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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양동근과 이나영이 사랑에 빠졌대요'라는 카피의 'TV광고'에 눈과 귀가 쫑긋 쏠렸다. 나도 양동근이 발하는 질박한 사람냄새에 어지간히 매료된 그의 팬이긴 하지만 '멜로물의 남자 주인공으로의 캐스팅은 모험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과 양동근을 아끼는(?) '쓸데없는 염려'가 앞섰던 게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SBS가 고수와 박정철, 김민희라는 '대한민국 미남미녀'군단을 내건 드라마 '순수의 시대'를 동시에 내걸었던 상황이기에 시청률의 향배에 관심이 더해졌다.

개과천선 스토리를 넘어선 삶과 죽음 그리고 성찰

아직 드라마가 중반에 못 미친 상황이기에 섣부른 예단일지는 모르겠다. '네 멋대로 해라'는 적어도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통통튀는 대사가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났고, 유별난 듯한 성격의 소유자들의 저마다의 사연이 자꾸만 궁금해졌다. 무엇보다도 내 사랑을, 내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끈적한 페이소스가 살아 있다.

양동근(극중 고복수)은 그의 나이답지 않게 인생의 비의(秘意)를 너무 빨리 알아채 버린 듯한 그만의 카리스마에 대해 조금의 실망도 허락하지 않았다. 재생불량성 빈혈(뇌종양)로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스물여섯의 소매치기 전과2범, 세상사람들은 그를 '쓰레기' '말종인생'으로 부른다. 불행한 가족사는 그의 비극의 진원이면서 다른 한편 한 개차반인생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삶의 진정성과 만나는 마지막 끈이다.

이나영(극중 전 경)은 이 드라마를 통해 현세(?)에서 더 큰 구원을 받을 것 같다. 화장품CF의 동화적 낭만의 세상에서 그녀는 기어이 탈출하는 듯 하다. 드라마의 그녀를 보며 '영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순수한 영혼은 상처입고, 고뇌한다. 그녀는 쉴새없이 상처입고 눈물흘린다.

순수한 영혼에 상채기를 내는 이들은 하나같이 '경제적 권능'을 가졌다. 극 중 전경의 아버지(조경환 분)가 그렇고, 그녀의 오빠(이세창 분)가 그러하며, 이들보다 덜 악랄하지만 전경을 조작된 이미지로써의 '순수'로 제멋대로 포장해 그 가공의 '순수'를 동경하며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는 한동진 기자(이동건 분)가 그렇다.

이들(전경의 아버지와 오빠)은 물신주의와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세속의 상식차원으로 현현하는-며느리이자 아내(김혜선 분)의 가계를 돕는다는 이유로 언어폭력을 습관적으로 일삼는 그들 부자를 보건데- 정말 '제 멋대로' 인 인물들이며, 이들과 부류가 약간 다른 한동진 기자는 유한계급의 낭만성에 내재한 문화적 자본의 폭력성을 체질적으로 휘두르는-육체적 직업의 상징인 '스턴트맨'을 의도적으로 '엑스트라(여분의)'로 명명하는 것을 보건데- '정말 제 멋대로'인 사람이다.

'영혼'을 치유하는 길은 '타자(他者)의 고통의 내밀함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백혈병'이나 '뇌종양'이 누선을 자극하는 상투적인 멜로나 가족드라마의 홍수속에서 '네 멋대로 해라'는 기실 별다르지 않는 소재와 주제이다. 하지만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내가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깊이의 차원에서 제목만 '순수의 시대'인 드라마의 통속성을 뛰어넘는 작가의 혜안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고복수가 마을버스기사인 그의 아버지(신구 분)나 이혼 후 개가에 실패해 치킨집을 하는 어머니(윤여정 분)와 늘상 악다구니와 실랑이를 반복하지만, 결국 나약하고 가련한 인간의 모습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연민과 애정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의 질퍽함에 나는 눈물이 난다.

서로를 숨기는 껍데기가 되버린 경직된 가족관계와 치졸한 경제적 득실로 모든 인간의 가치를 함몰시키는 더러운 욕망의 세계에서 진정으로 우리가 꿈꿔야 하는 원형의 일부를 보는 듯하다. 순수한 영혼들이 상처받지 않고 '내 멋대로의'인생을 살아가는 세상을 한번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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