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반미(反美), 용미(用美), 친미(親美)….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진 담론들이다. 그러나 이 논쟁적인 담론들을 잠시 보류하고 미국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따져보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 왜 강한가>의 저자 박선규는 그렇게 '지미(知美)'를 주장한다.

"연령과 계층을 떠나, 지식의 높음과 낮음을 떠나 '반미'는 분명 21세기 초입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렬한 현상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감정적인 차원에만 머문다면 우리에게도 미국에게도, 또 양국 관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우선은 잘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실을 통해 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 <미국, 왜 강한가> 표지
ⓒ 미다스북스
저자 박선규는 현직 방송기자로 활동하다 2001년 미국정치학회가 주관하는 '컨그레셔널 펠로우십(Congressional Fellowship, 의회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해 1년 동안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에드워드 로이스 사무실에서 인턴 입법 보좌관으로 일하며 미국을 관찰했다.

저자는 미국의 힘의 원천을 ▲원칙과 소신 ▲대화와 타협 ▲미국식 인본주의 ▲실천적 기독교 정신에 바탕한 미국적 생활문화 등의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하나 짚어간다. 특히 이 책의 미덕은 미국의 이러한 모습들을 우리 정치 및 사회·문화의 상황들과 비교, 대조하는 서술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서술방법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사회 전반의 미숙한 점들을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가령 우리 국회의원들과 미국 의원들의 의정활동, 당적 변경의 이유와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 등을 비교하는 대목들은 차라리 미국의 힘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우리 정치의 치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에 가깝다. 실제 저자는 우리 정치인의 실명과 구체적 사건들을 거론하며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를 선출하고도 당내에 일었던 후보교체론, 몇몇 '철새의원'들의 행태 등은 다시 봐도 부끄러운 정치 후진국 한국의 모습들이다.

또한, 비록 이미 알려진 것이긴 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 사회정의를 해치는 범죄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모습, 어린 시절부터 자원봉사를 가르치는 교육 스타일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공화당 의원의 인턴 보좌관으로 일했기 때문일까. 간혹 공화당과 민주당을 비교 서술하는 데에 있어 공화당 쪽에 보다 우호적인 뉘앙스의 말을 하는 면이 없지 않다.

"조지 W.부시 대통령을 볼 때마다 '참 여유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나는 부시 대통령을 볼 때마다 정말 연설을 잘한다고 느낀다. 애매모호하지 않은 단호한 어투에 자신 있는 표정, 때때로 빙긋이 웃는 그의 얼굴에선 강자의 여유가 느껴진다."(213쪽)

또 1년의 미국 생활이 너무 짧았던 것은 아닐까. 저자가 미국의 긍정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부각하려 했다는 인상이 쉬이 가시진 않는다.

머릿글에서 저자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해 미국을 정확히 보자'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앞 뒤 맥락을 다 짚어주지 않는 단편적 사실 나열과 단순 사실 비교는 오히려 객관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 가령, '악의 축' 발언으로 유명한 2002년 1월 국정연설에서 부시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참전 중 사망한 CIA 요원을 미국의 자랑이자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는 대목을 보자.

여기서 저자는 "그들이 국제적으로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자. 다만, 그들이 자국의 이름 없는 '일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상기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하며,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저것이 바로 미국의 힘의 원천이구나 싶었다' 등 소감을 적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역사적 맥락을 좀더 신경썼더라면 이러한 다소 거북한(?) 감탄의 나열은 덜했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을 다 읽고도 '과연 지미(知美)했는가?'하는 석연찮은 점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직 방송기자의 짧은 미국 체험기를 마치 술을 함께 마시며 얘기를 듣는 듯 부담 없이 읽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아직까지 미국 의원들의 의정활동이나 미국 상류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 미국의 교육 시스템 등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미국, 왜 강한가

박선규 지음, 미다스북스(2003)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18기 김윤정입니다. 강의를 듣고 시민기자로 활동하지 않는다면 제 자신에게 부끄러울 것 같아 등록합니다. 기사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르포나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소외되고 버려진 곳, 주변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등을 찾아 기사화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