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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19일 철거반이 급습했다가 물러가자 안암철대위 주민 등이 승리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석희열
서울 성북구 안암동 152번지. 현재 이곳은 아파트를 짓기 위한 기초 공사가 한창이다. 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일년 전 폭력을 동원한 강제 철거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건 투쟁을 벌였던 기억들이 오히려 낯설 정도다. 마지막까지 이곳에 남아 투쟁을 계속했던 주민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안암동철거민대책위원회(이하 안암철대위) 아홉 가구 중 다섯 가구는 미아동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소위 '해당자' 네 가구와 '비해당자'로서 어렵사리 아파트에 입주한 한 가구. 그리고 나머지 가구들은 비록 같은 아파트에 살지는 못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기자는 황애경 부위원장과 연락이 닿아 이 아파트를 방문했고, 거기서 이영철 위원장의 부인 이모씨와 '비해당자' 입주 가구의 이은희씨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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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이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

현재 이영철 위원장은 서울구치소에 있다. 최근 1심 재판에서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항소, 오는 24일 최종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자수까지 했고 우리는 단지 이 작은 임대 아파트 하나 얻기 위해 그랬을 뿐이어서 당연히 쉽게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재판관이 '위원장이니까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이 위원장의 부인 이모씨는 남편을 위해 매일 면회를 간다.

"아무리 지금 생활이 어려워도 남편이 궁색한 티를 내는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면회 갈 때만은 깔끔하게 보이도록 화장도 하고 밝게 보이려고 노력해요."

지난해 2월 재개발 사실을 처음 알고 투쟁을 시작한 이래로 거의 생계를 위한 일을 그만둔 데다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빚까지 져 생활고가 심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씨는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재판을 위한 서류 준비와 변호사 면담 등만 해도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대학 2학년인 이씨의 아들은 이러한 집안 사정 때문에 일찌감치 휴학했고, 8월 초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대학 1학년인 딸 역시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다.

"작년 철대위 할 때 딸이 재수하고 있었어요. 딸에게 가장 힘들고 중요한 시기인데 뒷바라지도 못해주고 오히려 신경만 쓰이게 했으니 두고두고 미안해요."

이씨는 아들과 딸, 그리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성치 않은 몸으로 구치소 생활을 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 없단다. (이 위원장은 작년 7월 용역 직원이 던진 낫에 발등을 찍힌 바 있다. 그러나 곧바로 수배됐던 터라 치료 한 번 제대로 못받고 현재는 구치소에 있는 신세다.)

남은 건 수천만원의 빚

"정부가 무상으로 아파트를 줄 수 없다면 최저단가로 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임대아파트 주면 뭐합니까. 전세 500만원짜리 살던 사람들이 보증금만 1200만원이 넘는 이 아파트에 들어오자니 어땠겠어요?"

곁에 있던 황애경 부위원장이 말한다.

보증금 1285만원에 월 임대료 16만 7800원, 여기에 관리비, 가스비, 자녀들 교육비와 교통비 등을 합하면 한 달에 최소 150만원 이상은 벌어야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만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있는 사람들이나 아파트가 필요하지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에겐 이런 아파트란 그나마 있는 돈 다 갉아먹는 것에 불과하다."

황 부위원장의 말이다.

함께 이곳으로 이사온 중에는 남편의 대장암이 악화된 데다 이미 진 빚과 임대료 대기도 빠듯한 살림으로 인해, 아파트에서 쫓겨날 지경에 처한 가구도 있다고 한다. 임대료를 세 달만 연체하면 곧바로 쫓겨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가구는 아파트 보증금마저 차압돼 있는 상태다.

"받을 거 다 받으면서 들어오기는 왜 힘드냐"

이은희씨는 스스로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 비해당자로 분류되어 임대 아파트를 못 받게 되었으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선정돼 뒤늦게나마 입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안암동 재개발 당시 재개발조합 측은 98년을 기준으로 해당자와 비해당자로 주민들을 구별한 바 있다. 때문에 해당자 주민들이 아파트에 입주한 후에도 이은희씨 가족은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만성골수염을 앓고 있는 남편을 일단 고시원에 지내게 하고,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인 두 자녀와 함께 이씨는 교회의 사택에서 생활했다. 살림살이들은 교회 지하실에 임시로 둘 수밖에 없었다.

"안암철대위 주민들과 구청 계장을 찾아가서 그랬죠. '안해주면 365일 내내 구청 찾아오겠다'고. 운이 좋아서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예비 당첨자가 됐고, 이렇게 입주했습니다."

이씨는 '운이 좋았다'는 말을 자꾸 되풀이하면서 함께 입주하지 못한 비해당자 주민들에게 미안해했다.

이은희씨는 현재 몸이 불편한 남편 대신 식당일과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등 혼자 힘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없는 사람은 한 달에 백만원 벌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보증금도 빌려서 들어왔으니 몸이 부스러질 정도로 일할 수밖에 없잖아요. 하루 빨리 서민이 잘 사는 세상이 와야 할텐데."

온 몸에 든 골병 … "그때 우린 참 대담했다"

쌓여만 가는 가계 빚 못지 않게 작년의 투쟁 과정에서 얻은 크고 작은 병 때문에 안암철대위 주민들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용역 직원들이 마구 휘둘러대는 쇠파이프에 맞아 골병이 든 것은 차라리 예삿일이다.

화염병을 두 번이나 몸에 맞아 화상을 입은 것은 물론 이영철 위원장처럼 낫에 발등이 찍히고, 돌덩이에 맞아 머리가 깨져 20바늘 이상 꿰매고, 아파트 3, 4층 높이 되는 낭떠러지에서 떠밀려 추락하고….

"전철연 연대 갔다가 남대문 경찰서에서 시위를 한 적이 있었어요. 계단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는데 전경들이 우리를 밀어 차례로 넘어뜨렸죠. 계단 맨 아래에 서 있던 저는 꼭대기에서부터 쓰러지는 사람들에게 깔려 왼쪽 다리 십자인대와 연골이 파열됐고 수술을 두 번이나 해야 했어요."

위원장 부인 이씨는 현재 왼쪽 다리를 완전히 폈다 접었다 할 수 없는 상태다. 병원에서 재활 훈련을 하라고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엄두도 못 낸다. 황애경 부위원장 역시 왼쪽 팔이 탈골되고 인대가 늘어나 이제는 오른쪽 팔까지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상태.

"정말 악몽같은 일 년이었어."
"전쟁 페허 같은 속에서 몸이 바스러져라 싸웠으니 그때 우린 참 대담했었지."

이씨와 황 부위원장은 이렇게 지난 일년을 상기했다. 그러나 지난 일년간의 '생존권 사수 투쟁'은 이들에게 마음의 상처 못지 않게, 치유할 수 없는 몸의 상처까지 남겼음은 분명하다.

형제보다 더 애틋한 사이

"이제 여기서 더 나빠지지는 않겠죠. 최악의 일을 함께 겪었으니 형제보다 더 애틋한 사입니다. 평생 식구같이 살면서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며 안암동을 기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아이러니하게도 악몽같은 일년 덕에 안암철대위 주민들은 예전보다 훨씬 돈독한 유대를 지니게 됐다.

이은희씨 가족이 드디어 같은 아파트로 입주하던 날, 안암철대위 주민들은 안암동에 있는 교회에서 미아동까지 승용차 한 대로 여러 차례에 걸쳐 이삿짐을 날랐고 이삿짐을 풀고 청소까지 함께 했다.

굳이 포장이사센터를 부를 필요가 없었다. 없는 형편에 이씨네의 아파트 보증금을 십시일반으로 보태기도 했다. 이것뿐이 아니다. 자녀들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함께 걱정해주고, 심지어 가출한 아이를 서로 찾아나서기도 했다.

"아프면 먹을 거 챙겨주고, 음식하면 나눠 먹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거 전혀 없을 거예요. 우리는 좋은 음식을 먹을 때도, 혹시 빠진 사람이 있으면, 먹는 내내 '이거 먹여야 하는데' 하면서 아쉬워하죠."

집들이 얘기 좀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황 부위원장이 "없는 사람이 무슨 집들이가 있겠어요. 게다가 아직 위원장님도 구치소에 있고 하니까. 24일에 위원장님 나오시면 합동으로 모여서 축하 겸 집들이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암철대위 주민들은 가족탄원서, 주민탄원서 등 온갖 가능한 방법들은 모두 동원해 이영철 위원장의 출소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또 다시 이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을지 생각도 못했죠. 사람 다치고 실형 받아 아파트 얻으면 뭐합니까. 그래도 저희들의 투쟁이 철거지역의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는 데에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또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 돼서는 안됩니다."(황애경 부위원장)

"우린 너무 몰라서 당한 겁니다.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서 더 이상 속지 않고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투쟁 기간 동안 우리를 도와줬던 학생들, 기자분들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위원장님 나오시면 모두 불러서 늦게나마 집들이 할 겁니다."(이영철 위원장 부인 이모씨)

안암철대위 주민들은 올 가을 또 하나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비해당자'라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나머지 가구들을 위해 이번 가을에 있을 임대 아파트 추첨에서 "다시 한번 뭉치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죄책감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이들은 못내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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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호의 기자만들기> 18기 김윤정입니다. 강의를 듣고 시민기자로 활동하지 않는다면 제 자신에게 부끄러울 것 같아 등록합니다. 기사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르포나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소외되고 버려진 곳, 주변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등을 찾아 기사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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