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무능한 덕에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15년 넘게 시사평론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는 정태인이라는 사람입니다.

국민의 4대 의무. 대법관까지 지낸 분이니 너무나 잘 아실 겁니다. 헌법 제2장에 규정돼 있죠.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그리고 근로의 의무죠.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서, 또 국가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이런 추상적인 규정을 떠나서 이 4대 의무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요즘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사안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신의 아들'들은 군대를 안 가도 되느냐, 의사나 변호사들이 우리보다 세금을 덜 낸다, 재벌 아들들이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편법을 썼다, 공교육은 무너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천문학적인 고액과외를 한다더라, 그리고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이 다 떠맡은 거 아니냐…. 이런 것들 모두가 하나같이 이 4대 의무와 연결돼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이 후보께서는 두 아들이 편법 혹은 불법으로 군대를 가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하늘에 맹세코 불법이나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회창 후보의 말을 믿습니다.

대법관이 헌법을 무시했다면 말이 안 되죠. 그건 우리의 민주주의가 뿌리채 뒤흔들리는 것뿐 아니라 인간 일반에 대한 믿음마저 무너뜨리는 일이니까요. 지금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가 바로 그 믿음 때문입니다.

아울러 저는 이 후보의 대쪽같은 성품에 비쳐볼 때 이 후보께서는 틀림없이, 뭔지 모를 이유로 나날이 말라가는 아들에게 보약이라도 사다주면서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자신과 나라를 위해서 의무를 다해주기 바란다"는 부탁도 하셨으리라는 행복한 상상도 해봅니다.

아마 이 믿음만 증명된다면 이 후보는 대선에서 확고부동한 압승을 거두게 될 겁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가 이 문제에 관해서 이 후보를 의심한다는데, 이 사람들 아마 미안해서라도 이 후보를 찍게 될 겁니다. 보잘 것 없는 제 직업을 걸고라도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후보께서는 당장 한나라당이 검찰수사를 방해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현재의 상황을 중지시키지 않는 걸까요? 이정연씨와 한인옥씨가 검찰에 자진 출두해서 문제를 명명백백하게 해명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혹시 검찰을 못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한나라당도 극구 칭찬했던 저 이용호게이트의 차정일 특별검사가 있지 않습니까? 당장 특별검사제를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왜 이렇게 쉬운 길을 두고 이전투구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면서 험난한 길을 에돌아가시는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식으로 정쟁으로 지새면서 국민의 냉소주의만 키운다면 설사 대선에 이긴다고 해도 가시밭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때까지도 의혹을 풀지 못한 60%의 국민들은 이 후보께서 "나는 국헌을 준수하고…"로 시작하는 대통령 선서를 할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국방의 의무는 헌법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립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건지 속시원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아마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건승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의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만 공개편지라 오마이뉴스에도 올립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