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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는 국어교육>(2002. 겨울)에서 김수업의 <배달말꽃>에 대한 책을 알게 되었다. 낯선 이름으로 된 이 책을 읽어가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뚜렷한 잣대를 가지고 우리 문학의 흐름을 풀어나가는 날카로운 눈과 그 힘에 완전히 짓눌리고 말았다. 책을 읽고 난 뒤 그 놀라움은 곧 지은이에 대한 우러러봄으로 바뀌었다. 지난날 내가 읽었던 많은 <한국문학사>들 하고는 너무나도 다른 새로운 책이었다.

이 책은 먼저 <배달말꽃>이라는 책 이름의 풀이에서 비롯된다. 문학을 흔히 ‘말로 이루어진 예술’이라 뜻매김하고 있다. 곧 삶의 여러 모습들을 말로 담아 낸 예술이 곧 문학이라는 말이다. 말이란 입말에서 비롯하여 글말을 만들어 내었고, 오늘에 와서는 전자말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동양에서 말하는 ‘문학’이나, 서양에서 말하는 ‘리터러처’는 글말에만 얽매여 있다. 그래서 서양의 이론가들도 ‘리터러처’란 말보다는 말의 예술이란 뜻의 독일말 ‘보르트쿤스트’나 러시아말 ‘슬로베스노스트’가 훨씬 마땅하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마땅함을 좇아 ‘문학’이라는 말을 버리고 ‘말꽃’이라는 말을 지은이는 새로 만들어내었다. ‘말꽃’이란 ‘말로 이루어 놓은 꽃’, ‘말 가운데 가장 종요로운 꽃’을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마땅함에 뜻을 같이 하면서도 들었던 생각. 과연 우리 학계에서 이 말이 받아들여질 것인지. 내가 알기로 ‘장르’라는 말이 ‘갈래’로 바뀌는데 20여년이 걸렸는데.

다음으로 ‘배달’이라는 말이다. 여태껏 우리 겨레의 말꽃을 싸잡아 ‘국문학’ 또는 ‘한국문학’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국문학’이란 말에는 나라의 임자가 드러나 있지 않으며, 한국이라는 말에는 오늘 우리 나라를 말하고 있으니 나라를 뛰어넘어 겨레의 말꽃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난날 우리 겨레 모두를 싸잡을 수 있는 말로 지은이는 아주 먼 옛날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배달’이라는 말을 쓰고자 하였다. 이 또한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학계에서 그대로 받아 줄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면 배달말꽃의 넓이와 갈래를 다루고 있다. 배달말꽃의 넓이에서 한문문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한문문학을 뚜렷한 잣대도 없이 그냥 배달말꽃의 한 부분으로 넣고자 한다. 하지만 말꽃은 먼저 그 말이 입말인가 글말인가에 따라 입말말꽃과 글말말꽃으로 갈라지며, 글말이 배달글이냐 일본글이냐 중국글이냐에 따라 배달글말꽃이 되고 중국글말꽃이 되고 일본글말꽃이 되는 것이다. 학문에서 이러한 잣대는 너무나도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학문은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닮았는지 그저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한문문학을 배달말꽃에 슬그머니 집어넣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스스로 잣대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한문문학은 우리 말꽃이 아니니 그냥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짜임새와 모습이 서로 다른 배달말꽃과 한통속으로 뒤섞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이지, 한문문학은 천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져서 뿌리가 깊고 분량도 많으므로 더욱 알뜰하게 연구하여 새로운 우리 겨레의 문화를 가꾸는 밑거름이 되도록 힘써야함을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잣대로 우리 말꽃은 배달 겨레의 말꽃이라는 큰 테두리 속에 배달말꽃과 중국글말꽃 그리고 일본글말꽃으로 나누고, 배달말꽃 속에는 다시 입말꽃과 글말꽃 그리고 전자말꽃 셋으로 나누고 있다.

말꽃의 갈래 짓기는 말꽃이 생겨난 바탕을 두 가지 잣대로 하여 갈래 짓기를 하고 있다. 첫 번째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이다. ‘무엇’에 따라 ‘삶의 말꽃’과 ‘굿의 말꽃’으로 갈래 지워 놓고, ‘어떻게’에 따라 ‘놀이말꽃’과 ‘노래말꽃’과 ‘이야기말꽃’으로 갈래지었다. 여기서 다시 굿의 말꽃은 서낭굿말꽃과 조상굿말꽃으로 삶의 말꽃은 일말꽃과 놀음말꽃으로 다시 나누었다. 여태껏 말꽃에서 우리가 제대로 눈길 주지 않고 그냥 흘려보냈던 굿에서 우리 말꽃의 흐름을 엮어내고 있다. 깨어 있는 마음과 눈으로 올바른 이치를 새롭게 찾아 뒤에 배우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또 하나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말의 부림이다. 책 이름에서 비롯하여 부려 쓰다, 종요롭다, 싸잡다. 뜻겹침, 뜻매김, 겉뜻, 속뜻, 핏줄, 동아리, 줄곧, 물길, 노릇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쉽고 고운 우리말을 찾기 위해 애쓴 모습이 한 쪽 한 쪽 읽을 때마다 곳곳에 보인다. 이러한 쉬운 우리말을 부려 쓴다는 것은 남을 헤아려주는 속 깊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지은이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으며 앞서 가는 이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접어 두는 책이 아니라 늘 곁에 두고 꼼꼼히 읽으면서 배달말꽃의 흐름을 제대로 익히고, 아울러 지은이의 우리말에 대한 사랑도 고스란히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 말꽃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이 책을 제대로 읽어 우리 말꽃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달말꽃

김수업 지음, 지식산업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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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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