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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개각이라 할 장상 국무총리서리와 일부 각료 임면을 두고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특히 장총리서리 아들의 국적 문제와 부동산투기, 학력문제까지 불거져 과연 그가 총리직 수행에 적합한 인물인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무총리 탄생이라는 파격성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더욱 확대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신라시대 진덕여왕 등 3명의 여왕 이래 1500년만에 처음으로 여성 국무총리가 태어난 것은 경하할 일이다. 중국ㆍ일본 등 동북아권에서는 최초의 일이기도 하다.

또 개인 장상씨는 인품이나 능력 면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도 따른다. 한나라당 김무성 후보비서실장이 "대통령이 유고될 경우 어떻게 여성총리에게 국방 등 국정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여성비하의 발언도 나왔지만 여성이기에 국방이나 국정책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망언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학력문제는 본인의 해명대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 신학대학원'이 아닌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정정하기로 하자. 그리고 부부가 교육자인 처지에 아파트 2채를 튼 97평형 호화아파트에서 살아온 것이나, 경기도 양주에 동료 교수들과 함께 '노후대책'으로 임야와 대지ㆍ잡종지 1만 3천여평을 사놓았다는 것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그러나 장남의 국적문제는 그럴 듯한 해명에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국적을 취득했으면서도 한국에 주민등록이 돼 있고 건강보험 등 혜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군복무 등 국민의 의무는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피하고 필요한 혜택은 누렸다면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특히 군복무와 관련, 신체상의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미국적 관계인지는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장총리서리의 해명대로 "16살 때 큰 수술을 받아서" 한국국적을 회복했더라도 군입대가 불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입대는 가능하지만 미국적 때문에 면제받은 것인지가 의문과 의혹의 초점이다.

국제화시대에 젊은 세대의 국적문제는 지나치게 폐쇄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최근 상류층 일부의 유행대로 '원정출산'이 아닌 부모의 유학이나 해외근무기간 외국에서 출생한 경우는 자동적으로 그 나라 국적이 취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크게 문제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한나라의 최고행정책임자의 아들이 국방의 의무에서 면탈하고자 성년이 된 이후에도 의도적으로 미국국적을 갖고 있었다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장총리서리는 이화여대 총장시절에 '김활란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주도하면서 '김활란상'을 제정하는 등 친일인사를 미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무리 학교설립자에 대한 예우차원이라 하더라도 장 총리서리의 역사관이나 국가관에 의구심을 갖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파척결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이 되고 있는 터에 여성 친일파 대표적 인물의 '김활란상'을 제정하는 처사는 건전한 역사관의 지식인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역사관이 국무총리직의 수행과정에서도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친일파 척결운동이 크게 제약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장 총리서리가 그 동안 보여준 대북 열린 자세는 바람직하다. 냉전수구 세력이 햇볕정책의 포기를 주장하면서 '전쟁불사론'도 서슴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열린 자세'는 남북 화해협력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이번 장총리서리 임명과정에서 다시 확인된 한국사회 지도층(상류층) 인사들의 공통적인 행태 때문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고 이중국적을 소지하며 부동산 투기를 하고 친일파와 직ㆍ간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나라의 주류세력이라는 상류층ㆍ지도층 인사들이 이와 같이 자식들의 병역을 기피(면제)하고 이중국적을 소지하면서 여차하면 해외로 내뺄 연구나 하고 친일파 척결을 거부하고 부통산 투기를 일삼아 일확천금을 노린다는 사실은 한국사회 상부구조가 얼마나 취약하고 부도덕적인가를 말해준다.

그러면서 이들은 공석에서는 입만 열면 국가안보를 외치고 애국심을 노래하고 서민복지를 읊조린다. 의무는 외면하면서 온갖 특권과 특혜를 향유하고 허위의식으로 살아간다. 예나 제나 한국사회의 비극은 왕조사회나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국가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배층은 사대주의, 식민지, 외세지향으로 나라를 팔아서라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피지배층은 내부적으로는 억압과 수탈을 당하면서도 유사시에 민족독립과 해방, 민주화운동에 몸을 던진다.

그렇지만 열매는 항상 타락한 지배층이 차지하고 피지배층은 영원히 지배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장총리서리의 임명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사례는 한국 상류층 지배세력의 '표본'일 뿐이다.

지난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사회주류세력(Main Stream)론'을 제기하더니 며칠 전에는 같은 당의 인사가 '명문가 일류대출신 대통령론'을 제기했다. 한국 사회의 주류나 명문가, 일류대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총리가 되고 장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시비할 바 못 된다. 문제는 그들이 과연 주류세력으로서, 명문 출신답게 의무와 책임을 다해왔는가를 묻고 따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장상 총리서리의 국회청문회나 일반 토론과정에서 이 문제가 폭넓게 논의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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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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