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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대구 앞 바다 갯벌이 환상적입니다."
"너 지금 장난 하냐? 내 월남스키부대는 들어봤어도 대구 앞 바다는 생전 첨이다."

전라도에서 살면서 보통 "대구중학교 졸업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십중팔구는 "어쩌다 전라도까지?"라고 묻는다. 헛갈리게도 전남 강진군에는 대구광역시가 아닌 대구면이 있다.

장흥군에는 부산광역시가 아닌 부산면이 있고 충남 서천군과 전남 구례군, 해남군에는 마산시가 아닌 마산면이 있으니 과거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단다.

▲ 세월 만큼이나 긴 흔적을 남기고 바지락을 캐는 할머니
ⓒ 김대호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대구’로 간다는 안내양의 말만 믿고 경상도로 가야할 사람이 강진으로 가고 강진으로 가야할 사람이 경상도로 가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고 한다.

이럴 경우 버스요금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멱살잡이형부터 시작해 배째라형, 애걸복걸형까지 다양하지만 결국 서로의 과실을 인정해 차비를 반반씩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남도 땅을 여행하시는 분들은 실수하지 않도록 꼭 확인해야 할 일이다.

▲ 주인 잃은 빈배가 애처럽다
ⓒ 김대호

▲ 물가로 놀러 나온 말뚝망둥어
ⓒ 김대호
보통 남도답사 1번지 강진하면 사람들은 ‘영랑생가’부터 시작해 ‘다산초당’, ‘청자마을’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진의 진짜 매력은 탐라국으로 사신을 떠나보내던 탐진강에서 시작해 제주에서 진상한 말을 내리던 마량항까지 끝도 없이 펼쳐진 풍부한 갯벌에 있다.

특히 ‘짱뚱어 반 물 반’이라는 칠량면 구로리와 진한 향과 살집으로 인해 과거 임금님께 바치는 진상품이었다는 대구면 백사리 바지락은 강진의 명물로 통한다.

강진읍 5일장에 나올 양이면 타지 산에 비해 제법 값을 더 부르지만 앞다투어 사가는 바람에 외지인들은 구경조차 하지 못한다.

백사리 바다는 과거 당나라로 떠나는 무역선들이 머물렀다는 당전리에 위치한 ‘고려청자도요지(청자마을)’에서 약 1.5㎞ 정도 떨어져 있어 도보로도 이동이 가능한 곳이며 갯벌 주변으로 일주도로가 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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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유실을 훌륭하게 막아 주는 염생식물(갯잔디)
ⓒ 김대호

▲ 조개를 캐는 아줌마
ⓒ 김대호
갯벌 주변에는 해안유실을 막아주고 각종 갯벌생물의 보금자리를 제공해주는 해홍나물, 퉁퉁마디, 갯잔디, 좀보리사초, 사철쑥과 같은 10여종의 ‘염생식물’이 숲을 이루어 장관을 이룬다.

이 갯풀 속으로는 게며 갯고동, 말뚝망둥어, 짱뚱어가 조심스럽게 기어다니고 하늘 위로는 이 놈들을 노리는 왜가리와 백로, 해오라기가 날아다닌다. 여기저기로 바지락을 캐는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할머니는 “내가 각시(새댁)때는 갯것들이 쌨었는디(많았는데) 여그도(여기도) 솔찬히(많이) 없어진 폭이제(편이지). 딴디(다른 곳은)는 빈 껍다구(껍데기)만 나오고 종자가 싹(모조리) 보타져(씨가 말려) 브렀다고 하드만. 농약 했싸코 오염된 물을 내러(내려) 보냉께 그라제. 인자(이제) 성주님(조상님)도 오라고 해싸코(하고) 이 짓도 고만(그만)해야 쓰것구만(되겠구먼)”라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예닐곱살 되어 보이는 동네 아이들은 갯가로 뛰어나와 게며 짱뚱어를 쫓다가 지치면 바다에 몸을 풍덩 담그고 물장구를 친다. "아저씨, 고추는 찍으먼 안되라우"하며 부끄럼을 타면서도 제법 멋지게들 폼을 잡는다.

▲ 갯벌을 벗삼아 자라나는 백사리 아이들
ⓒ 김대호
이 놈들은 어리다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제법 잠수까지 하는걸 보니까 수영솜씨가 여간 내기는 아닌 듯 싶다. 한 시간째 빈 구멍만 헤집고 다니는 나와 달리 여기저기 갯벌을 헤집으며 ‘조개’를 잘도 잡아낸다.

▲ 갯벌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무동력선
ⓒ 김대호
이렇듯 강진의 갯벌은 살아있었다. 수많은 바다생물과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간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남도답사 1번지 강진 관광의 시작을 갯벌에서 시작했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갯벌은 바다의 생로병사를 관장한다’고들 한다. 갯벌이 죽으면 바다도 죽는다는 이야기다. 썩어가거나 바다모래 채취로 처절하게 유실돼 가는 서해안의 갯벌과 달리 강진만은 아직 진한 생명력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 염생식물 숲은 게며 고동 갯벌생물의 훌륭한 은신처다
ⓒ 김대호
백사리 갯벌은 왠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찾는 곳’이란다. 희망을 찾지 못하고 일상이 권태의 연속이라면 올 여름이 가기 전에 바쁜 일상을 하루쯤 팽개치고 무작정 차를 남도로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싶다.

부디 백사리 갯벌에서 희망을 한 움큼 가득 캐서 가길 바란다.

▲ 대구천과 만나는 바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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