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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폐기장 반대 퍼포먼스 장면
ⓒ 김윤정
장맛비가 쏟아지는 인사동 초입 문화마당.

검은 의상에 해골 가면을 쓴 인물, 노무현 대통령,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김종규 부안군수, 김형인 부안군의회 의장의 가면을 쓴 인물들이 노란 삽을 들고 나와 모래더미를 거칠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 등이 핵 폐기물을 상징하는 드럼통을 모래 속에 묻는 동안, 검은 해골 분장의 인물은 검은 방사능 심벌이 그려진 드럼통을 금세라도 이들에게 집어던질 기세로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이 몸짓은 "핵은 곧 '죽음'이다"라는 의미라고 후에 최병수 화가는 설명했다.

이들 뒤로는 '위도 지진 안전 지대 아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위에 쓰여진 한반도 지도가 보였다. 이 지도는 2001년 지진 발생 현황을 나타낸 것으로, 최근 핵 폐기장 부지로 최종 확정된 위도에도 지진 발생을 나타내는 노란 동그라미가 표시돼 있었다.

▲ "핵은 죽음이다"라는 의미의 검은 해골 가면. 이를 직접 연기한 최병수 화가는 "졸속적으로 핵 폐기장 부지를 선정한 산자부에 핵 폐기물을 상징하는 노란 통을 던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김윤정
지난 24일 정부가 부안군 위도면을 원전수거물관리센터 부지로 최종 선정, 부안군민들이 건립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반핵국민행동은 28일 오후 1시 서울 한복판에서 '최병수 화가와 함께 하는 핵 폐기장 반대 퍼포먼스'를 열었다.

양이원영 반핵국민행동 사무국장은 "핵 폐기장 부지 선정 과정의 비민주성과 위도가 핵 폐기장 부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퍼포먼스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양이 사무국장은 "핵 폐기장은 안전성이 최우선임에도 위도는 그 부지로서 안전하지 못하다"며 "그야말로 모래 위의 성"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방분권과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완전히 부정하고 부지를 일방적으로 선정한" 정부와 부안군을 규탄하고, "폭력 경찰을 동원해 지역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탄압하는 행태"를 비난했다.

이번 퍼포먼스에서 검은 해골 분장의 인물은 최병수 화가가, 나머지 인물들은 환경운동연합 간사들이 연기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종규 부안군수의 얼굴엔 기이하게도 입이 두 개. '말바꾸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을 상징하는 인물이 두른 태극기는 태극 문양 대신 방사능 심벌이 그려져 있다. 최병수 화가의 설명에 의하면 '핵 공화국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의미란다.

15분여 간의 퍼포먼스는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부안군 핵 폐기장 부지선정 철회하라" 등 구호 외치기로 마무리됐다.

"위도 핵 폐기장 부지 선정은 한마디로 사상'핵'각(沙上核閣)"
현장 미술가 최병수씨 인터뷰

▲ 최병수 화가는 현장 미술가, 민중 미술가답게(?) 낡은 배낭 안에 물감, 실과 바늘, 천 조각 등을 휴대하고 있었다. 인상과 달리 말투는 온화하다.
'핵 폐기장 반대 퍼포먼스'를 연 최병수 화가(43)는 민중 미술가, 환경 미술가, 평화 미술가로 꽤 알려진 인물.

최병수 화가는 지난 22일 부안 수협 앞에서 열린 '부안 핵 폐기장 유치 반대 군민 1만인 대회'에서도 핵폐기물을 상징하는 드럼통 위에 해골을 올려 놓은 조형물과 약 4m 높이의 핵폐기물을 실은 배 모형을 설치한 바 있다.

최씨는 86년 홍익대 미대생들의 '정릉벽화'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 연행되면서 본격적인 민중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됐다.

경찰에 연행돼 조서 쓰는 과정에서 경찰이 직업을 묻자 최씨는 '목수'라고 대답했고, 경찰이 '목수보다는 화가가 낫겠다'고 조서를 꾸미는 바람에 '화가'가 됐단다. 이후 최씨는 <말>지 등을 통해 사회 문제를 알게 되고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를 분노케 하고 세상에 눈을 뜨게 한 기사는 인혁당 사건 관련 기사였다. 그 자신이 경찰 조사 과정 중 목수에서 화가로 됐듯, 멀쩡한 사람들이 공안기관에 의해 '간첩'이 된 사건이라고 최씨는 생각했던 것.

퍼포먼스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씨는 "정확한 사전 조사도 없이 졸속적으로 핵 폐기장 부지 선정을 한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상누각과 같다"며 비민주적인 선정 과정을 비판했다.

- 이번 퍼포먼스의 의미는?
"한마디로 '사상핵각'이다. 지진이 발생한 바 있고, 지하수가 흐르는 등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도 않은 위도에 핵 폐기장을 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지진이 발생해 방사능 유출되면 어쩔 것인가. 검은 해골이 들고 있던 핵 폐기물을 의미하는 통은 그럼에도 핵 폐기장을 짓겠다는 산자부에 '죽음'을 던져주겠다는 의미이다. 군민들 무시해 놓고 '참여정부'라는 구호만 외치면 뭐하나? 게다가 부안군수더러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추켜세우다니. 너무 웃기지 않는가. 이러한 '유머러스한'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다."

- 이번 퍼포먼스에 만족하나?
"(웃음) 급히 한 것 치고는 괜찮았다.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계속 고민하고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제의하고 준비한 것은 3일밖에 안됐다."

-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시민들의 관람이 원활하지 못했다. 아쉽지는 않나?
"이번 것은 퍼포먼스다. 하나의 굵고 강렬한 의미를 전달하는 '액션'이다. 순발력이 필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시민하고 함께 하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언론을 통해 시민들이 부안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다면 족하다."

- 부안에 내려갔었는데 그 때의 느낌은 어땠나?
"나는 '이미지 하는' 사람이다. 지금 부안은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일부에선 그것을 '님비 현상'이라고 비판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열흘 밖에 안된 짧은 시간에 급하게 부지 선정을 해버렸다. 만약 잘못되면 온 국토가 끝나는 것이다. 체르노빌 사건을 봐라."

- 부안에서 선보인 조각품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
"그 해골의 턱이 비뚤어져 있지 않나. 방사능에 노출되면 인간의 모습은 기형적으로 뒤틀리게 된다. 그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 다음 퍼포먼스 계획이 있나? 그 컨셉은?
"한마디로 '핵 공화국 만들 판인가?'라는 화두로 시리즈로 전개할 것이다. 선진국들은 오히려 원자력 발전 시설을 줄이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정부는 원자력 발전이 기후 온난화를 방지해 주는 청정에너지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쓰레기가 2만년 이상 썩지 않는데 그게 무슨 청정 에너지인가. 다른 대체 에너지로 전환해 나가야만 한다."
/ 김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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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호의 기자만들기> 18기 김윤정입니다. 강의를 듣고 시민기자로 활동하지 않는다면 제 자신에게 부끄러울 것 같아 등록합니다. 기사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르포나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소외되고 버려진 곳, 주변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등을 찾아 기사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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