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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화살> 고은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궁· 시(弓· 矢). 이들 문자는 활과 화살의 상형이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활 잘 쏘는 이'로 이름났는데 기실은 고구려는 기마민족의 표상으로 활 잘 쏘는 용맹한 나라였다. 그래서 예부터 중국인은 한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했다. 그러나 동쪽 오랑캐가 아니라, 이(夷)가 대궁(大弓)이고 보면 동이(東夷)란 한민족을 지칭하는 말로 동쪽의 큰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뜻이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 정확히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있어온 활과 화살은 지금껏 기초 재질 말고는 원리와 동작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즉 반동의 힘을 역이용하는 물리(物理)이다. 주된 용도는 사냥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을 위한 공격과 방어의 수단, 전쟁의 주 무기로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활도 활이지만 화살에 더 많은 노력이 경주된다.

대나 균형 잡힌 나무를 매끈하게 다듬어 그 앞 끝에 쇠로 만든 촉을, 다른 한쪽에는 새의 깃털을 달고 오늬를 붙인다. 오늘날 탄도의 몸체와 별 다를 바 없는 원리이다. 특히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의하면 '고려전(高麗箭)'이라 이름 붙여진 화살은 1000보(步)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갑옷 투구를 뚫을 수 있을 만큼 빠르고 촉이 날카로웠다고 한다.

어떻든 화살은 인류와 운명을 같이 해온 것만은 사실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화살도 시대에 따라 성격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방어이냐 공격이냐를 떠나서 과녁의 성격이다. 과녁에 따라서 화살도 달라야 한다. 시에서는 살생이 목적이 아닌 '이 한 몸 산화(散華)'이다.

1970년대의 유신독재. 젊음들의 맨몸 그 피흘림 - 침묵하는 시위(弦)를 일깨워 탱탱히 줄을 매고 당긴 젊음의 활량들. 그들이 돌아오지 않은 듯 각오하고 곧바로 시위를 떠나 과녁을 향해 날아가 피 흘린 화살이다.

더러는 과녁 앞에서 부러지기도 했으나, 끝내 뽑히지 않은 화살촉이 되어 그렇게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고 피 흘려 통곡했다. 그러나 그자들은 실체가 없는 허공이다. 그 허공을 뚫고 캄캄한 대낮 달려오는 과녁을 향해 힘껏 시위를 당겨 날쌘 화살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검붉은 피를 뿌린다.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화살과 활량 그리고 화자가 한 몸이 되어, 이 한 몸 살신성인이 '화살'의 도(道)이다. 70년대 격렬해야만 했던 시인도 80년대 후반으로 와서는 화살을 뒤로하고 '황토'로 낙향했다.

우리는 유사 이래
하늘보다
황토 위에서 참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역사를
이와 반대로 써 왔습니다
민중이란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날마다 일하는 사람입니다
정든 쇠스랑 박고 바라보면
재 너머로 넘어가는
끝없는 황토길이 우리 절경입니다
저만치서
말없이 살고 있는
아버지 황토무덤이 우리 절경입니다
우리가 먹을 황토 있는 한
상여 떠나
우리가 송두리째 묻힐 황토 있는 한
한 삽으로 가득 뜬 황토 들어올려서
아메리카여 시베리아여
우리는 여기에 진리 있습니다

<황토> 고은

덧붙이는 글 | 아뢰는 글

오늘 120회 <화살>을 끝으로 연재를 마감한다. 정확히 2002년 8월 13일 소월의 <진달래꽃>으로 뜻하지 않게 출발한 것이 신기한 것도 없이 이렇게까지 달려왔다. 그동안 끝까지 참아준 오마이뉴스, 또한 데스크에게 심심한 사의를 거듭 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미한 소고를 꾸준히 인내하고 너그러이 보아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깊이깊이 감사드린다. 아마 기존의 신문에서는 사건기사가 아닌, 그리고 지면 관계상 불가능한 시평을 처음으로 인터넷 매체에 시도해 본 그것으로 짐작하고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타이틀을 '민족의 명시'라 제시한 것은 별다른 뜻에서가 아니고 애초부터 '민족'이란 정체성을 그간의 우리 역사에서 이들 시인에게는 합당하리라 하여 생년을 1933년까지로 추산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애초 생각대로 정확히 120회 분량에서 70살이다.

이들 시인들 - 소월에서 고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애야말로 고난의 질곡이다.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불우한 개인역사, 남한도 아니요 북한도 아닌 그들에게 나름대로 '민족'이란 정체성을 보상으로 부여한 것뿐이다.

다시 한번 모든 분들께 그 동안을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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