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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민씨의 <한국 문학사의 탐색>.
ⓒ 윤성효
우리 문학사에서 1940년대 전반기 만주 개척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위 '개척소설'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해야 하고, 친일소설과는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설가 김동민씨는 최근에 펴낸 <한국 문학사의 탐색>에서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생산소설'이라 부르기도 하는 개척소설은 1940년대 전반기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작가들에 의해 생산된 작품을 말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이 시기에 나온 작품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개척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을 보면, 친일소설도 있지만 그 시대의 감추어진 실상과 겨레얼을 소롯이 담아 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도 있다.

개척소설은 독특한 이중구조를 갖고 있다. 조선인 개척지의 고난과 궁핍상이 있고, 일제가 선동하는 '낙토' 건설의 허구성과 협화정책의 모순이 폭로되어 있다는 것. 그러면서 교화소설의 맹점이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친일소설과는 확연히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개척소설이 나온 시기에 주목했다. 일제와 우리 문학은 공생한 것도, 투쟁한 것도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일제는 조선을 이용하고 조선은 일제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대등한 입장도 있었다는 것. 오히려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고 식민의식을 몰아내려고 한 작품도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책에서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인 작가들의 개척소설을 어느 정도 허용했고, 우리 작가들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이 개척소설이라는 전례없는 독특한 형식을 취했다"면서 "개별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책에서는 친일소설과 변별작업을 해놓았다. 일제와 대립되는 공산비(匪)를 나쁜 세력으로 몰아붙인 송산실의 <한등(寒燈)>, 조선이주협회와 사무소가 저마다 나름대로 일제의 국책에 순응하는 태도를 그린 정인택의 <검은 흙과 흰 얼굴>이 대표적이다.

정인택의 소설에 대해 김동민씨는 "만주 개척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노골적으로 끌어보려는 이 작품은 철저히 일제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친일 작가 글쓰기의 한 표본으로 생각된다"고 비판했다.

▲ 김동민씨.
또 조선인의 집에 '천조대신'의 신위를 만들게 해 조선 개척민들에게 강제로 신사참배를 시키려는 것을 은근히 드러낸 윤백남의 <벌통>도 친일소설로 분류된다. 윤백남의 작품은 소작인 일가가 고향을 떠나 성공적으로 만주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를 내세워 일제 개척정책을 찬양하고 홍보하려는 저의가 짙게 깔려 있다.

<춘추>(1943년 4월)에 발표한 신서야의 <피와 흙>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중국의 세싸움 때문에 조선인이 해를 입는다는 내용을 그린 소설로 일제가 주도하는 만주국을 찬양했기에 친일소설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책에서는 개척소설의 범주에 드는 작품을 분석해 놓았다. 김동민씨는 "모든 문필 활동이 금지된 암흑기에 붓을 꺾지 않고 문학을 통해 당대 현실의 모순을 타개하려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범주에 드는 작가로 안수길을 꼽았다. 안수길은 간도의 망명문단에서 크게 활약했는데 <벼> <새벽> <목축기> 등에서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항일저항의 빛이 있다는 것.

일제는 식민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기치를 내걸고 조선인을 회유했다. 일명 '낙토(樂土)' 건설이다. 그런데 이때 나온 개척소설 중에는 낙토건설의 허구성을 고발한 작품도 있다. 이기영의 <신개지> <광산촌>과 안수길의 <원각촌>이 이 범주에 든다.

이들 작품에 대해 김동민씨는 "낙토는 외부의 어떤 압력이나 종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싶은 대로 살도록 자유스럽게 내버려주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어 있다"며 "이는 조선인의 낙토는 일제가 물러난 땅이라는 뜻을 전하면서 식민 체제 하의 무력에 의해 건설되는 집단촌이 얼마나 허울 좋은 마을인가를 비판한다"고 설명했다.

김동민씨는 개척소설의 소설사적 의의에 대해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우리 문화의 암흑기로 인식돼 왔다"면서 "게다가 확실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우리의 많은 유산들이 친일이라는 올가미에 씌어져 평가절하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씨는 "소재만을 놓고 볼 때는 분명히 일제의 국책에 호응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개척소설이라는 잣대로 비춰보면 이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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