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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남 의원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신향식
"영광스러우면서도 정말 쑥스럽습니다.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입니다."

5월 3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한글학회 강당.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글학회가 주관하는 '우리 말글 지킴이'에 선정되어 위촉장을 받은 신기남 의원(새천년 민주당)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의 회장인데도 아직까지 성사를 시키지 못해 부끄럽다"면서 "그런데도 우리 말글 지킴이로 선정된 것은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일 것"이라고 밝혔다.

신기남 의원은 "한글날은 우리 민족의 영광과 영원함을 약속하는 날인데도 그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한글날의 국경일 승격을 결정지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기중, 경기고, 서울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한 신기남 의원은 한국방송공사의 '여의도 법정'과 문화방송의 '생방송 변호사' 등 방송 프로그램도 진행한 바 있다. 제15대에 이어 16대에서도 국회의원(서울 강서갑)으로 활약 중이다. 지난 90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된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기 위해 활동한 점을 인정받아 최근 '우리 말글 지킴이'에 선정됐다.

신 의원의 '우리 말글 지킴이' 위촉식은 31일 오후 한글학회 강당에서 열렸다. 신 의원에게는 '우리 말글 지킴이' 위촉장과 순금 메달이 수여됐다. 신 의원과 함께 정의순 수녀(대구 성바오르 안나의 집)도 '우리 말글 지킴이'로 선정됐다.

▲ 신기남 의원이 세종대왕이 표지 모델로 실린 간행물을 들고 "세종대왕 시절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영광스런 시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 신향식
'우리 말글 지킴이' 위촉식에 앞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원 회관에서 신 의원을 만나 우리 말글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신 의원과의 일문일답.

- 한글은 우리 겨레의 빛나는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한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말 우리글은 우리 민족이 존재하게 된 근원이고 동시에 우리 민족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다. 전 세계적으로 5000여개의 언어가 있지만 100만명 이상이 쓰는 언어는 100여개에 불과하고 수많은 민족과 언어가 사멸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글은 8000만명 이상이 쓰고 있는, 세계 10위권의 대단한 언어다.

우리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독자적인 언어를 쓰는 데 있다. 문자와 언어가 일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인데 그런 민족은 많지 않다. 한글은 기능적으로도 우수하다. 특히 컴퓨터 시대에 아주 적합하다. 한글은 우리말에 맞춰서 발명된 맞춤형 글자다. 우리가 잘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게 세계사적인 사명을 다하는 길이다. 한글을 지키는 일을 우리가 맡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때문에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 옛날엔 한자 때문에 한글이 훼손 당했는데 요즘은 영어 광풍이 불어 닥쳐 부작용이 심각하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올바른 국어 생활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어느 민족의 언어와 문화가 사멸하는 이유는 그 민족이 세계사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사는 다양한 문화가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 만능주의가 언어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있어 안타깝다.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영어를 넣고, 영어 공용화론까지 제시하는 것은 짧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어린이들이 기본 사고를 형성할 때 국어교육을 확실히 해야 한다. 세계화 바람에 따른 편의주의 사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 신기남 의원(왼쪽)이 '우리 말글 지킴이'에 선정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오른쪽은 신향식 기자.
ⓒ 신향식
- 초등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한자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기초적인 한자는 초등학생들에게도 적절하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기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우리 말글 지킴이'로 선정됐다. 한글날이 국경일로 제정될 수 있겠는가.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야 하는데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하는데 (이들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 행정자치부의 일부 관료들의 몰이해와 부딪칠 때 정말 막막하다. 일부 기업인들이 국경일을 단지 노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 또 노동자들을 하루라도 더 놀게 하면 경제가 나빠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들을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다."

-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일이 몇년째 성사되지 않고 있는데.
"2000년 11월 이후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데 찬성한다며 서명한 의원이 모두 108명이다.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의 회원수도 45명이나 된다. 그런데 서명을 하는 의원이 많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 안건이 국회 본회의장에라도 오르면 통과될 수 있을텐데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힘들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올라와야 하는데 행자위에서 한글을 보수적인 관점에서 본다. 일부 의원들은 찬성을 한다. 그런데 정부 측 의견을 참고하여 국경일을 조정해야 하는데 행정자치부에서 반대를 하거나 회의적인 의견을 내 놓는다. 행자부에서는 노는 날을 하루라도 더 만들면 국가 경제가 후퇴한다는 논리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있다. 특히 주 5일제 근무와 맞물려 재계에서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을 반대해 왔다. 다시 말하면, 경제 지상주의가 먹히는 실정이다."

▲ 신기남 의원은 "공휴일이 많아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게 곤란하다면 공휴일 제도를 이번 기회에 전면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신향식
-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이 실현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핵심은 행정자치부가 갖고 있다. 행자부의 김두관 장관은 젊고 진보적이다. 하지만 그 밑에 있는 관료들이 옛 시각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노는 날이 실제로 많지 않다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사실 휴가를 제대로 찾아 즐기는 것도 아니고, 주 5일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주당 근무시간이 상당히 많은 실정이다. 노는 날이 많아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면 곤란하다고 하지만 하루 쉰다고 해서 경제가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공휴일이 12일이고 국경일이 4일이다. 쉬지 않고 일하는 기념일은 36일이다. 만약 일하는 날이 줄어 드는 것 때문에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이 곤란하다면 공휴일 수를 조정하면 된다. 이것은 법률 개정없이 대통령령으로 국무회의만 통과하면 된다."

▲ 신기남 의원이 31일 오후 한글회관 강당에서 허웅 이사장으로부터'우리 말글 지킴이' 위촉장을 받고 있다.
- 한글날을 단순히 노는 날로 만들자는 게 아닌데도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다.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은 단순히 노는 날을 하루 줄이고 늘이는 문제가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한글날의 국경일 승격을 위해 공휴일을 조정할 수 있다. 사실 어린이날과 식목일은 꼭 노는 날이 아니어도 되지 않는가.

그런데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은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한글과 한글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얼마나 큰 의미가 담겨 있는 날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영광과 영원함을 약속하는 날인데 그 중요성을 가볍게 넘기고 만다. 일부에선 '국어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국경일이 될 수 있느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다.

한글은 창제일과 창제자가 분명히 기록된 문자다. 외국에선 문자에 관한 국경일을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든다. 남의 글자를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정을 깨달으면 공휴일을 조정하여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일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 31일 오후 한글회관 강당에서 열린 '우리 말글 위촉식' 행사에 참석한 신기남 의원(왼쪽).
- 현재 4대 국경일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4대 국경일 중 개천절을 빼면 모두 최근 100년 내에 벌어진 사건을 기초로 한 것이다. 그중 제헌절과 개천절은 건국에 관련된 것이고, 삼일절과 광복절은 일제와 연관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일제시대만 있었는가? 일제와 싸운 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인가. 왜 해방 이후 것만 국경일로 제정을 하는지 모르겠다. 유구한 역사를 증명할만한 국경일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한글이 나온 것은 정말로 천우신조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도 한글이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이두 문자를 쓰거나 일본처럼 가나를 빌렸을 것이다. 물론 우리 문학도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울러 전통 문화가 제대로 기록되었겠는가. 국민들은 이두 문자를 쓰고 지식인들은 한자를 쓰는 식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화되어 독립된 국가라고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글이 없었으면 민족문화의 힘이 비교안될 정도로 낮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한글 창제는 민족사 최대의 사건이다. 한글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마누라가 보기 싫어도 없을 때를 생각해 보듯이 한글이 없을 경우에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지 생각해 보라."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 발의하고 서명운동 벌여
신기남 의원, 한글 발전 위해 어떤 일을 했나

2000년 10월 2일 여야 의원 33과 함께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2000년 11월에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을 구성한 뒤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민족 문화 중흥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2000년 11월부터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찬성한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벌였다. 또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공청회'(2000년 11월 30일)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해 12월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개정 법률안'을 상정하여 원안대로 통과하도록 힘쓰고(현재 계류 중)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이 법안에 대한 '의견제시의 건'을 상정하여 원안대로 통과의견을 의결하도록 주도했다.

2001년 6월엔 한글날 국경일 지정 국회의원 2차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1, 2차 포함) 모두 108명을 동참시켰다. 아울러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와 함께 법안 통과를 위한 활동을 국호와 정부, 정당을 대상으로 펼쳤다.

사회 각계에도 서한을 발송하고, 각당 대표를 면담하고, 국회의원 간담회를 주도하고, 행정자치부 장관을 면담하고, 대언론 활동을 벌이면서 한글날의 국경일 승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신기남 의원은 "올 9월 정기국회까지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지 못하면 2000년 12월에 상정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중 개정 법률안'이 폐기된다"면서 "노는 날이 문제라면 공휴일을 조정해서라도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 신향식 기자
- '우리 말글 지킴이'로 선정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회의원이 한글날에 관심을 갖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색적으로, 신통하게 볼 것이다. 게다가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데 앞장서다보니 약간 돋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기 위해선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한글학회나 한글운동가들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법률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의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고 본다."

- 2000년 10월에 신기남 의원이 주도하여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는데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해 달라.
"10여년 전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에서 빠지고, 한글날 기념식도 너무 소홀하게 치러 화가 났다. 한글에 대한 민족사적 의의가 크다고 보기 때문에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 맏딸의 이름(신하늘-대학 1학년)을 순우리말로 지을 정도로 한글을 사랑한다. 둘째도 한글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어른들께서 '족보에 올리기 어렵다'고 말리시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글은 우리 민족 정신의 근원인데 오랫동안 천대를 받아왔다. 외래어가 범람하고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유아들을 상대로 영어교육을 하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민적, 상징적인 일이 필요하다고 보아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하는 일을 시작했다. 단순히 공휴일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하루 더 놀자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여 민족 문화를 융성하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것은 정말로 큰 의미가 있다. 한글학회에서 이 일을 해왔는데 이젠 국회에서 해야 한다. 정부 입법으로할 경우엔 문화관광부에서 찬성을 해도 행정자치부와 경제부처가 반대를 하기 때문에 의원 입법을 하는 게 유리하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려고 해마다 시도를 했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대통령과 행정자치부 장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통령이 한글날의 의미를 깨우쳐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8.15 해방 이후에 태어난 한글세대다. 일본어 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로 트인 생각을 가진 분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대통령 당선 뒤에도 마찬가지다. 공휴일을 대통령령으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번 기회에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 문제와 맞물려 공휴일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 신기남 의원은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기 위한 법률안을 상정하고, 서명운동도 벌였다"면서 "하지만 일부 행정 관료들의 보수적인 생각 때문에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지 못했다"고 밝혔다.
ⓒ 신향식
-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면 어떤 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보는가.
"단순히 공휴일로 해서는 그 중요성을 모른다. 한글이 위대한 민족문화의 유산이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국경일이라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문자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살아나면, 민족의식이 살아나고, 그 다음엔 우리 민족의 영광이 올 수 있다. 모든 게 민족 자부심을 바탕으로 진행될 것이다. 민족의 에너지를 응집시키고 우리 민족이 하는 게 바람직하게 전개될 것이다.

민족 자부심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는 큰 차이가 있다.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는 다른 민족과의 관계도 좋다. 물론 배타적으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가난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재도약을 해야 할 때다. 이런 시기에 민족의식을 키우는 '국경일 한글날'이 필요한 것이다.

한글날은 국민정신 교육에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정신을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하는데 한글날이 좋은 재료다. 세계 어느 나라도 문자를 기념한 국경일은 없다. 다른 나라는 하고 싶어도 못한다. 한글은 세계적인 발명 특허다. 한글날을 문화 국경일로 만들어 자랑하고 자축을 해야 한다. 일본은 (문화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데 문화절을 만들어 기념을 하고 있지 않은가."

-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 운동을 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한글 운동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는가.
"법과 대학을 나오고 고시 공부를 했지만 원래 (한글로 쓴)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 문화관광부에서 국어기본법을 제정한다는데.
"국어기본법은 언어 사용의 오용을 막고, 한글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법이다. 국가가 국어 발전에 투자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필요한 법안이라고 본다. 여러 법률이나 규정에 말글에 관련된 언급이 흩어져 있어 국어기본법을 통해 일관성 있게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하지만 검토 과정에서 보완하면 된다."

▲ "쌍무지개와 한글날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29일 오후 신기남 의원을 인터뷰하고 국회의원 회관을 나서는데 여의도 상공에 쌍무지개가 두둥실 떠올랐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기 위한 법률안이 올 9월 정기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희망의 무지개처럼 느껴졌다.
ⓒ 신향식
- 한글을 지키는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면.
"자기 민족이 지켜온 전통을 잘 간직하여 전승하는 것은 그 민족에게 떨어진 의무다. 민족문화를 보존하여 발전하도록 해야지 사멸되도록 하면 안된다. 서양문화가 팽배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게 아니다. 다른 문화를 침범하여 뒤덮어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때문에 각 민족이 고유 문화와 언어를 지키기 위해 저지선을 세우고 분투를 해야 한다.

▲ 신기남 의원이 31일 오후 한글회관에서 '우리 말글 지킴이' 위촉장을 받은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 역시 부여받은 세계적 사명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우리말 우리글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 주는 것이다. 한글이라는, 우수한 언어와 문자를 연구하여 세계 최고의 언어 문화권을 만들어 보자. 지금껏 쫓기듯이 한글날 행사를 열었는데 이래서 되겠는가. 한글날 기념식에 대통령도 참석하고, 온 국민의 문화 의식을 드높이는 대단한 행사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학생들이 한글기념관을 방문하여 보고서도 쓰고, 한글에 관련된 행사를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전국적으로 한글날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중요성을 한층 강하게 일깨워야 한다.

우리 민족을 너무 비하하면 곤란하다. 우리처럼 심오하게 고유 문화를 활짝 피운 민족이 많지 않다. 인구만 해도 결코 기죽을 필요가 없다. 우리처럼 빛나는 문화를 지켜온 민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정말로 세계에 자랑할만한다. 이를 후세에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어떻게 보는가.
"세종대왕은 대단한 사람이다. 한글을 상당히 잘 만들었다. 당시에 학문적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집현전 학자들에게 연구하도록 하여 한글이 나온 것이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다. 당시 문화 수준이 세계 최고였고, 학자를 양성하는 체계도 무척 좋았다. 우리 역사상 가장 영광스런 시대였다고 본다. 그래서 한글이 나온 것이 아닐까. 세종대왕 시절은 부국강병도 이루고, 발명품도 많이 나온 문화과학의 시대였다. 당시 국세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도 정치가 발전하면서 국운 융성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추석연휴 늘리면서 한글날을 법정공휴일서 빼다니...
'국경일에 관한 법률중개정 법률안'에 대한 설명서

한글날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고, 1982년에는 '법정 기념일'로 되었으나 1990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추석 연휴를 하루 늘리면서 공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제외시킨 것입니다.

이에 대해 즉각 문화계를 비롯한 전국민적 반발이 잇따랐고, 그후 10년간 한글날 지위 격상을 위한 국경일 지정운동이 전개되어 왔습니다. 정부도 1999년 3월 '한글 발전 종합 추진계획'을 세우고 한글날의 국경일 승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방침을 확정한 바 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 벽두를 맞이하여 새로 구성된 16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에서 성사시키라는 국민의 여망이 전달되어 지난 9월 29일 여야의원 33명이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하였고, 지난 11월 15일에는 여야 4당 의원 47명이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만들어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뜻은 명확합니다. 작년 한글학회에서 실시한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에 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 70.6%가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데 대해 찬성하였습니다. 올해 10월 2일에서 4일까지 인터넷 한겨레에서 10,229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91%가 찬성하였습니다.

한글은 인류의 문자중 가장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세계의 석학들이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언어학자인 샘슨은 "인류가 쌓은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의 하나"로 꼽았고, 미국 시카고 대학의 맥콜리 교수와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로 한글날은 세계인 모두가 축하해야 하는 날"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지난 97년 훈민정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등 한글과 한글날에 대해 세계인은 찬사와 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국어로 사용되는 문자가 창제(발명)된 것은 세계 역사상 한글이 유일하며, 국어가 만들어진 날과 만든 주체·과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나라 또한 우리나라뿐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문자 창제를 경축하는 국경일이 없다'는 사실은 1990년도에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면서 그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었는데, 이는 오히려 한글날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강조하는 데 인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세계 어느나라도 문자를 '언제, 누가' 창제한 일이 없었기에 한글날과 같은 경축일을 가질 수 없는 것이며, 그만큼 한글 창제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우리 민족만의 업적인 것입니다.

한글날의 가치와 위상에 대한 이견은 사실상 없습니다. 다만 공휴일 확대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으로 좀 미루는 게 좋겠다는 경영계의 소극적인 입장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또한 과장된 걱정입니다. 우리나라의 공휴일 수는 16일로 일요일인 52일을 합쳐 68일이지만, 일요일과 겹칠 경우 다음날을 쉬는 제도가 없어 실제 휴무일은 65∼67일입니다. 이는 선진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아르헨티나 122일, 스페인 118일 등 중진국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습니다.

주 5일 근무제를 전제로 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분도 계시지만, 이것은 아직 실시되지 않은 제도일 뿐만아니라, 만약에 실시된다고 해도 실제 휴무일은 114∼117일 정도가 되어 일본의 124일, 독일과 벨기에 118일 등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적습니다.

휴가일수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다른나라에 비해 적게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 노동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월차휴가 12일 가운데 4.5일, 연차휴가 11.6일 가운데 3.7일 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당 실제 근로시간은 48.1시간으로, 대만 46.1시간, 미국 41.6시간, 일본 38.2시간에 비해 매우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 현실에서 휴일이 많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지나친 것입니다. 그리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함에 있어 산업생산성을 이유로 반론을 펴는 것은 가치 부여의 주객전도라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한글날을 길이 지킴으로 해서 우리가 얻는 문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은 공휴일 하루분의 산업생산성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큰 것입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것은 한글과 한글날에 대한 올바른 자리 매김이며, 이로써 한글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사랑을 높이고 한글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또한 문화 역량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화의 시대를 맞아 세계 최고의 문화적·학문적 성취인 한글 창제를 기림으로써 문화민족의 긍지를 고취하고 우리의 문화적 저력을 배가한다는 의미도 큽니다.

국가정책 측면에서도 한글날의 위상 재정립은 한글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 연구를 활성화하여 정보화에 적합한 한글의 특성이 더욱 발전되고, 21세기 지식정보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문자 창제일을 국경일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것이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널리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며,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사람들도 한글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 가치를 인식케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의 근간이자 상징인 한글이 만들어진 '한글날'은 개국기념일인 '개천절'과 국권을 되찾은 '광복절'에 견줄 만한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경사스런 날을 기리는 국경일로 한글날이 지정되는 것은 마땅하며, 1949년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국경일에관한법률'의 입법 정신을 살리는 일이 되겠습니다.

휴일이 많다는, 근거없는 걱정으로 미루어 둘 일이 아닙니다. 문화의 세기가 시작하는 바로 지금이 결정을 내릴 때입니다. 21세기에는 찬란한 한민족의 문화가 꽃 피울수 있도록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여러분들께서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0년 12월 4일. 국회의원 신 기 남 / 신기남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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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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