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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쉬는 시간에는 돗떼기 시장이고 수업 시간에는 적막강산이다. 극도의 소란과 갑작스런 고요, 그 두 얼굴이 교차하며 대한민국 중학교의 하루가 간다.

학년초, 신입생이 아직 중학교에 적응하지 못할 무렵의 교무실은 놀이마당이기도 하다. 수업을 마친 선생들이 슬리퍼를 스적스적 끌며 교무실로 들어서고,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간 사람들도 있고, 개인적인 볼일로 외출을 한 선생들도 있어, 점심시간의 교무실은 군데군데 이빨이 빠진 것 같다.

그 빠진 이빨을 채우려는 듯 갑자기 아이들이 교무실로 쳐들어온다.
교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타닥타닥 운동화 소리도 재빠르게 교무실 책상 사이를 내달리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와, 그 뒤를 쫒아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아이.
"야, 거기 서. 잡히면 주욱어."
도망가는 아이는 책상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쫒아 가는 아이도 질세라 의자를 툭 치고, 선생 책상 위의 책들을 흐트리며 달려간다.
"이 녀석들, 여기가 운동장인줄 알아?"
무서운 남선생이 빽 소리를 지르자 두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는다. 그리곤 둘이 언제 싸웠느냐는 듯 손을 맞잡고 꾸벅 절을 한 번 하고는 후다닥 밖으로 튀어나간다.

누가 때렸다고 고자질하러 온 아이, 뭘 안 가져왔다고 집에 갔다 오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에, 아예 먼지 자욱하게 낀 교복을 툭툭 털며 엄마한테 어리광 부리듯 담임선생님에게 매달려 뭔가를 사정하는 아이도 있다.

삼월이 가고, 사월이 오고, 그렇게 응석에 어리광을 부리던 아이들이 몇몇 무서운 선생들한테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눈물 콧물이 쑥 빠지게 야단을 맞기도 하면서, '아! 중학교는 초등학교하고 다르구나' 하고 깨달아 가면 비로소 교무실이 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교무실이 교무실로 보인다. 턱없이 넓은 공간에, 그러나 빽빽하게 자리를 잡은 책상과 의자, 뒤로 기지개를 켜면 뒷사람의 등짝을 툭 건드리게 되는 좁은 통로와, 학교임에도 책꽂이조차 놓지 못하게 하는(책꽂이를 놓으면 보안에 문제가 있다나! 교사가 보안을 유지해야 할 정도로 우리 나라 교육행정에 비밀이 많다는 것일까?) 관료적인 행정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교사를 한군데 몰아놓고, 그 가운데 교감이 앉아야 전 교사를 효과적으로 감독(?)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감시와 감독을 당하며 어떻게 교사가 아이들을 자유로운 인간으로 교육할 수 있을까? 개인별 연구실은 없더라도 최소한 교과별 연구실 정도를 바라는 것은 정말 꿈일까?

열악한 교육 환경, 열악한 근무 조건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장소가 바로 교무실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날도 둘레둘레 다른 사람 자리를 살펴본다.

기술과 김현수 선생이 교무실 끝 레이저 프린터기 있는 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프린터기를 만지작거린다. 아마도 자기 자리에서 입력한 결재 문서의 출력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두 자리 건너 오 선생은 목하 낮잠 중이다. 경기도 어디로 이사가 출근 거리가 너무너무 멀다고 불평이더니, 피곤하기는 피곤한지 책 몇 권을 베개삼아 오수를 즐기고 있다.

김 선생이 프린터기에 매달려 있는 곳은 출입문 쪽 통로라 옆에 큰 쓰레기통이 있다. 파란 색이다. 여름방학 일직 때, 그 쓰레기통 위에서 쥐 한 마리가 풀쩍 책상으로 뛰어넘던 기억이 떠올라 나는 그만 피식 웃는다. 그 쥐는 책상 위로 뛰어올라가서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쥐였을까?
막 이 학기 개학하고 얼마 안된 날, 교무실 맞은편 끝의 국사과 이 선생이 갑자기 괴성을 질러댔다.
"꺄아악. 이게 뭐야?"
교무실에 있던 몇 선생이 벌떡 일어나고, 한둘은 이 선생에게로 달려갔다. 이 선생은 부들부들 떨며 창가 쪽 컴퓨터와 잇닿아 있는 소파 밑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저기..."
컴컴한 소파 밑에는 쥐 한 마리가 눈을 반짝이며 오도카니 앉아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쥐가 바로 이 선생 책상 밑에 있다가 슬리퍼 신은 이 선생의 발을 타넘어 그리 도망갔다는 것이다. 마침 스타킹도 신지 않고 있던 이 선생은 맨 살에 쥐의 감촉을 그대로 느꼈다는 것이니 비명을 지를 만도 하지 않은가?

수업시간, 군것질을 하는 아이들의 과자 부스러기를 빼앗아 놓아두기도 하고, 남편에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느라 정작 자신은 아침을 거르고 온 여선생들이 아침 대신 먹다 남은 빵 조각도 있어 교무실에는 쥐들이 제법 여러 마리 살고 있는 낌새였다. 때로는 책상 아래를 통해 서랍에 들어가 비닐봉지를 갉아내고 속의 과자 부스러기를 훔쳐먹거나 넣어둔 과일을 삭삭 갉아먹고 도망을 치기도 했다.

"이거 교무실이 교사가 근무하는 데야 아니면 쥐가 근무하는 데야?"
"낮에는 교사가 밤에는 쥐가 근무하는 곳이지."
"그럼 낮에는 교무실이고 밤에는 쥐무실이군."
몇몇이 그런 자조적인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때 김현수 선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으으으.... 이...이거?"
조용하던 교무실이라 낮게 지른 그 비명이 제법 크게 울린다. 서류를 뒤적이던 교감도, 마침 교무실 풍경을 감상하던 나도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간다.

프린터기에 마침 용지가 없어 용지를 넣고 새로 켜고 하느라 부산하던 김 선생의 발에 그만 이상한 물건이 덜컥 걸려든 것이다. 프린터기 옆 소파 밑에서 간신히 발을 빼낸 김 선생을 보고 우리는 그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조심조심 꺼낸 발에는 커다랗고 네모진 끈끈이 판이 달려나왔다. 슬리퍼가 딱 달라붙어 떼려고 하면 길게 끈끈이가 늘어날 뿐, 잘 떨어지지도 않는 그것은 지난번 이 선생의 쥐 소동 이후 서무실에서 군데군데 놓아둔 소위 쥐포수라는 것이었다.

"이거 잡으라는 쥐는 못 잡고 사람만 잡았군."
교감이 늘어지는 김 선생의 슬리퍼짝을 보며 피식 웃는다.
그 소동에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 오 선생이 호들갑을 떤다.
"어머, 어머. 이게 웬일이야. 그럼 김 선생님이 쥐네. 인쥐."
그리고 그 소문은 오 선생을 통해 수업에서 나온 모든 선생들에게 순식간에 퍼졌고, 그날 이후 김현수 선생의 별명은 김현쥐가 되었다.
어쩌다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김현수 선생을 보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이, 김현쥐 선생. 나 먼저 가네. 이제 쥐무실이니 김현쥐 선생 열심히 근무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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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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