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7월 9일 오후 8시, 인도에서 한국을 방문한 오랜 친구를 이태원의 해밀턴 쇼핑센터 앞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에 1주일 동안 출장을 왔다. 3년 만에 만나는 그는 여전히 깔끔하고 정갈하게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 친구와 쇼핑쎈터 앞에서 회포를 풀고 있었는데 한 50대의 중년 아저씨가 다가왔다. 우리의 대화를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아저씨가 갑자기 나에게 손가락으로 얼굴에 삿대질을 하더니 “아가씨, 멀쩡하게 생긴 것 같은데 왜 이런 피부 까만 깜둥이랑 돌아다녀, 이런 것들은 인간도 아니야. 이태원에 우리보다 나은 백인도 많은데 왜 이런 깜둥이랑 다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할말을 잊은 채 그 아저씨의 얼굴을 보았다. 갈색이 가까울 정도로 검게 탄 얼굴, 초라한 차림새, 거친 손 등 그는 중년의 멀쩡한 한국 사람이었다.

친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통역을 부탁했다. 난 그 아저씨가 한 말을 도저히 통역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아저씨는 계속 내게 삿대질을 하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난 너무나도 민망하고 친구에게 미안해서 빨리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 아저씨가 그 자리를 뜨려는 나에게 한 말이 더 기가 막혔다.
“우리를 도와 준 것 미국애들이야. 저런 깜둥이가 아니라구. 멍청하고 짐승만도 못한 것들 하고 같이 다니지 말아.”
나는 올라오는 분노에 아저씨게 한마디 했다.
“그럼 그 말하는 아저씨는 백인인가요?, 이태원에 돌아다니는 거지 같은 미군병사하고 댁이나 잘 다니시죠?”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밀치더니 “깜둥이랑 다니면서 네가 뭐 잘했다고 그래, 내가 뭐 틀린 말 했어?”라고 말했다. 놀란 내 친구가 나를 한번 더 밀치려던 아저씨를 저지하려고 하자 "야, 깜둥이, 만지지마, 더러워”하는 것이었다. 근처에서 경찰차를 타고 순찰하던 경찰이 차에서 내려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아저씨는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친구는 아저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왜 나를 밀쳤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난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정말 아름다운 마호가니색 피부를 가지고 있다. 큰 눈에 너무나도 훤칠해서 대학 때 많은 여학생들을 설레게 했다. 다국적 기업의 석유 엔지니어로 전세계를 많이 여행하는 그는 누구에게도 깜둥이니 더럽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3년 전 처음으로 한국에 출장왔을 때, 종로의 한 술집에 갔다. 술집의 종업원이 다른 종업원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저 여자는 왜 깜둥이 외국인 노동자랑 술 마시러 왔지?”
난 그때 너무나도 화가 나서 그 술집에서 바로 나왔다. 한국을 오랜만에 찾은 친구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화가 났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만난 친구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서 너무나도 미안했다. 좋은 곳,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 고국에 가는 것을 바랬는데, 그의 두 번째 방문도 이렇게 끝났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백인 우월 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인은 노란색 피부를 가지고 노란 얼굴로 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미국 최악의 인종 차별주의 단체인 KKK보다 더 한 백인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인종 차별이 얼마나 강한지 이번 일로 더 많이 깨달았다. 월드컵을 치르고 세계화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우리사회에서 대접을 받을 이유가 있을까?. 아름다운 마호가니색 피부나, 아주 멋있는 구리빛 피부를 더럽고 깜둥이라고 몰아 붙이는 한국인은 뭐 그리 대단한지 알고 싶었다.

미국 속어로 동양인인데 백인만 좋아하고 백인하고만 다니는 여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바나나라고 한다. 바나나는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과일이다.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많은 바나나들이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