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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요직 인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는 8일 이른바 '빅3' 가운데 하나인 청와대 비서실장에 민주당 문희상 최고위원을 내정, 발표했다.

또 청와대와 여야 정당간의 조율사격인 정무수석에는 유인태 전 의원이 내정됐다. 두 사람은 대선 기간 노 당선자를 지근에서 도왔으며, 또 큰 틀에서 노 당선자의 정치노선도 맥을 같이 하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인수위에서 '안정형 총리론'이 흘러나오자 일부 언론들은 고건, 이홍구씨 등 유력인사의 총리 기용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0일자 <국민일보> 1면.
ⓒ 국민일보
청와대 핵심인사의 인사에 이어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자리는 바로 국무총리다. 단순히 '1인지하 만인지상'의 요직이라는 차원을 넘어 개혁정부랄 수 있는 노무현 정부의 첫 내각수반이 대체 어떤 인물일까에 더 궁금점이 쏠리고 있다고 하겠다.

얼마 전 노 당선자는 새정부의 '첫 총리'에 대해 대략적인 '그림'을 언급한 바 있다. 즉 '개혁 대통령'에 '안정적 총리' 모델이다. 노 당선자는 "초기에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선 행정 경험이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노 당선자는 12일 국무총리 인선기준과 관련 한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론을 보니 압도적으로 개혁적이고 깨끗한 인물을 원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여러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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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여론조사를 보니 그런 것이 있다는 점을 말한 것일 뿐 총리는 안정과 균형이라는 기조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노 당선자는 총리 인선기준을 '개혁'과 '안정'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지만 인수위 주변에서는 '안정총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의 '안정총리론'이 공개된 후 언론에는 이에 '어울릴 만한' 인물로 고건 전 서울시장(전 총리), 이홍구 전 총리, 이수성 전 총리 등의 이름이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노 당선자가 이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새정부 첫총리로 기정사실화하려는 듯한 인상마저 든다.

'안정적 총리론'의 허상과 극복을 위하여

노 당선자가 행정경험과 경륜이 풍부한 인사를 총리로 기용하려는데는 현실적 요인이 몇 있다. 우선 행정부 경험이 별로 없는 노 정권이 집권초기 관료조직을 휘어잡기 위해 '관료통' 총리가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 여소야대 정국하에서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치성향이 강한 인물보다는 이력이 검증된 '실무형 총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모아진 걸로 생각된다.

그러나 노 당선자 진영의 이같은 판단은 총리인선에서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과연 '안정적 총리'가 '개혁적 대통령'과 조화를 이뤄낼 것인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안정적 총리'가 과연 앞서 거명된 몇 사람 정도 밖에 없는가 하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본다.

먼저 노 당선자가 강조한 '풍부한 행정경험과 경륜' 대목부터 짚어보자. 총리가 내각의 수반이라는 점에서 행정경험은 필요한 사항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기득권 구주류 집단에게 거의 독식되다시피한 '화려한 경력'이 그리도 존귀한 가치인지 묻고 싶다.

역사적으로 따져볼 때 해방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 주류로 활동해온 사람들은 대개 이런 모습들이다. 즉 일제 때는 친일한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며, 미군정 때는 친미파로, 또 이승만 독재정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기생세력으로 권력을 서로 나눠갖거나 대물림 해온 세력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아니면 이들이 퇴장한 후 '양김(YS, DJ) 시절' 이들과의 이런 저런 인연으로 이들의 언저리에서 별 소신없이 자리를 지켰던 학자출신들이 바로 그들이다. 어찌보면 이들은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존경보다는 오히려 비판과 경원의 대상이 돼왔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위에서 새정부의 총리감으로 거명된 고건, 이홍구, 이수성 씨 역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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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이홍구 이수성씨의 '경륜'

▲ 고건 전 총리
먼저 고건 전 서울시장. 흔히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61년 행정고시에 합격, 이후 40여년간 행정관료 등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전남도지사,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 교통부·농수산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을, 다시 노태우 정권하에서는 관선 서울시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권 초기 국무총리와 민선 서울시장을 지냈다. 보통사람 한 번 하기도 어려운 고위직을 그는 다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여럿을 지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무려 5명의 권력자, 그것도 제각각 정치성향이 다르고 시대정신이 다른 상황에서 '대과없이' 고위 행정책임자를 지낸 고건 씨. 혹자는 그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관료였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여러 정권을 넘나들 수 있었을 것이며 어쨌든 실무능력 하나는 검증된 것이 아니겠냐고 변호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가 그때 그때 주어진 여건에서 '대과없이' 직무를 수행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른바 '행정의 달인'이라는 그가 수없이 많은 요직을 거치면서 과연 그 별명에 걸맞게 행정개혁을 이뤄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즉 그가 앉았던 역대 '자리'가 그때그때마다 그가 '최선'이었는지는 좀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판단될 것이다.

어쩌면 그는 지역적 안배, 관료집단 다독이기, 적임자 선발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중용'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냉정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정치 변혁기에 행정에 무지한 '아마추어 권력자'들이 별 부담없이 '수족'으로 불러다 쓰기에 적절한 전문 행정관료였다고 보는 적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를 새정부에서도 '안정'이란 꼬리표 하나 때문에 또 써야할 만큼 이 시대에 사람이 없는가.

▲ 이홍구 전 총리
이홍구 전 총리는 미국 에모리대 정치학박사 출신으로 지난 69년부터 88년까지, 즉 근 20년 동안 대학교수 생활을 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 초기인 88년 통일원장관에 임명된 그는 김영삼 정권에 걸쳐 주영 대사를(1991-1993)를 지냈다. 이후 김영삼 정권에서 다시 부총리겸 통일원장관(94), 국무총리(94), 15대 국회의원(96-2000)을 지냈으며, 신한국당(총재 김영삼) 대표, 한나라당(총재 이회창) 상임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김대중 정권 초기 주미 대사를 지낸 후 2001년초부터 중앙일보 상임고문직에 있다.

굳이 따지자면 이홍구 전 총리는 전문 행정관료 출신도 아니다. 두 차례에 걸쳐 통일원장관과 대사를 각각 지냈고, 국회의원 한 번, 총리 만1년간을 지낸 것이 국정경험의 전부다. 그 역시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권에 걸쳐 때론 '얼굴마담'으로, 때론 '외교통'으로 불리며 중용돼 왔다.

미국서 유학하고 미국, 영국서 2년씩 대사를 하면서 쌓은 외교인맥 정도라면 그 정도는 국내에 흔하다고 본다. 한-미, 북-미간의 갈등국면에서 그가 결정적 해결사 역할을 했다는 얘길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능력이 검증된 바도 없고, 그가 중용된 시기에 시대가 그를 불렀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관운이 좋았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 이수성 전 총리
마지막으로 이수성 전 총리. 그는 근 30년 가까이(1967-95) 서울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교수, 학장, 총장을 지냈다. 지난 95년 김영삼 정권시절 국무총리와 신한국당 상임고문을 거쳐 김대중 정권 초기부터 평통 수석부의장을 만2년간(98.3-2000.2) 지냈다. 이어 직후(2000.3) 구 정치인들이 만든 민주국민당에 합류해 그해 4월 총선 때 고향(경북 칠곡)에서 출마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화려한 경력을 '경륜' 운운하는 건 반시대적 처사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그를 두고 '마당발'이라고 부른다. 그런 별명이 널리 유포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는 그가 '형님-아우'하며 지내는 사람이 국내에만도 몇 천, 몇 만명이라고 한 적도 있다.

그가 총선에 출마했을 무렵인가쯤에 강준만 교수는 '이제 그런 마당발은 사라져야 한다'고 내놓고 비판한 적도 있다. 주변에 사람이 부족한가, 아니면 경력이 덜 화려한가. 그런 그가 고향에서 출마해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젊은이에게 졌다면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혹시 '빛좋은 개살구'가 아니었을까?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 진영에서 이들의 이력을 꼼꼼히 뜯어보지도 않고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경력만을 들어 '경륜' 운운하며 총리감의 필수자격요건인 양 강조하는 것은 반(反)시대적인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경륜이 그리도 강조된다면 이한동 전 총리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입법, 사법, 행정 3부를 두루 섭렵했으니 차라리 그가 훨씬 더 폭넓은 경륜을 쌓았다고 하겠다. 이제 이들은 마치 '3김'이 무대에서 사라지듯 이들 역시 현실의 무대에서 사라질 때가 됐다고 본다.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필명 자갈치)은 "대통령이 개혁적이라면 총리는 훨씬 더 개혁적이라야 비로소 내각이 개혁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고, 반세기 이상 이 눈치, 저 눈치 보는데 익숙해 있는 한국의 공직사회에서도 대통령의 개혁정책이 먹혀들어갈 것"이라고 썼다. 그는 "개혁 의지가 약한 인물이 총리가 되면 가장 즐겨할 세력들은 조중동과 재벌들"이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대안을 얘기해보자. 먼저 노 당선자 진영에서는 여소야대 국회의 현실을 들어 인사청문회에서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을 총리로 물색하려는 자세를 먼저 탈피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인물을 내놔도 야당은 딴지를 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야당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요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새정부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야당과의 협상에 임한다면 그 역시 구태정치의 재연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지난해 치러진 세 차례의 총리 인사청문회를 통해 총리감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국민들의 '눈높이'가 한결 높아지고 또 달라졌다. 즉 화려한 경력이나 원만한 대인관계 같은 것보다는 실질적인 면에서 도덕성, 청렴성, 개혁성, 국정수행능력 등에 대한 '잣대'가 훨씬 강화됐다고 본다. 따라서 이런 점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인사라면 야당도 무턱대고 반대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집권세력과 야당과의 갈등은 늘 있어온 것으로, 그런 갈등이 사라지거나 더러 적어졌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안정'된 것은 아니다.

새총리는 필수요건에 '시대정신'도 담아야

그런데 문제는 새정부의 총리는 이런 기본적 자격요건에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까지 담은 인사라야 한다는 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하나에서 열까지를 챙기던 시절의 '대독 총리' '얼굴마담 총리'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실질적으로 내각을 장악하고 수반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새로운 리더십과 개혁성을 갖춘 인사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은 낡은 정치에 물들지 않고, 구체제에 익숙치 않은 새인물에게서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비로소 그런 때가 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10일 '특별기획'으로 선보인 [나도 추천합니다, 이사람을 장관으로…] 코너에서 네티즌들은 위에서 거명한 세 사람을 포함, 다양한 인사들을 총리감으로 추천하고 있다.



김중배 MBC사장, 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 한승헌 전 감사원장, 정문술 전 미래산업 대표, 한완상 전 부총리, 조순형 민주당 의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최병모 변호사, 한명숙 여성부장관, 김원기 민주당 고문, 장명수 전 한국일보 사장 등이 그들이다. 오히려 이들이 이 시대의 '시대정신'과 더 가깝다고 네티즌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추미애 민주당 의원을 새정부 첫총리감으로 추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대중 정부나 새정부 역시 여성계의 광범한 사회진출을 강조한 바 있고, 시대적 추세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정권에서 여성 장군이 등장했고, 비록 실패했지만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후보를 지명한 바도 있다.

대통령이 개혁적이라면 '안정적 총리'가 왔다고 해서 그 정부를 '안정적 정부'로 부르지는 않는다. '개혁적 대통령'이 자신과 한 축을 이뤄 국정을 개혁하고 이끌어갈 총리에게 자신의 개혁적 이미지를 순화시키기 위해 '안정'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이는 수세적 자세로 비쳐져 개혁의지의 약화로 인식될 수도 있다.

또 자칫 이런 구도하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간의 '엇박자'로 행정부 내부에서부터 불협화음이 빚어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만약 노 당선자가 고건 씨와 같은 사람을 총리로 고집한다면 이는 개혁의지가 약하거나 아니면 과거처럼 '수족'으로 쓰겠다는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내달에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가 개혁정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리 믿고 있다. 개혁은 "기득권에 대한 혁파"에서 시작된다. 새정부는 그런 걸 해나가겠다고 선거 때 다짐했다. 새천년, 새시대, 새정부, 새 대통령에 이어 그에 걸맞는 '새총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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