사기의 오제본기를 재해석, 한문으로 기록된 고조선의 역사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오류를 찾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강의는 소남자 선생의 독단적인 연구의 결과는 아니다. 중국 후한(後漢)시대 허신(許愼)이 엮은 '설문해자'(說文解字) 등 문자학 연구, 중국 문자학자로 '금문신고'(金文新攷)의 저자 낙빈기(駱賓其)와의 서신문답 등 교류, 청동기 고금문의 연구 등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한문으로 기록된 역사를 완전히 뒤집는 소남자 선생의 고문자 연구에 대해 국내 학계에서는 정설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소남자 선생은 "고문자 공부는 선조 대대로 젖어있는 비주체적인 자아상실의 해독"이라며 "고조선의 역사는 단군신화와 단일민족의 시발점이 아닌 중국 고대사와 철학의 근원"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소남자 선생의 '고금문 강의'는 한겨레신문 문화강좌에서 소남자 선생의 강의를 접한 최두식씨(44·김제시 봉남면 대송리)와 '설예원'을 운영하는 이림씨의 주도로 마련됐으며 매주 목요일 저녁 8시부터 2시간동안 진행된다.

고문자 강의에는 현직교사와 스님, 대학생, 회사원 등 20여명이 수강하고 있으며 9개월째 고금문과 씨름하며 고조선의 역사, 우리의 뿌리를 찾고 있다.

한국문자학회 김재섭 회장

소남자 김재섭 선생은 1932년 경남 산청군 출생으로 진주농림고를 졸업하고 동국대 국문과를 중퇴(3학년)했다. 월간 '새벽' 기자를 시작으로 '보건세계' 편집장과 일간 현대경제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 출신으로 1978년 귀농(歸農)해 전남 장성에 살고 있는 특이한 경력을 소유한 문자학자이자 고대사학자이다.

1985년 일본 조선사전공학자인 이노우에(井上秀雄)의 '한국고대사' 번역본을 읽고 일본의 한국고대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분개해 "이노우에가 죽기 전에 내 손으로 반드시 고조선을 찾아낸다"고 다짐, 고조선 연구에 시작하게 됐다.

1988년 인사동 중국서적상인 동방예술사에서 우연히 '금문신고'를 접하고 저자인 중국문헌학자 낙빈기와 서신토론을 시작, 5년간에 걸친 서신교환과 3번의 만남을 통해 한중역사상 처음으로 오제시대가 고조선 및 고한(古韓)이 하(夏) 이전에 있었던 역사인식단계임을 확인했다.

1992년 북경대조선문화연구소의 제4차 국제학술대회에서 논문 '동양 고대사인식체계상에서 본 고조선'을 발표한 이후 서울과 광주, 부산, 목포, 밀양, 진주 등 전국을 돌며 고조선 문자인 청동기명문(靑銅器銘文) 해석을 통한 고조선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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