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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제기한 대북 4억 달러 비밀지원설의 진위 여부가 대선 정국의 새로운 뇌관으로 급부상하였다.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비밀지원설을 제기하고 강공을 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밀지원설은 과연 한나라당의 의도대로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자리하게 될 것인가.요즈음 한나라당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23일에는 홍준표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 의원에 대한 연예인 성(性)상납설'을 제기하였다. 이어 25일에는 정형근 의원이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과정에서의 권력실세 로비설'을 제기하였고, 그 내용이 국정원 인사에 의한 도청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뒤따랐다. 두 의혹은 정치권에 커다란 논란거리로 부상하였으나, 정작 그 진위 여부를 가리려는 노력은 눈에 띄지 않는 상태이다.대북 비밀지원설의 파장그런 상태에서 한나라당은 '대북 4억달러 지원설'이라는 메가톤급 폭로를 하고 나섰다.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당좌대월을 받아 4억달러를 북한에 비밀 송금했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한마디로 "돈을 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샀다"는 것이 한나라당측의 주장이다.@IMG1@이 내용은 엄호성 의원이 처음 폭로한 데 이어 김문수 의원, 이성헌 의원 등이 가세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회창 대통령 후보까지도 나서 의혹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단독 국정조사 불사와 특검제 실시 입장까지도 밝히고 있다. 대북 비밀지원설은 의원 개인 차원이 아니라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제기되고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한나라당의 대북 비밀지원설은 통상적인 정치적 폭로와는 다른, 비상한 여러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첫째, 당장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게다가 북일 정상회담에 이어 미국의 대북 특사 파견까지 임박해있는 상황이다. 대북 비밀지원설의 제기는 의혹의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이같은 한반도의 해빙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비밀지원설로 국민정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특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은 적어도 대선 이전에는 이루어지기가 어렵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비밀지원설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까지 사실상 무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둘째,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비밀지원설은 현 정권은 물론이고 북한과의 파국까지 감수하고 사용해야 하는 카드이다. 돈을 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샀다는 주장은 현 정권이 최대 자부심을 갖고 있는 햇볕정책의 도덕성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공격이며, 햇볕정책의 성과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따라서 이는 현 정권의 가장 예민한 곳을 건드리는 행위로, 현 정권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대선을 치를 것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도 비밀지원설은, "돈을 구걸하며 남북정상회담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그렇지 않아도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대북 적대정책을 비난해오던 북한이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강화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양측간의 이러한 관계 악화는 단지 이번 대선을 넘어서, 차기 정권을 누가 맡든지간에, 한나라당과 북한 간의 관계 악화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이처럼 대북 비밀지원설이 낳는 파장은 매우 크다. 따라서 비밀지원설 폭로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으로서도 상당한 부담되는 카드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회창 후보는 대북강경론자라는 그 간의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해 얼마 전 평화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그러나 한나라당의 비밀지원설 폭로와 공세는 자칫 그같은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이회창 후보를 다시 대북강경론자로 고정시켜 놓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실제로 비밀지원설 공방이 한창이던 지난 29일, 이회창 후보는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을 격려하려는 계획을 세워, 그같은 부담을 완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대선정국에서의 다목적 카드이같은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비밀지원설 폭로라는 카드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가. 이는 대선정국에서의 다목적 카드로 풀이된다.첫째, 이번 대선을 'DJ정권 대 한나라당'의 대결 구도로 치르겠다는 의사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한 셈이다. 비밀지원설 폭로 공세는 현 정권과의 정치적 전면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DJ정권'은 이제 사실상 무장해제된 힘없는 정권이다. 그럼에도 원내 과반수의 거대정당은 이 '힘없는 DJ정권'을 사정없이 두드리겠다는 것이다."DJ 정권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표는 나온다"는 한나라당 어느 의원의 말처럼, 현 정권에 대한 공격이 최상의 선거전략이라고 한나라당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정몽준 의원이나 노무현 후보에 대한 공격보다도, DJ 정권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때 표가 더 나오는 기이한 대선구도를 한나라당은 읽고 있는 것이다.둘째, 따라서 한나라당은 비밀지원설을 이번 대선의 주 쟁점으로 끌고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비밀지원설이 한나라당 내에서 거론되어온 것이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선거가 불과 3개월여 남은 이 시점에 여러 부담을 무릅쓰고 이 문제를 공론화시킨 점이 그같은 전망을 가능케 한다.한나라당은 특히 이회창 후보의 아킬레스건으로 자리하고 있는 병역면제 의혹을 맞받아칠 수 있는 전략적 쟁점으로 비밀지원설을 관리해나갈 것이다. 비밀지원설을 대선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한나라당이 '부도덕한 DJ정권'의 유일한 대체세력임을 인식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한나라당은 기대할 법하다.셋째, 아울러 비밀지원설 폭로 공세는 정몽준 의원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책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정 의원의 배경인 현대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대선전에서 현대의 발을 묶어두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대선구도를 'DJ정권 대 한나라당'의 양자 대결구도로 몰고감으로써 정 의원의 위치를 주변화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넷째, 특히 선거가 3개월여 남은 현 시점에서 한나라당으로서는 우선 보수-영남 기반의 고정 지지층의 결집을 다져놓을 필요가 있다. 미국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는 삼등 변화(triangulation) 개념을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기본을 잃지 않고 중도를 향해 변해야 함을 환기시켰다.이를 한나라당에 적용시켜 보면, 일단은 보수적 정체성이라는 기본을 분명히 하여 전통적지지 기반을 결집시킨 이후 부동층 흡수에 나서는 것이 순서이며, 비밀지원설 폭로 공세는 이를 위한 효과적 카드가 되는 셈이다. 이같은 방식으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 경우, 향후 3개월 여 동안 가속화될 한반도 정세의 변화가 자칫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위험성을 또한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정치권의 진실게임과 민족문제이제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 제기한 비밀지원설의 진위 여부이다. 비밀지원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현 정권은 물론이고 옛 여당인 민주당, 그리고 현대 출신의 정몽준 의원까지도 정치적 수세에 몰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폭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질 경우 한나라당은 민족 문제를 대선에 이용하려고 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그런데 현재로서는 그 진위 여부를 속단하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일단 한나라당 의원들의 폭로 내용은 대단히 구체적이다. 마치 전모를 파악이라도 하고 있듯이, 구체적인 상황까지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모든 내용들이 '제보'의 전달 수준이며, 그 제보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부분은 없다.산업은행의 대출과정이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이고, 현대상선의 대출금 사용처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반면 폭로 내용의 신빙성에 의문을 낳게 만드는 대목들도 많다.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현대가 4억달러라는 엄청난 자금을 비밀리에 해외로 송금한다는 일이 가능할까, 당시 외환시장에서 현대가 4억달러 규모의 돈을 비밀리에 환전하는 것이 가능했을까라 등, 상식의 추론을 넘어서는 대목들도 도처에서 발견된다.그러나 아직까지 한나라당은 제기되는 반론들에 대한 추가 응답은 내놓지 않고 있다. 국정조사를 통한 의혹 규명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도 정치권에서 많이 있었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방식과 아직까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비밀지원설의 결과가 어떠한 방향으로 갈지는 아직 예측하기가 힘들다. 최소한 현대상선 회계장부의 내용이 확인되고 계좌추척이 이루어져야 전모가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폭로 내용의 진위 여부가 불명확한 상황이라해도, 정치권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는 분명하다. 우선 폭로 내용의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비밀지원설에 접근하는 한나라당의 방법에는 여러 생각해볼 문제가 발견된다.우선 시점의 문제이다. 그동안 이 비밀지원설은 적어도 한나라당내에서는 꾸준히 유포되어왔던 사안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고 북일대화가 정상화되며, 미국의 대북 특사파견이 예정되어 있는 시점을 선택하여 폭로 공세가 전개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물론 한나라당으로서는 폭로 내용을 사실로 단정하고 있을 수 있겠지만,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적 차원의 판단을 넘어서는 민족적 차원의 원모심려(遠謀深慮)가 필요했다는 이야기이다. 꼭 민족의 중대 시기가 되고 있는 이 시점을 택해 그같은 폭로 공세를 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돈으로 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인식이 앞서는 한,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남북간 교류협력은 송두리째 부정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의도가 무엇이었든간에, 비밀지원설은 현재 진행중인 남북관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특히 만약 폭로 내용이 사실이 아니거나 상당 부분이 과장된 것일 경우의 책임 문제는 다른 여느 사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혹 현대상선의 대출금이 현대아산으로는 넘어갔어도 그 돈이 북한으로 전해진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 사건의 의미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되고 만다.한나라당으로서는 결과적으로 커다란 도박을 한 셈이고, 만약 폭로 내용이 사실과 거리가 있을 경우, 정권을 잡기 위해 민족 분열을 기도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이번 사안이 갖는 책임의 막중함을 감안할 때, 한나라당이 과연 제보 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확인과정을 거친 후에 폭로에 나선 것인지, 한나라당으로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문제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된 이상, 이제 관련 당사자들에 의해 신속히 전모가 밝혀져야 할 상황에 있다. 현대상선을 비롯한 당사자들과 관계당국에서는 자료공개 등을 통해 진실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대선 때까지 정치적 의혹공방을 벌이고 있을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될 경우 결국 민족문제를 가지고 대선에서 공방을 벌이는 역사적 잘못을 다시 반복하게 되고 말 것이다.한반도의 정세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역할을 하기는커녕, 한반도 화해의 무드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게 될 지, 정치권의 대응이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는 상황이다. 대통령선거 하나에 민족의 문제가 흔들려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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