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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진보적 지식인의 '치열한 자기성찰'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때 아니게 반성에 관한 논쟁이 일고 있다.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이었던 문부식씨가 7월 12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이후, 다음날 이례적으로 조선일보가 사설로 이 문제를 다루었고,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명인씨가 본 난을 통해 비판한 이후 홍윤기 교수, 소설가 정도상씨 등의 문부식씨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오마이뉴스를 통해 미디어비평가 변정수씨가 문부식씨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윤평중 교수는 중앙일보 7월 20일자 기고문을 통해 이 논쟁이 열린사회로 가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한겨레 7월 17일자, 중앙일보 7월 24일자, 문화일보 7월 29일자도 이 문제를 둘러 싼 논쟁을 비중 있게 다뤘다.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실명비평이라는 형식을 통해 날선 글을 많이 써 온 강준만 교수도 한겨레 7월 31일 '언론비평'난에서 "상처주지 말자"라는 글을 통해 문부식씨를 비판하면서 자기반성의 대열에 합류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논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 특히 지식인들이 진지하고 조용한 반성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 다니면서 반성문 안 써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위하다 잡혀가도 잘하면 각서, 웬만하면 반성문 한 장은 써야 훈방이 된다. 툭하면 일을 치는 검찰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때마다 뼈를 깎는 반성을 한다는 말을 애용했는데, 그때마다 정말 뼈를 깎았으면 아마 지금은 더 이상 깎을 뼈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요란한 '강제된 반성'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어떤 경우에는 '강요된 반성'조차 끌어내지 못한다. 그 숱한 부일협력자나 친일파 중에서 자기반성을 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친일잔재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 많은 빨갱이로 몰려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잘못을 반성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보가 된다. 학살의 책임자이며 수천억의 돈을 부정축재한 전두환은 반성 대신 이른바 골목성명으로 버텼다.

반성은 조용히 해야 한다. 그러나 김지하, 박노해, 김영환, 그리고 문부식으로 이어진 굵직한 반성의 소란스러웠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반성의 과정을 밀실에서만 밟아서는 곤란하다. 불행히도 그들이 오랜 기간 독방에 감금당해야 했든, 또는 강압적인 수사를 받는 중이었든 자기만의 반성은 때로 도를 넘을 수 있다. 더구나 그들이 자기 시대의 짐을 홀로 져야 했던 불행한 시대의 주역이었을 때는 그런 위험이 더 커진다.

더구나 부산미문화원 사건에서 문부식씨는 사건의 주모자였지만, 그 사건은 이제 문부식씨 개인의 것이 아니다. 유독 문부식씨에 집중된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생긴 그림자 속에 가려진 휘발유통을 들고 간 사람들, 불을 붙인 사람들, 유인물을 뿌린 사람들, 사진 찍은 사람들 등 수많은 당사자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들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바뀌고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에 대한 평가도 바뀐 뒤 문부식씨가 출옥할 때 그를 맞으러 수백리길을 달려간 청년학생들이 있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그 사건의 주모자나 관련자의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의해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된다. 사건 주모자의 그 사건에 대한 반성과 평가는 특별한 무게를 갖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일 수는 없다.

동의대 사건에 대한 민감한 발언이 더해지기는 했지만, 문부식씨의 자기성찰의 주요 내용은 이미 1999년 겨울에 발간된 당대비평 9호에 실린 바 있다. 그 당시는 별다른 파장을 불러오지 않았던 문부식씨의 자기성찰이 3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뒤에 문제가 된 것은 역시 조선일보의 힘이다.

물론 이번 논쟁이 촉발된 데는 그 동안 당대비평이 줄곧 제기해 온 '우리 안의 파시즘' 논쟁이나 편집진 내부에서의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야기된 한국 초유의 '원고(原稿) 망명사건' - 이 사건의 한 쪽 당사자는 이번 논쟁에 깊이 개입한 홍윤기 교수이다 - 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부식씨의 인터뷰가 조선일보에 실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조선일보가 발 빠르게 이 인터뷰를 사설로 받아내어 떠들어대지 않았더라면 문부식씨의 문제제기는 보다 진지한 토론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문부식씨가 주간으로 있는 당대비평이 제기해 온 '우리 안의 파시즘'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 요소가 우리 안에 왜 없겠는가?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파시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파시즘과 싸우면서 알게 모르게 파시즘을 닮아갔고,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자기가 싫어지는 경험도 했다. 단, 이 논리가 아직까지 시퍼렇게 살아 있는 파시즘 자체와의 싸움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애시당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냉소와 허무주의를 부추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일보의 집요함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진보적인 사회과학 서적이 조선일보의 문화면에 소개되는 일은 자주 있다. 그러나 진보적인 사회과학 서적이 조선일보의 사설에서 칭찬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불과 두 달 반 사이에 당대비평과 관련하여 두 번이나 일어난 것이다. 조선일보는 4월 23일 역사교과서 문제와 관련하여 당대비평이 특별호로 간행한 "기억과 역사의 투쟁"을 문화면에서 대서특필한 데 이어 다음날 사설에서 이 책의 내용을 크게 다루었다.

진보진영의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대항하여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자기 지면에 동원하려는 조선일보의 집요한 노력이 진보진영 내의 문제점을 비판한 '우리 안의 파시즘'론을 편 인사들에게 집중된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문제는 그런 사정을 충분히 알 만한 문부식씨가 자신의 책이 나오기도 전에 조선일보를 통해 민감한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출판사의 경영에 깊이 간여하고 있는 문부식씨의 입장에서 조선일보의 인터뷰 요청은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사회과학 출판사들의 사정이야 다 어렵지 않은가? 필자는 몇 가지 문제가 일어나긴 했으나 당대비평을, 그리고 삼인을 참 좋은 잡지요, 참 좋은 출판사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는 결코 진보적 지식인의 자기성찰을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당대비평이 심혈을 기울여 제기한 '우리 안의 파시즘' 논쟁의 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문부식씨가 명확한 입장을 천명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12>는 8월 3일(토) 김창수씨의 글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한홍구 교수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권오성 목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남북문제 전문가 김창수씨, 권오성 목사,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소설가 정도상씨, 한서대 이용성 교수, 대학생 오승훈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며 일반 독자 1인의 기고를 포함한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의 기고와 ‘최고-최악의 기사’에 대한 의견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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