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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주의자, 한 때는 역적 또는 매국노로 참칭당할 정도의 반 애국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어느샌가 이 반미주의자란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 별로 거부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게 다가왔다.

1975년인가?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갈라놓은 염화강에 놓인 강화대교를 건너서 강화도 최전방인 호박골이란 동네 산꼭대기에 우리 부대가 주둔하던 때의 일이 불현듯 생각난다.

눈 뜨면 보이는 북녃 땅. 그 땅위에 육안으로 보면 오솔길로 보이는 길로 줄지어 움직이던 북괴군(당시표현)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체감했고, 산을 내려가 동네를 지나면 철조망으로 가려진 한강 하구에서 물끄러미 그 북녃 땅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세월을 보내던 노인의 애절한 망향가를 들으며 통일을 염원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엔가 그 북괴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시계(視界)청소를 한다는 명분으로 미류나무를 자르던 중 이를 말리던 유엔군들을 도끼로 무참히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이를 빌미로 한반도엔 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사테에 다다랐다,

군인들은 모두 참호속으로 갇혔고 그 참호 속에서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든 채 명령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누구 하나 이 새로운 전쟁이라는 것이 민족이 민족을 쏴 죽이는 참화란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고 단지 '쳐부시자 북괴군'의 도그마에 심취해 있었다.

강가의 할아버지는 매일 바라보던 강 건너의 고향을 보러 강가에 나올 수 없어서 또다시 하염없는 시간들을 방안에서 기다렸을 것이고.

초등학교 시절 그 어려웠던 가정환경 때문에 다른 부잣집 아들들인 친구들은 구경만 하며 침을 흘리던 미국 지원의 우윳가루며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을 점심 대용으로 지급 받으며 자랐고,군대시절엔 훈련이 끝나면 상하 구분없이 술자리에 합세해서 함께 웃으며 떠드는 미군들의 그 자유분방함이 부러웠으며, 엄격한 군기가 생명인 해병으로서 감히 꿈꿀 수도 없었던 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나를 친미주의자 아니 숭미주의자로 만들어 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급기야는 미국에 대한 동경과 미국인에 대한 부러움에 영어공부에 몰두하게 되었고 어느덧 헐리우드 영화에 심취하고 팝송에 미쳐갔으며 서부의 총잡이가 인디언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장면에선 나도 그들과 하나되어 함께 인디언들을 죽였다.

사고(思考)가 바뀌면 인생(人生)이 바뀐다고 했던가?

시간이 흐르고 나도 민간인이 되었다.민간인은 군인의 사고(思考)로는 살 수가 없고 나도 살기 위하여 민간인의 사고(思考)로 바뀌어 갔으며 그 혈기방장하고 용감무쌍하던 한 해병은 이제 50을 넘긴 중년의 남자가 되었다.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보내준 우윳가루와 옥수수가루, 그리고 밀가루들은 원조라는 명분으로 우리에게 보내진 후 우리네 식탁의 주요 식단이 되어갔고 어느덧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네의 입맛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서구적으로 바뀌었으며 이 땅엔 우리밀이 사리졌고 옥수수는 시장이나 포장마차에서 팔리는 삶은 찰옥수수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으며 우리의 식량 자급도는 30%를 밑돌지만 우리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쇠고기는 한우라는 명패를 크게 써 붙이고 진열되어 있지만 서로 믿을 수 없다는 핑게로 LA갈비라는 수입갈비로 대체되고 이제 쌀 마져 미국 켈리포니아 산 쌀들이 우리의 식탁에 오를날이 멀지않은 시간으로 다가왔다.

미국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는 그들의 지배를 주권국가라는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스스로를 감추며 미국의 현실지배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체, 우리 정부가 심사숙고해서 채택했다는 우리의 영공방위를 책임진 미국산 F16기가 훈련중 추락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도 기체결함에 대한 해명보다는 조종사의 조종실수로 몰고가는 정부의 발표에 우리 모두는 그냥 묵묵부답일 뿐이다.

효선이와 미순이가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죽고 용산의 미군부대에서 맹독성 화학물질인 페놀을 한강에 쏟아 버려도 조중동을 비롯한 메이져 언론들은 낙동강에 사고를 흘려진 두산산업의 패놀 방류 사고 때 보였던 그 호들갑을 잊은 체 미군의 사고엔 관대하기만 하다.

반미면 어떠냐는 현 대통령의 후보시절 발언에 그 호들갑을 떨던 신문들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추가적 조치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행태에 그 추가적 조치라는 내용물이 북폭이라는 현실로 다가올 때 한반도엔 전쟁이라는 필연적 코스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그 추가적 조치를 환영하고, 한일정상회담 이후에 국내의 여론악화를 무마하기 위하여 립서비스로 발표한 청와대의 멘트(대화와 타협,그리고 평화적해결외엔 대안없다.)엔 사설로 평론으로 다시 딴지를 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언론들의 논조와 보도에 반대하며 전 김대중정부가 줄기차게 주장하며 추진했던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에 적극적 지지를 보내는 나는, 반미주의자인가? 반미주의면 곧 친북주의자인가?

나는 이 화두가 오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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