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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가 내리는 오후, 잔디밭에 까치 한 마리가 비실비실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비오는 날 새를 본 것은 매우 오랜만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비가 오면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물론 자신들의 보금자리, 즉 새들의 집에 갈 것이다. 새들이 모여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들의 안식처로. 그러다가 또 다른 의문이 떠오른다. 그러면 새 집은? 흔히 보는 나뭇가지 위에 걸쳐진, 위로 입구가 뚫려있는 짚으로 꾸며진 그런 집? 그렇다면 새들은 빗물이 그냥 새어드는 축축한 나뭇가지나 풀잎을 얽어 놓은 곳에 집이라고 옹기종기 모여 않아 있는 것일까?

비로 인한 습기와 한기로부터 자신을 거의 전혀 지켜주지 못하는 그곳에서 그들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냥 나뭇가지에 앉아서 비를 맞는 것과 별로 차이도 없는 그곳에서, 집이라는 이름으로 새들의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비가 오는 날. 음습한 바람과 차가운 냉기가 후줄근히 젖은 옷을 지나 피부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드는 그런 날. 비 타령을 하며 우중충한 기분에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카페로 뛰어들어 따끈한 커피로 몸을 녹이곤 할 때.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없는 새들의 비 피하기는 어떤 것일까.

갑자기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내가 갑자기 조류의 생태와 습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다. 그냥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존재로만 막연히 느껴지던 새들이, 갑자기 애처로운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 것에 대한 일말의 놀라움, 그리고 갑자기 내 앞에 던져진 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새가 비를 맞고 있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의 발견은 결국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하긴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시각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내가 세상에 던진 의문은 결국 ‘나’라는 대상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것일 것이다.

그래. 다시 나에게 한번 물어보자. 비가 오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저 비가 내릴 때라면 몸을 적시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야 우산 밑으로 몸을 숨기기도 하고, 따끈한 커피를 찾아 카페로 들어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바람이 불고, 한때 푸르게만 보이던 삶이 음울한 색으로 변해가는 그때가 찾아온다면, 그때 나는 어디로 몸을 피할 것인가. 어디에서 힘든 삶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한기를 견디며 위로를 받을 것인가.

나도 새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둥지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얼기설기 풀과 나뭇가지로 역어진 그리 아름답지도, 그리 화려하지도 않지만, 나를 사랑하고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곳에서 추위가 오면 추운대로, 비가 내리면 몸이 젖는 대로, 바람이 불면 함께 바람을 이기며 모진 날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들이 그러는 것처럼. 비가 그치고 하늘이 다시 푸른빛으로 밝게 물들어 오면, 그동안 움추려 왔던 날개를 펴고 다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나와 함께 그 모진 비바람을 이겨낸 나의 둥지인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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