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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이란 게 존재할까?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이성적이며 정확한 기호인 '수(數)' 마저도 존재하지도 않는 숫자 '0'을 가상으로 만들어 불완전한 '완벽'을 추구할 뿐이다. 덧붙이자면, 숫자 1 조차도 불완전한 수다. 다만 1에 가까운 근접성에 대해 1이라 호칭하고, 그걸 인정할 뿐이다.

▲ 체게바라 표지사진
ⓒ 이종열
기독교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불교에서는 억겁동안의 전생의 업이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든다고 한다. 고로, '완벽한 인간' 이란 없다. 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몇 년 전에 함석헌 선생에 대한 '성공시대'를 방영한 일이 있다. 초점은 그의 '씨알' 사상이였으며, 그의 애국심과 민초들을 생각하는 마음, 나라를 위한 비분강개와 '뜻' 에 대한 초지일관의 자세에 맞추어졌다. 한국현대사의 정신이었으며, 불우한 우리의 한줄기 희망이었다는 식의 다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걸 보면서, 아내가 말한다. "저 사람이 뭐가 훌륭해? 저 사람 부인은 평생 가족들 생계를 위해 고생해야 했고, 입고 싶은 외저고리 한 벌 못 입고, 기 한번 못 펴고 살았는데..."

실천문학사에서 발행한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 은 '완전한 인간'에 가까운 체 게바라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영웅들'처럼 과장되게 칭송하지 않으면서도, 그는 '영웅'처럼 서사되어진다. 한번쯤 '체 게바라' 의 사진을 본 일이 있다면, 일단 그의 외피에서 드러나는 조각같은 외모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으리라. 남자가 봐도 잘 빠지고, 흡인력 강한 외모임에 틀림없다. 그런 외모를 지닌 채, 의사이면서도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 간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불완전한 인간' 들의 콤플렉스를 자극할 만 하다.

90년대 이후 '완전한 사회형태'를 구현하려던 '이데올로기'는 종식되어졌지만, 그 사상의 터무니없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 대신 그 사상을 이론이 아닌 몸과 행동으로 실천한 한 인물로서, 그의 완전성에 가까운 '행동' 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왜 체 게바라인가?"
그건, 그가 가진 '완벽에 대한 근접함'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피델 카스트로'처럼 현재까지 살아있었다면, 그 완벽에 가까운 근접성은 허물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쿠바의 혁명에 안주한 카스트로와는 달리, 그는 불완전한 다른 사회(볼리비아)에 까지 혁명 전도사로서 자신의 생을 바치다 영웅처럼 산화한다.

젊은 시절 남미일대를 여행하며 '책' 이 아닌 사람들과 현실을 통한 지혜와 지식, 그리고 불공평한 제도와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의사' 시험에 붙었으면서도 청진기가 아닌 '총'을 들고 아르헨티나인이면서도 '카스트로' 와 함께 쿠바 혁명 전쟁에 뛰어든 사람. 쿠바 제1은행 총재직을 하면서도 웃통을 벗고 노동하기를 주저치 않았으며, 바쁜 일과에도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고, 위에 올라갔으면서도 다시 맨 밑바닥에 내려올 줄 알았던 사내. 궁극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사회'를 위해 죽음의 강으로 용기 있게 투신할 수 있었던 '완벽한 영웅에 근접한 인물'이란 생각으로 이 책은 읽혀진다.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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