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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화(異文化)를 연구할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태도는 그 사회와 문화에 대한 존중이라고 본인은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에서 '일본 알기' 붐을 타고 무수히 많이 등장하는 일본 관련 서적들 중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관한 올바를 지식을 전달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하게 왜곡하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해오고 있었다.

이런 책들은 대체로 '우리 것이 제일이다'라는 식의 자민족중심주의적인 (더러는 민족주의적인) 태도를 강하게 들어내거나, 우리의 잣대로 일본 문화를 평가하면서 자기도취의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이것이 곧 '극일(克日)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출판계의 난맥상을 청소할 것 같이 보이는 책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미즈노 순페이/오키타 쇼리 지음; 아이디오 출판, 2003년)이란 책이 나왔다기에 우선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공저자 미즈노씨와 오키타씨는 지난 10년간에 걸쳐서 한국의 '일본관련 엉터리 책'을 연구해온 한 연구회의 창립멤버라고 했다. 이 책은 '한일대결 엉터리 소설', '한일 역사 엉터리 책', '그 밖의 일본관련 엉터리 책' 등 3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도합 34권의 '엉터리 책'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공저자 두 사람이 나누어서 집필한 것으로 어느 책을 누가 담당해서 비판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큰 기대와 함께 호기심에 충만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실망이 더해갔다.

서문에는 10년 간에 걸쳐서 이 '엉터리' 책들을 분석하고 이 책을 썼다고 밝혔지만 그 내용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 학자들의 일반적인 스타일인 심층적인 분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적어도 외국인이 다른 나라에서 출판된 책 중 자기 나라에 관한 것을, 그것도 '엉터리 책'이라는 라벨을 붙여서 비판하려면 그 정도의 성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34권의 '엉터리 책'에 대해서 각기 10쪽 내외의 겉핥기 식 비판만을 늘어놓고 말았다.

책을 읽어내려 가다가 가장 충격을 받고 분노마저 느끼게 된 것은 '한일 역사 엉터리 책'을 다룬 제2장에 있는 한 노학자의 연구서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접하게 되면서였다. 문제의 비판 대상은 최재석 교수(고려대 명예교수)의 연구서 <일본 고대사 연구 비판>(일지사, 1990)이었고, 공저자 중 미즈노 순페이(水野俊平)씨가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비판의 대상이 된 34권의 '엉터리 책' 중 거의 유일하게 학술적인 연구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도쿄 시내의 지상을 한바퀴 도는 전철 '야마테선'(山手線; 도쿄에 있는 것은 '야마노테선'이지 '야마테선'이 아니다)을 지하철이라고 쓰고 있는 등의 '엉터리 책'과 같은 급으로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미즈노 '교수'로 불리우면서(사실 그는 한 국립대학의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로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인' 서열 2위에 오르는 등 잘 알려진 그가 한국의 학계를 서슴지 않고 유린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적어도 대학의 강단에도 서고 있는 사람이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마치 인민재판에 부치듯이 학술 영역 바깥으로 끌어내려 '엉터리 책'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비난을 퍼붓는 것은 결코 정당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도 한일고대사라는 한일간의 민감한 부분에 대한 학술연구 결과를 아마추어의 수준에서 부당하게 비판한다는 것은 일본인 미즈노 '교수'의 저의마저 의심하게 된다.

최재석 교수는 한일고대사 분야에서 지금까지 12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고, 이 연구의 결과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10년여에 걸쳐서 7권의 연구서와 한 권의 개설서로 간행되었다. 미즈노씨는 일본어로 이 "엉터리 책 비판"을 낼 때까지 마지막의 <고대 한일관계와 일본서기>(2001)를 제외하고는 최 교수의 연구결과를 모두 접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의 비판은 '일본 고대천황의 원적'에 집중되었고, 8쪽에 걸친 비판의 텍스트 중 최교수의 '주장'에 대한 '몇 가지 중대한 결함'으로 지적된 것은 1쪽을 넘지 않고 있다. 즉 미즈노씨는 <일본서기>가 후세에 심하게 고쳐 쓰여졌다는 최 교수의 주장을 되받아서 그런 '날조된 일본서기의 기술'을 근거로 천황의 원적을 파헤치는 것 그 자체가 '엉터리 학설'이라는 것이고, 그 <일본서기>의 어느 부분이 고쳐 쓰여졌는지를 사료 비판도 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연구는 '엉터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즈노씨가 인정하고 있듯이 최 교수의 학설은 "연구방법이 실증적이고 논리도 치밀하다." 최 교수의 연구서들은 어느 것이나 철저하게 근거를 제시하고 있기에, 그의 학설에 대한 비판은 그런 근거들이 학설을 뒷받침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렸지만 미즈노씨는 이것을 학술적인 연구 영역 바깥으로 끌고 나와 무려 단행본 7권의 학술연구서에 담은 10여 년에 걸친 한 노학자의 연구결과에 '엉터리 학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의 명예에 오물을 쏟아 붓고 말았다.

미즈노씨의 행동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판될 때는 <한일 전쟁 발발>(문예춘추사, 2001)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이 때 미즈노씨는 '노히라 슌수이(野平俊水)'라는 가명(또는 필명)을 썼다. 학술적인 연구서를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도 않은 채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윤리적이지 못하다. 그의 이런 행동은 한국어판을 내면서 대담의 형식으로 서문에서 그가 언급한 <추한 한국인>이 익명으로 한국을 악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러나 이 한국어판의 <엉터리 책 비판>에서는 자신의 본명인 '미즈노 순페이'를 밝혔고,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미즈노 '교수'의 인기를 의식하고 있는지 자신의 사진까지 표지에 싣고 있다. 이는 한국 사람들의 지적인 수준을 얕잡아 보고 있거나 우롱하고 있는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오만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국립대학의 강단에 서고, 또 국영방송에 정기적으로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수준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하다.

한일고대사 연구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일본서기>가 후대에 많이 고쳐졌다는 최 교수의 학설이 과연 '엉터리'로 불릴 만한 것일까? 일본 사학계의 실증사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쯔다(津田左右吉)는 <일본서기>의 백제 중심 기사를 고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했고, 스에마츠(末松保和)는 <일본서기>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려는 태도를 가지면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고 하다가 소를 죽이게 된다고 말했다는 사실, 그리고 스즈끼(鈴木武樹)는 <일본서기>는 감추려고 하는 것들이 하나도 감추어지지 않고 있다고 술회한 것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또한 일본의 중심적인 사서인 <일본서기>가 백제에 대해서 그렇게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즈노씨는 최 교수의 '엉터리 학설'을 비판하기 전에 일본 학계의 '엉터리 학설들'부터 청소하려고 했어야 옳았다. 아니면 그가 장기적으로 한국에 체류하면서 진정으로 한국 사회와 한국 문화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일본에서 '엉터리'로 쓴 한국문화론 관련 서적들에 대해 철저한 비판이 앞서야 했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발전은 도그마에 기대기보다는 진실을 밝히려는 집요한 탐구정신에 기초해야만 한다. 혹시 어떤 학설이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새로운 해석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최 교수의 학설이 '엉터리'라고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학설을 극복할만한 새로운 증거들을 내놓는다면 그 자체가 학문적인 발전이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 자문화중심주의로 충만한 책이나 조악한 일본 문화론을 비판한 데에는 이해가 가지만, 옥석을 구분하지 않은 채 학술 연구서의 분야에까지 무차별 비판을 퍼부은 미즈노 '교수'의 행동은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미즈노씨는 최 교수의 '엉터리 학설'을 비판하면서 이런 사람이 한국사회학회의 회장까지 지냈다고 빈정거렸다. 이는 다분히 한국사회학회를 비하하는 말이다. 박사학위도 사회학으로 취득한 사람이 역사연구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미즈노씨 자신은 이런 역사연구서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본에는 자신의 원래의 학문 영역을 떠나서 다른 분야에 혁혁한 업적을 남긴 분들이 얼마든지 있다. 일본 지성계의 큰 별인 우메사오(梅棹忠夫)씨는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그는 초대 국립민족학박물관의 관장을 역임했고, 문화인류학 분야에 기념비적인 업적들을 남겼다. 또 국립민족학박물관의 제3대 관장을 맡았던 이시게(石毛直道)씨도 교토대학에서 농학박사의 학위를 취득했지만, 역시 일본 문화인류학계의 거장이다.

미즈노씨와 오키타씨는 '한일대결 엉터리 소설'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3)를 꼽고 있지만, 이 소설이 무려 330만부가 팔려나간 94년도 한국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만을 지적했을 뿐 비판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엉터리 소설'의 원조격으로 지목한 이 책에 대해서는 300만 이상의 독자를 의식해서였는지 비판의 칼을 들이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한 <일본 문화의 수수께끼>(김문학.김명학 저, 1998)에 이르러서는 <축소지향적 일본인>이라는 일본 문화론 저서로 유명한 이어령 박사가 "양파의 껍질을 한 장 한 장 벗겨내듯 일본 문화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일종의 일본 문화론의 기본사전"이라고 추천사에서 극찬한 책이지만, 실은 "조악한 수준으로 급거 제조된 엉터리 책"이라고 혹평을 퍼부었다. 이런 조악한 책을 극찬한 이어령박사의 <축소지향적 일본인>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물었을까? 이 비판서 전반에 걸친 시각으로 봐서 이어령 박사의 일본문화론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을 것 같지만, 한국의 지성계에서 그의 권위를 의식했음인지 포문을 열지는 않았다.

미즈노 '교수'는 이 '엉터리 책' 비판서의 표지에 윤봉길 의사의 "무지와 왜놈은 공적(共敵)이다"라는 말을 옮겨놓고 있다. 그는 이제 이 두 가지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양쪽 모두에 해당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야할 것이다. 한국의 사학계가 외면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엉터리 학설'을 판별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도 중요한 연구 테마에 대해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다면, 학계는 분명히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술 논문집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지 않았다는 것은 곧 그 학설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용기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 어떤 학설에 대해서 무시한다든가, 차가운 시선을 보내면서 학술적인 영역의 바깥으로 끌고 나와 말로만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학문적인 태도가 아니다.

미즈노씨에게 마지막으로 한가지 부탁을 남기고 싶다. 그는 이렇게 오만에 찬 비판만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최 교수의 연구서들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그 '엉터리'의 전모를 일본의 학계에 알리는 것이 어떨까?

그럴 자신이 없다면 그의 책에서 최 교수 연구에 대한 비판 부분을 빼고 최 교수에게 정중히 사과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평생을 자신의 학문세계에만 몰두해온 한 노학자의 학문적인 태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신간서적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미즈노 순페이/오키타 쇼리 지음; 유준칠 옮김)(2003)에서 미즈노 '교수'의 오만한 행동에 대한 비판입니다.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

미즈노 슌페이.오키타 쇼리 지음, 유준칠 옮김, 아이디오(IDO)(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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