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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대사관 앞에서의 시위-부시대통령은 사과하라
ⓒ 대자보
7월 15일 월요일 오전 11시 20분, 나는 미국 대사관 앞에 다시 섰다.

장기근속 특별휴가의 일부를 광화문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보내기 위해 대전발 8시 50분 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온 것이다. 실로 10년만의 일이다. 지난 1992년 5월경, 나는 미국 대사관 앞에 홀로 선 적이 있었다.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지 8개월 되던 시점이었다.

그때 미국의 LA에서는 흑인폭동이 일어나 엉뚱하게 그 피해를 우리 동포가 모두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는 흑인폭동으로 우리 동포가 피해를 본 것에는 캘리포니아 주와 LA시 당국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백인 경찰의 흑인폭행으로 촉발된 폭동으로 백인들이 공격을 받게 되자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백인 거주지로 가는 길을 차단함으로써 흑인의 분노를 우리 동포에게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LA의 한인타운은 흑인과 그에 가세한 히스패닉계 주민에 의한 약탈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우리 교민은 스스로 총을 들고 흑인들과 총격전을 벌이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군과 LA경찰은 이러한 치안부재, 집단범죄에 수수방관, 팔짱끼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LA의 우리 동포를 흑인폭동의 희생양으로 삼아 사태를 해결하려 한 것이었다. 이는 우리 한인동포에 대한 인종적 차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동포의 그런 엄청난 시련을 앞에 두고 우리 정부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오불관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 심지어는 일반 국민들로부터도 아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해괴한 일이었다. 마치 전 국민이 동포의 고난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괴이한 침묵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방향을 무작정 광화문으로 돌렸다. 그리고 지금 말하는 소위 일인시위를 감행했다. 청진동 주변 문구점에서 구한 나무 막대기와 베니아 판에 흰색 도화지를 덧씌운 원시적(?)인 그 피켓에는 “US Sent Police to American Town, Mobs to Korean Town. Stop Harassing Our Brethren"이라 적었다.

그러나 2분도 채 못 넘기고 몸싸움이랄 것도 없이 제압된 허망한 시위였다. 그날 밤 나는 우리나라와 국민의 처지와 처신이 한탄스러워 베갯닢을 적셨다. 올해가 그런 지 꼭 10년이 되는 해이다. 참 기이한 일이다. 10년마다 미국대사관이 날 부르다니….

10년만에 다시 찾은 미국 대사관

이번에 미국대사관 앞에 선 것은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발생한 미군 궤도차량의 우리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 사고는 분노를 촉발시킬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과실에 의한 사고였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처리를 미군측에서 성의있게 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분노할 일은 아니었다.

나도 처음에는 설마 일부러 치어 죽였으랴 하는 마음에, 속에서는 불이 나지만 사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만 이 사건이 몰고올 엄청난 후폭풍을 지나치게 염려해 보도조차 하지 않은 우리 언론의 행태를 지적하며 글을 계속 써올렸다.

내가 "월드컵에 묻힌 것들"이라든지 "월드컵에 묻힌 것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글들을 신문과 인터넷에 계속 올린 것은, 온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할 이런 비극적 사건을 지방선거와 월드컵 열기를 이용하여 차단하려는 눈물겨운 우리 언론의 노력이 가당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어떻게든 반미감정이 크게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온 촉각을 세우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사건은 참으로 불행하고 비극적인 사건이기는 하나, 미군 측의 노력과 성의 여하에 따라서는 눈물을 머금고 종결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이었다.

대형 피켓 4개를 2개씩 묶어 2조의 피켓을 만들었다. 그만큼 할 말도 많았다. 그 피켓에는 두 여중생의 사진과 함께 "We Want Justice", "We Demand a Fair Trial in Our Court", "We Demand an Apology from Bush", "Stop US Army's Crime and Injustice", "Axis of Evil-US Army"라는 문구와 "부시 대통령은 사과하라", "미군 장갑차의 우리 여중생 압사사건을 우리 법정에서", "소파협정 개정하라"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 경찰 중대장과의 목좋은(?) 자리를 위한 담판(?)
ⓒ 대자보
대사관 정문 앞에 서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무전기를 든 경찰이 찾아왔다. 그러나 10년 전의 그런 경찰은 아니었다. 10년 전 경찰은 다짜고짜 "너 뭐야"로 시작했는데 그날 온 경찰은 일단은 부탁조로 얘기했다.

장소가 복잡한 곳이니 다른 곳으로 옮겨 달란다. 복잡할 것 없다. 나도 기왕에 시위를 나온 건데 제일 목좋은(?) 곳에서 장사해야 할 것 아니냐며 완곡히 거절했다. 조금 있다가 경위 계급장을 붙인 경찰이 인상 좋은 얼굴로 웃으며 와서는 조금 비켜서 다른 곳에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렇게 구차하게 할 거면 안 하고 그냥 가는 것이 낫겠다고 얘기하였다. 경찰의 사정은 알지만 나도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것이다. 내가 미대사관에 무슨 위해를 초래하겠는가.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는 말에 멋쩍은 듯 돌아가더니 다시 경감 계급장을 붙인 경찰과 함께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 비가 쏟아져 본의아니게 대사관 담장 옆 나무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찰이 아닌 비가 내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 중대장은 약간 다른 소리를 하였다. 많은 NGO 단체들이 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경찰하고 합의한 자리가 있다고 했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저쪽 대사관 모퉁이 앞이란다. 대꾸도 하지 않았다.

10년 전에는 버티다 어쩔 수 없이 힘으로 끌려갔지만, 이젠 나도 그렇게는 못한다,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주위에 민족문제연구소 동료들이 와서 중대장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 계속 그렇게만 해라. 미대사관 시계는 돌아간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상부에 자기네들도 보고를 해야하니 조금 양보해 달라는 말에 내 왼쪽에서 경비를 서던 경찰과 위치를 바꾸는 선에서 타협을 보고 시위를 계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퉁이가 시끌벅적하더니 일단의 경찰의 군화발 소리가 요란했다. 여러 명이 온 것도 아닌데 열 명 가량의 경찰이 방패를 들고 누군가를 막아선다. 몸싸움 끝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아닌 전국연합 오종렬 의장님이었다. 오종렬 의장님도 이곳에 1인시위를 하러 오셨다가 먼저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제지를 당하신 것 같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합의가 된 모양이다. 오 의장님은 경찰들이 아까 나에게 가라고 했던 그 자리에, 나와 경찰 한 명을 사이에 두고 서셨다. 나는 갑자기 힘이 더 솟는 기분이었다. 오 의장님께서 오실 줄 미리 알았으면 양보해드릴 걸….

미대사관 앞에서 만난 전국연합 오종렬 의장님

이윽고 12시가 되어 대사관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한국인 직원들은 웬일인지 한결같이 애써 외면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두 미국인 여성이 지나가며 힐끗 피켓을 쳐다보았다. 나는 나지막이 "We want justice"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뜻일까. 내가 얘기하는 'justice'가 잘못된 것일까. 'justice'라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가치 아닌가. 나는 미국에서 살던 7년 동안 가장 부러웠던 것이, 바로 그 땅에서는 그 'justice'라는 놈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아무리 힘없고 빽 없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는 문제제기를 할 수가 있게 되어 있고, 사회 시스템이 그것을 받아들여 부당한지 여부를 심사해서 결정을 해 준다는 데 있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그것을 수용한다.

물론 동의하지 못한다면 다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니 아무리 못 사는 사람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지 않는다. 사회가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나도 그 부당함을 호소하는 어필과정의 수혜자의 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 가치의 소중함을 절실히 알고 있다.

그런 'justice'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의 가동, 그것이 가장 부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그들이 자기네 땅에서 그토록 신주 모시듯 하는 가치가 이 땅에서도 실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들에게 간청한 것뿐이었다.

그것은 고작 "우리의 법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라든가, "불평등한 협정을 개정하자"라든가, "주한미군의 범죄와 부당한 행위를 중지하라" 등의 기초적 정의에 속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가로젓다니…. 내가 말하는 'justice'와 그들이 말하는 'justice'는 다른 것인가. 아니면 땅이면 다 같은 땅인 줄 아느냐는 것일까.

순간 등을 보이며 지나가는 그녀에게 월드컵 축구시합에서 스페인의 핀투가 우리 선수에게 감행했던 백태클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까짓것, 내 다리나 팔꿈치가 좀 까지거나 하겠지. 그리고 퇴장(?)을 당하겠지. 그녀도 앞으로 자빠져서 무릎이 깨지거나 아니면 팔꿈치에 찰과상이 생기겠지.

그러나 탱크에 깔리는 것 같은 고통은 없을 거야. 그래봐야 탱크에 깔린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백천만 분의 일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너도 한번 탱크에 깔리는 것의 백천만 분의 일도 안 되는 그 맛을 봐볼래…. 그러나 그녀는 쫓아가 백태클 반칙을 하기에는 이미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다.

대사관 앞에서 만난 미국대사관 여성

▲ 피켓 영문내용-We Want Justice
ⓒ 대자보
세상에 어느 누구도 평상시에 군인이 민간인을 전차로 일부러 깔아 죽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군인이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나 마약, 알콜에 취하지 않는 한. 그러니 미군이 그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러나 고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이 사태는 유감스럽지만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깔보고 기만하였다. 우선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속여서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사단장을 면담시켜주겠다는 약속은 통역실수라는 한마디 말로 간단히 파기해버렸다. 심지어 사고부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 방송에 출연하여 "미군병사에게 잘못이 없다, 사고를 일으킨 병사는 영내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는 뻔뻔스러운 말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기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우리 국민에게 미군은 무장을 하고 뛰쳐나와 총부리를 겨누었고, 취재하는 기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하였다. 미2사단장과 주한미군사령관은 "사과할 용의가 있다"며 마치 우리에게 은전을 베푸는 듯이 사과를 하긴 하였으나 그것은 분노를 일시적으로 잠재우고 잠시 모면해보려는 얄팍한 속임수였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태도였다. 우리가 비록 힘이 없고 여러 가지 못난 과거로 인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의 자존심과 생명까지 그들에게 백지로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우리가 그들의 우방이고 그들이 우리의 우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있고 금도가 있는 것. 우리가 우리의 자식들의 그런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찍소리 못하고 넘어가리라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제 미군이 우리 여중생을 압사시킨 것은 과실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과실이었다면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었을 것이며 무언가 켕기는 데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다. 이젠 그 사건이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행위라고 해도 그들은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결국 미군 스스로가 살인행위로 몰아간 것이다.

미군의 책임문제

주한 미 대사 허바드는 경인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를 대신해서 사과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제 주한미군과 미국대사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지휘체계 상에 있지도 않은 그가 미군을 대신해서 사과할 이유는 없다.

이제 상황은 미국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해야 할 만큼 확대되었다. 물론 그것은 미군, 결국은 미국 스스로가 자초한 길이었다. 우리 국민을 우습게 보고 함부로 행동한 대가를 이번엔 치러야 한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이번의 사건에 그냥 넘어간다면 우리는 다시는 미국에 사과요구를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의 피켓에도 분명히 썼지만 나는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한다.

나는 그들이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끔찍이 존중하는지 안다. 미국 땅에서는. 그러나 인간의 생명의 가치가 위치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면 부시 대통령은 당연히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

적어도 미군병사의 고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성숙치 못한 자세로 일처리를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성의 있고 구체적인 조치를 내 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이 사태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

미국의 책임문제

우리 정부는 이 사건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어디에라도 있기는 한 것인가?

내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1985년의 일이다. 나는 그때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과에서는 장학금을 받기가 어려워 물리학과에 가서 교수조교(teaching assistant)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서 교환교수로 온 한 촌(?) 교수가 물리학과 건물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소위 Peeping Tom으로 몰려 교내경찰에게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영어를 못하는 그 교수는 저항을 했고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과 실랑이를 하다가 넘어져 찰과상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 해프닝은 물리과 학생들에 의해 알려지고 학교의 중국인 학생들은 술렁거렸다. 나는 학보사를 통해 보도된 이 사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지금 기억으로 아주 신속하게 (하루도 안된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 본토의 외교부(주미 중국대사관이 아니다)에서 항의 성명이 나왔다. 참으로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빠르고 강력한 대응이었다. 교수 한 명의 교내경찰 연행에 외교부 성명까지 나오다니….

그리고 또 다시 얼마 안 있어 미국무성에서 유감표명 성명이 나왔다. 그리고 그 교수는 방면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채 이삼일 정도도 안된 사이에 내 기대(?)에 어긋나게 싱겁게도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미국무성의 신속한 성명도 나에겐 미스테리였다. 우리 정부 외무부의 성명에도 (물론 나올 리도 없지만) 그렇게 대했을까?

어쨌든 중국 정부의 대응은 국외자인 나에게도 감격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때의 그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중국에 대한 뭐랄까. 존경심 같은 것이 절로 우러나왔다. 단 한명의 해외주재 국민에게까지 그토록 배려하는 중국. 참 부러운 나라였다.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 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평화유지군 참여 미군에 대한 면책조항과 관련해 조사, 기소를 1년간 면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다. 미군에 대한 무조건적 면책이라는 터무니없는 어거지를 부리던 미국이 제한적으로나마 터무니없는 특혜를 쟁취해낸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시민이 형사재판소에 의해 억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단다. 협박도 보통 협박이 아니다. 미국도 참으로 대단한 나라다. 자국민, 군사의 보호를 위해서는 무슨 어거지든 가리지 않는다.

"나라 안에서만 죄 짓지 말라. 나라 밖에서 짓는 죄는 국가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 결국 그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볼 때야 깡패같은 짓이겠지만 미국 시민권자들은 얼마나 감격할 일인가.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척족까지도 원정출산하러 그곳으로 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지난번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마약사범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다고 했을 때 우리 정부가 부린 추태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고작 "죄지은 사람은 벌 받아 마땅하다" 정도 아니었는가. 힘이 없더라도 최대한 노력해보는 것이 아니라 비굴하리만치 일찍 포기한다. 그것은 자국민의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 의무를 저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사건이 어디 하나둘인가.

그런데 (정말 백보 천보를 양보하여) 나라 밖에서는 그렇다치더라도, 제 나라 안에서는 말이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완전히 꿀먹은 벙어리다. 최근 들어서야 성난 여론에 떠밀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두 마디 하고 있다. 이것이 국가인가. 이것이 정부인가. 우리는 외국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제 나라에서조차 제 목숨, 제 안전 제가 챙겨야 하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우리 정부의 책임문제

▲ 한글 피켓내용-여중생 압사사건을 우리 법정에서
ⓒ 대자보
이번에 주한미군의 형사재판권 포기요청을 여론에 등떠밀려 마지못해 한 법무부 관계자 하는 말 좀 들어보라. 아예 알아서 기고 있다. 다행히 미군측에서 알아서 포기해주면 황감하게 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가 없단다.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검찰은 어떤가. 취재하다가 미군으로부터 어처구니없는 폭행을 당했던 기자를 미군의 항의를 충실히 받들어 요구하는 대로 구속집행하려다 법원의 제지로 실패했다. 미군에 의한 우리 기자 폭행사건은 아예 조사할 생각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미군기지의 철망을 뜯은 우리 대학생은 신속하게 잡아들여 구속수감해 놓았다. 제 땅에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정의를 실현하는 나라가 저네 군인이 사람을 죽였어도 잘못이 없다고 영내를 활보케 하는 마당에, 우리나라의 검찰은 범죄에 대한 항의로 기지철망을 끊는 죄(?)를 지었다고 인신을 구속하기까지 하였다.

참으로 '정의'에 가득 찬, 대단한 우리의 검찰이다. 곧 우리나라의 일체의 범죄행위-검찰 간부의 범죄행위를 포함해서-는 발붙일 곳이 없어지게 생겼다. 젊은 대학생이여, 그대가 고난을 견디게나. 그대 하나 희생(?)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범죄행위가 발본색원되어 전두환 장군도 감히 이룩하지 못한 '정의사회의 구현'을 그대로 인해 이루게 될 참이니. 그리고 그대는 우리나라 사법정의의 순교자로 추앙될 것이니.

경찰은 어떤가. 수사 하나 제대로 못 하고 그 초동단계 중요한 단서들을 다 놓쳐버렸다. 아예 소파 탓을 하면서, 수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소파 어디에도 우리 민간인에 대한 미군의 범죄에 우리 경찰이 수사를 못하게 한 규정은 없다. 단지 핑계일 뿐이다. 그리고 소파를 개정해주면 미군을 상대로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까?

국방부 관계자의 발언은 단연 압권이다.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은 태생적으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면서 "이번 사고는 미군의 공무중 발생한 사건으로 우리가 미국에 대해 재판권 포기를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한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는 발언이다. 증상이 이쯤되면 졌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태생적"이라 하니 언뜻 "왕후장상이 씨가 있느냐"며 난을 일으킨 만적 생각이 난다. 그는 어느 나라에서 녹을 받아먹고 사는 군인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공직자들이 이런 사고방식으로 무슨 일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법무부 대변인까지도 겸하는 모양이다. "미군측의 적극적인 협조아래 서울지검 의정부 지청이 사고조사를 실시한다"며 "의정부 지청의 조사는 직접조사가 아니라 미군 수사결과를 확인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한다. 그가 무슨 권한으로 검찰의 수사 수준까지 언급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정부 조직이 이렇다. 정부를 이끌고 나가는 공직자들에게 (물론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나) 친미사대 수준이 아니라, 공양을 드리는 공미사대 의식이 뼛속 깊이 박혀 있다. 가히 식민지적 정부라 아니할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은 이 나라의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세금으로 녹을 받건만 하는 일은 우리나라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 대변해주기 바쁘다. 우리 국민은 무엇을 믿을까?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내가 지난 1992년 노태우 정권 때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대사관 앞에 홀로 섰던 것도 말 못하는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런데 10년이 흐른 지금, 민간정부를 둘을 거쳐오면서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국민도 정부도. 10년 후엔 어떻게 될까?

우리 정부 관련부처의 책임문제

사건이 발생한 지난 6월 13일 이후 미군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에 관한 한 우리의 언론인은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더니 서해교전이 일어나자 죄다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용맹스러운 전사가 되어. 그 동안 그들은 어디에서 은신하고 있었을까.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아마 유언비어가 되어 우리 곁에서 멀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도대체 우리의 언론이 무엇이 그토록 두렵기에 스스로 침묵을 하고 제 나라 백성들에게도 침묵을 사주한 걸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도 아닌 그들 입에서 "월드컵 열기에 가려졌다"는 뻔뻔스러운 이야기가 나온다. 말은 바로 하자. 언론에서 보도만 했다면 가려질 일이 아니다. 누가 가렸는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은 그렇다 치자. 그 기자들이야 그 걸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니, 기대에 하나도 어긋난 것이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 욕을 해봐야 하는 사람만 우스워질 뿐이니 그만 하자.

그러면 소위 진보언론은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는가. 사설 두어 개와 단신 몇 개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한겨레>는 무엇 때문에 그리도 눈치를 보았을까. 수구언론보다 조금 나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군의 우리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 그리고 서해교전에 대한 보도작태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도의 주체인 언론인의 책임은 어떤 형태로든지 물어야 할 것이다.

언론인의 책임문제

분노하지 않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분노해야 할 일에 침묵하는 것은 비굴한 것이다. 오노의 김동성 금메달 탈취사건 때 들고일어났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길거리 응원으로 월드컵 열풍을 일으키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던 그 수많은 인파는 다 어디로 갔는가.

이 사건이 빙상경기 금메달 놓친 것만도 못한 사안인가. 이 사건이 월드컵 축구에 가려져야 할 사안인가. 이번에는 자존심도 내팽겨친 침묵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참인가.

쇼트트랙 금메달 때문에 인터넷 세상을 온통 달구었던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무엇이었던가. 제 또래의, 동생뻘, 자식뻘 되는 아이의 처참한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에서 축구응원에 몰입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공분(公憤)은 없고 공희(公喜)만 있는 우리 사회가 참으로 역겹게 느껴진다.

정작 분노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분노하지 않아도 될 일에는 목숨 걸고 쌍심지를 돋우고 나서는 우리의 천박함에, 10년 전 이맘때쯤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오늘도 절망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책임문제

공교롭게도 서울로 올라가는 열차 안에서 읽은 <한겨레신문>의 강만길 교수의 칼럼 내용이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우리의 현대사의 질곡을 꿰뚫고 있는 연로한 역사학자의 입에서 보다못해 우리가 "위대한 민족이냐 한심한 민족이냐"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는 21세기로 들어선 시점까지도 제 역사를 제대로 열어가지 못하는 7천만명의 '가엾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층 더 가혹하게 말하면, 그들은 남에게 예속되거나 남의 종살이를 하거나 저희끼리 분열해서 싸움질하고 대립하는 세 가지 역사밖에 가져보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공업화도 올림픽도 월드컵도 제대로 치러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어째서 그보다 훨씬 중요한 민족문제는 평화롭게 풀지 못하는가, 왜 제 땅이 세계에서 가장 전쟁위험이 높은 곳의 하나가 되고,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되게 하여 이웃 민족까지 불안하게 하는가, 참으로 알 수 없는 한심한 민족이군."

우리의 노 역사학자가 할 말을 가려서 말했을 뿐 메시지는 분명하다. 노 역사가는 우리를 "가엾은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한심한 민족"으로 불렀다. 이것은 차마 입밖에 내기 싫었던, 내가 10년 전에 미대사관 앞에 섰을 때, 그날 밤 베갯닢을 적시며, 그리고 이번 여중생 압사사건과 서해교전을 바라보면서 떠올렸던 바로 그 단어들이다. 우리의 행동거지가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이번 미군의 우리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해 이제는 미군의 뉘우침과 선의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생겼다. 우리 국민의 공분을 모아 눈치볼 것 없이 당당히 미국에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미군의 진정한 뉘우침과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조치를 받아내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적어도 '한심한 민족'은 면하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부시 미국대통령께


지난 6월 13일 우리나라에서 미군의 궤도차량이 두명의 우리 여중생을 깔아 죽이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를 성의있고 책임성있게 처리를 해야할 미군 측은 사고를 낸 미군에게 책임이 없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사건을 은폐하고 있어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더구나 항의집회를 취재하던 기자까지 연행하여 폭행하는 등 오만한 행동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국민의 강한 저항에 못 이겨 마지못해 주한미군 사령관이 사과를 하긴 했지만 그 또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술수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국민은 SOFA 규정에 따라 법무부를 통하여 미군의 재판관할권을 포기하도록 요청하였으며 사안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미군병사는 우리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소중한 가치이기도 한 "정의(Justice)"가 한국 땅에서도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 사고로 아까운 어린 학생이 두 명이 참혹하게 죽어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불행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정의를 추구하듯이 우리 땅에서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부시 대통령이 이 사태를 지혜롭게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주한미군은 우리 한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책임을 모면해 보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조사에도 응하지 않는 등, 우리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을 계속 보이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우리 국민을 모멸하는 행동은 그 역사가 뿌리깊으며, 이에 우리 국민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는 이제 주한미군사령관의 손을 떠나 버렸으며 그의 차원에서 사과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이 진정 한국을 속국 아닌 우방으로 여긴다면 부시대통령께도 이 두 여학생의 죽음에 애도를 표해주기를 바라며 사과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재판권의 한국이양과, 유사한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최대한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격앙된 우리 국민의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야 합니다.  이번의 불행한 사고를 미국 측이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향후의 한미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부시대통령의 사과와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2002. 7. 15
 
한국인 여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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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철 기자는 카이스트의 감사와 연구교수를 지냈습니다. 친일청산에 관심이 많아 오래 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을 지내고,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장준하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장준하부활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코칭으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와 '에듀코칭'을 통한 학교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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