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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한 유통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A(29)씨는 지난 8월 2일 아침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않은 불쾌한 일을 겪었다.

"직장동료가 아침에 나눠 먹으려고 사온 제빵업체 P사의 빵을 먹던 중 한 여직원이 큰소리를 치며 빵 속에 벌레가 나왔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달려가서 봤더니 빵 속에서 뭔가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벌레가 아니고 구더기였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빵을 잘라보니 그곳에도 구더기가 여러 마리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 역삼동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지난 2일 직원들과 빵을 나눠먹다 빵속에서 수십마리의 구더기를 발견했다. 이 빵은 국내 최대 제빵업체인 P사의 한 점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원안의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된 것입니다.)
A씨와 함께 빵을 먹던 여직원들은 먹던 빵을 뱉고 인상을 찡그렸고, 사무실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 빵들은 평소 사무실 직원들이 자주 먹던 제과점에서 한 여직원이 사온 것이었다. A씨의 말에 따르면, 이날 아침 사온 빵 3개 모두에서 살아있는 구더기가 수십 마리 발견됐다.

이같은 소동이 벌어진 뒤 A씨는 오전 10시경 빵을 구입한 여직원 대신 본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곧 P사 영업부 대리가 A씨의 회사로 찾아왔다.

"그날 P사 직원이 음료수 한 박스와 5만원을 들고 회사를 찾아왔길래 보상금은 거절하고 시정조치를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소비자보호원에 고발을 하려면 고발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냥 돌아가더군요."

P사의 이런 조치에 대해 A씨는 화도 났지만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A씨는 "당사자도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러웠겠지만 P사측의 사태 처리가 너무 미숙한 것 같았다"고 밝혔다.

"P사는 금전적 보상 문제만 얘기... 몇 천만원 줘도 합의에 응할 수 없다"

그 뒤 P사는 이틀간 더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A씨는 소비자보호원에 문의해 구청에 위생검열신고를 하면 자체조사를 통한 시정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틀 뒤인 4일에는 본사 영업팀 박아무개 차장이 A씨를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A씨는 "구청에 자진 검열 신고를 해서 책임자가 엄정한 시정조치를 내렸으면 한다"고 요구했지만 박 차장은 "그런 조건은 무리"라고 답변했다. 박 차장은 그 대신 '소비자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 명목'으로 보상금 30만원을 A씨에게 내밀었다.

화가 난 A씨는 "그동안 계속 사먹은 제품에도 의심이 가는 정도인데 돈 몇 십만원씩으로 (보상이)되겠느냐, 백만원씩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A씨는 "돈 얘기를 꺼낸 것은 당시 P사측에서 계속 금전적인 보상으로만 문제를 몰고 갔기 때문에 그 정도의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며 "그때나 지금이나 보상을 바란 게 아니었고, 지금은 돈 몇 천만원을 줘도 합의에 응하지 않겠다"며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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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P사와 문제의 빵을 만들어 판매한 제과점은 이번 일로 매우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A씨 동료직원이 이날 구입한 빵은 하루 전인 1일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P사 브랜드를 가진 점포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빵들도 P사가 운영하는 한 제과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의 빵을 만들어 판 제과점의 주인인 B씨는 "빵을 처음에는 포장하지 않고 진열하다가 오후에 포장을 하는데 손님들이 출입하면서 파리나 벌레들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며 "포장을 해 놓기 전에 벌레들이 앉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B씨는 P사의 광고와 달리 상시적으로 전날 만든 빵을 다음날 팔고 있음을 시인했다. B씨는 "빵은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면서도 "팔고 남은 빵은 다음날 아침 30%∼40%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거기서 남은 빵은 곧바로 폐기한다"고 전했다.

B씨는 "이번 일은 전적으로 우리 가게의 책임인데 이번 사건이 자칫 다른 점포에도 영향을 줄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빵 살때 제과점 보고 사나... '브랜드 차원'의 시정노력 있어야"

그러나 A씨는 이 문제가 단순히 이 제과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즉 P사의 빵을 구입하는 고객들 가운데는 제과점을 보고 구입하기도 하지만 P사의 브랜드를 믿고 빵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흔히 빵집에서 빵을 살 때 그 회사의 브랜드를 보고 구입하는 게 아니냐"며 "사태 발생 후 2, 3일이 지나도록 영업상무선까지밖에 보고하지 않아 이를 유야무야 넘어가려고만 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A씨는 "브랜드 차원의 시정노력이 뒷받침돼야 P사 관계자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에 대해 P사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들에게 최대한 보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P사 품질관리팀 유아무개 과장은 "이런 일이 17년만에 처음 일어났기 때문에 회사 내부가 대단히 시끄럽다"며 "이미 사장에게까지 이번 일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유 과장은 "고객이 제품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구매자와 제보자측이 일치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우리 회사 제품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인정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있다"며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 따라 상해부분은 병원비를 전액 지급하고 그 밖에 내부규정에 따라 합의를 거쳐 위로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 과장은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식약청이나 제과협회 등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부터 위생검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P사는 일반적으로 P사 소속 점포에 각 파트마다 한 달에 한 번씩 점검을 나가고, 구청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에서도 일년에 두세 차례 점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기 점검은 형식적인 것이어서 A씨와 같은 피해자를 사전에 예방하기는 어렵다.

'이번 기회에 소비자의 요구대로 정식으로 점검을 받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유 과장은 "검사는 예고없이 나와야 의미가 있는데 자진신고를 해서 검사를 받는 것이 효과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녹색소비자연대의 정영란 상담위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여름에는 다른 계절보다 동물성 이물질에 관한 상담건이 많이 접수된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빵에서 한 마리가 아닌 수십마리의 구더기가 나온 것은 정상적인 유통단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매우 드문 일"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정 위원은 또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피해규정에 따라 식품에 이물질이 들어 있어도 신체적 손상을 입지 않았을 때에는 구입가 교환 환급만이 이루어지고 도의적인 차원에서 보상금이 지급된다"며 현행 피해보상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 위원은 이처럼 심각한 피해사례가 발생했을 경우, "소비자가 이 외의 행정처분을 바란다면 관할 구청이나 시청 위생과에 신고하는 방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6일 현재 휴가중인 A씨는 돌아오는 대로 구청 보건위생과에 신고를 할 생각이다. 해당 업체의 철저한 관리가 없다면 소비자는 언제나 피해를 본 뒤 보상받는 식이 될 것이라는 게 A씨의 생각이다.

A씨는 "P사의 빵과 같은 제품의 경우 겉봉에 유통기한도 없어 소비자는 그저 업체를 믿고 사먹지 않느냐"며 "결코 그냥 덮어두고 갈 문제는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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