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례1> 민규(가명)는 쉬는 시간마다 여자 아이들을 놀려댑니다. 아이들이 그때마다 선생님께로 달려와 일러줍니다. 이번에는 실내화를 벗어서 여자 아이 얼굴에 갖다 대었다는 것입니다. 엊그제는 옆 반 아이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 그 아이의 부모가 진단서를 끊어 고소하겠다고 펄펄 뛰는 것을 선생님이 싹싹 빌어 겨우 진정 시킨 일이 있습니다.

상담하러 온 민규의 어머니도 교양 있어 보였고, 수업시간에는 공부도 그런대로 하는 민규의 공격적인 성격의 근원이 무엇인지 선생님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민규와 상담을 하던 선생님은 이 아이의 공격적인 성격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 나이에 연애결혼을 했던 민규의 부모는 얼마 전에 헤어졌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부부 싸움을 자주 했는데, 어느 날은 외삼촌이 와서 칼을 들고 아빠를 위협하여 집에서 쫓아내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끔찍한 폭력에 노출되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당했던 것이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사례2> 용준(가명)이는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엎드려 있더니 점심도 안 먹습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고개만 흔들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밥을 먹을 수가 없어 용준이를 데리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용준이는 엄마와 아빠가 어젯밤에 싸웠는데, 아빠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아서 엄마와 함께 할머니 집에서 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물도 숙제도 못해온 것이었습니다. 용준이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사례3> 눈동자에 초점도 없이 허공만 쳐다보는 유정(가명)이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고민이 많은 아이입니다.

“엄마, 아빠가 우리 엄마, 아빠가 아니었음 좋겠어요. 맨날 고함지르고 뭐 던지며 싸워요. 정말 죽고 싶어요. 저는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요?”


위의 이야기들은 제가 초등학교에 근무했을 때 실제로 겪은 일들입니다.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유정이의 말은 너무나 가슴 아픈 것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얼굴 표정이 어둡고 풀이 죽어 있는 아이들은 아픈 경우가 아니면, 집에서 꾸중을 들었거나 부모님끼리 밤새 싸움을 했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은 특히, 부모의 부부싸움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인 경우는 그래도 이런 기분이 겉으로 나타납니다. 선생님이 물어보면 이야기를 하고 달래주면 기분이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학년의 경우는 자신의 기분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앓습니다. 더 큰 분노와 고민을 가지고 있으면서 밖으로 표출하지 않기 때문에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자기감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이고 자신의 주변의 삶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합니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고민할만한 세상의 걱정거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대부분 어른들이 원인을 제공합니다.

부부 싸움에서 고약한 것은 부부간의 다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힘없는 자식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묵인하던 일들을 부모의 기분이 나쁠 때는 옛날의 것까지 들추어내어 야단을 칩니다. 특히, 부부싸움을 한 다음에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는 엄마는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를 향해 소리를 칩니다.

“너는 맨날 왜 그 모양이니?”
“너는 누구를 닮아서 그 모양이니?”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뭐 하는 것마다 지 애비를 닮아가지고…….”

닮긴 누구를 닮습니까? 그 부모를 닮았지요. 이런 말을 들은 아이들은 겉으로는 말은 안 해도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누가 절 낳아 달랬어요?”
아이는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패배의 도장을 찍습니다.
“나는 집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못난이다.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가끔은 엇나가기도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불만이 쌓여서 공격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급우들을 괴롭힙니다. 소극적인 아이는 정상적인 교우관계를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신의 아이가 이렇게 살아가길 원치 않을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가능하면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부부간에 피치 못하게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생각한다면 최소한의 배려를 해야 할 것입니다. 큰소리로 싸울 일이 있을 때는 아이들을 옆집이나 친척집에 잠시 보내놓고 싸워야 합니다.

화를 못 이겨 물건을 던지며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너무나 위험하고 폭력을 학습시키는 일입니다. 자녀가 자라면 그런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밥상을 엎어버리는 아버지를 혐오하는 아들은 다시 밥상을 엎어버리는 아버지가 될 것이며, 딸은 또 그런 사람과 결혼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화하는 기술을 배우지 못하고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폭력을 학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잦은 싸움을 겪으며 자라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결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들은 한 번 더 자식들을 생각해 주시고 자식을 보호해 주십시오. 어머니,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자식에게 풀지 마십시오. 힘없는 자식은 그 스트레스를 어디 가서 풀겠습니까?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