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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이 드린 바 있죠. 발트3국 이야기에서 지겹게 이야기한 '칼렙의 아들'에 나오는 탈린의 건설신화, 탈린을 물에 빠뜨리려는 고약한 난장이 그리고 수많은 핀란드 사람들.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이 나라가 이전에 잠시 소련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유럽연합 가입 1순위에 있는 나라인만큼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여러모로 나아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에스토니아 역시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에는 6개의 지방이 있는데, 각 지방주민들의 일반적인 기질 또한 그 지역의 영향을 받아 차이가 난다고 하는군요. 수도가 있는 하류마(Harjumaa)의 주민들은 아무래도 도시적인 분위기가 강한 귀족적인 기질이 강하고, 대학으로 유명한 타르투(Tartu)시 타르투마(Tartumaa) 주민들은 학자적인 기질, 나르바(Narva), 코흐틀라 옐베(Kohtla-Jarve) 등 공업도시가 많은 북동부의 비루마(Virumaa) 주민들은 노동자다운 기질, 남부지역인 물키마(Mulgimaa)는 부자들의 기질, 남동쪽의 세투마(Setumaa)는 유흥과 술을 좋아하는 기질, 섬지역 사아레마(Saaremaa)는 뱃사람다운 기질이 강하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런 분류가 다른 지역 사람들을 깎아내리는데 적용되는지 어떠는지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작은 나라도 이렇게 지역마다 차이가 다양한만큼, 탈린 한 도시만 보고 에스토니아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자칫 어리석은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합시다.

에스토니아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말이겠지만요.

전체 에스토니아의 모습을 볼 시간은 없고 탈린만이라고 잘 보고 가시겠다면, 일단 탈린의 역사가 담긴 구시가지부터 가보시죠. 탈린 구시가지는 발트3국의 다른 수도보다 비교적 커서,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약간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50대 이상의 노인이 아니면 걸어서 45분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탈린에 널린 것이 성벽이기 때문에 그 성벽들에 딸려있는 부속건물들을 다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신다면, 그 외 볼거리들은 걸어서 20분 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탈린 구시가지 관광을 시작하실 때 가장 좋은 장소는 맥도날드 간판이 크게 붙어있는 비루(viru) 문입니다. 그 앞으로는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답게 꽃 가게들이 들어서있고, 시가지로 들어가는 6개의 대문 중 하나였던 쌍둥이 탑이 보입니다. 그 문을 통과해서 조금 가시면 Vene 거리와 만나는 장소가 나오고,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지어진 많은 건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조금만 안으로 더 들어가면 뾰죽한 고딕양식의 건물이 인상적인 시청광장이 나옵니다.

시청광장(Raekoja plats)에 있는 그 고딕식 건물 구시청사는 북유럽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딕건물이라고 하는군요. 그 시청건물 내부는 현재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탈린역사박물관도 들어서있습니다. 시청광장에 가시면 11번지에 있는 약국을 가보세요. 1422년부터 한 집안이 10대에 이르러 현재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입니다. 시청광장 남쪽편으로 조금 내려가면 13세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니굴리스테(Niguliste)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현재 에스토니아 예술박물관으로 중세미술품과 15,16세기에 지어진 교회의 제단들, 바로크와 르네상스식의 샹들리에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Vene 거리 16번지에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은 1246년에 지어진 수도원으로 탈린에 있는 수도원 중 가장 오래된 입니다.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화려한 조각들을 감상하세요.

톰페아 언덕(Toompea)은 탈린의 한가운데 위치한, 칼렙의 부인 린다가 돌을 떨어뜨려 생긴 언덕으로, 리보니아 시절에 봉건영주와 주교들이, 주로 무역과 장사를 하며 살던 아랫 것(!)들을 내려보며 살던 장소입니다. (그 아랫것들이 살던 지역인 시청 광장주변은 저지대로 불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곳은 1229년 독일기사단이 최초로 요새를 건설한, 탈린의 탄생지입니다.

시청광장에서 Pikk Jalg (우리말로 번역하면 '롱다리')거리를 따라 올라갑니다. 그 '롱다리'거리를 다 올라가면 Lossi Plats(성광장,城廣場)이 펼쳐지고 그 광장엔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던 19세기 제정 러시아 차르의 권력을 보여주던 러시아 정교회 알렉산데르 넵스키(Aleksander Nevski) 교회가 위치해 있습니다.

성 광장의 서쪽 끝에는 톰페아 성이 보입니다. 그곳엔 1227년에서 1229년까지 독일인들이 건설한 탑들이 아직까지 남아있고, 성의 주건물은 18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꼭대기에 에스토니아의 3색기가 펄럭이는 탑은 '키다리 헤르만'이라고 불리는 탈린의 가장 인상적인 건물 중 하나입니다. 현재 톰페아성은 에스토니아 국회(Riigikogu)건물로 사용됩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 옆으로 나있는 Toom-Kooli 거리 끝에 위치한 교회는 Toomkirik 교회로, 그 교회이름에서 이 언덕의 이름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 단어를 따져서 직역을 해보면 톰페아란 '톰의 머리'란 뜻도 있습니다.

탈린은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등 그 당시 4대 열강들의 이권다툼지였기 때문에 13세기부터 도시외곽을 성벽으로 방어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조요새로부터 시작해서 13세기 말에 이르러 돌로 짓기 시작했는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16세기에 건설된 것입니다.

건설 당시 도시 전체에는 27개의 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19개만 남아있습니다. 그 중 대다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꼭대기엔 전망대를 조성해 놓은 곳도 있어서 올라가면 발트해와 마주한 탈린 구시가지의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탈린의 경치를 즐길 때마다 보이는 파란 교회탑은 올레비스테(Oleviste) 교회의 탑으로, 탈린에 들어오는 배들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꼭 보아야할 성탑은 현재 현대미술박물관으로 쓰이는 Kiek in de Kok(Komandandi 2, '부엌을 들여다 보아라'라는 뜻, 남의 집 부엌이 보일만큼 높아서 그런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에스토니아 해양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Paks Margaareeta(Pikk 70. 뚱뚱한 마가렛)이고, 겉에서 보기에 뭔가 있어보이는 탑들은 거의 내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벽의 탑들 외에서 탈린 구시가지 여기 저기에는 도시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고지대가 많이 있어서, 여행에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수 있는 장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부 사진이 멋있게 나온답니다.

카드리오르그 (kadriorg)는 탈린 시가지에서 멀지않은 여름휴양지로 러시아가 1711년 에스토니아를 점령한 이후, '유럽으로 열린 러시아의 창문'이란 이름으로 요새들을 짓기 시작하면서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곳은 특히 아름다운 해안과 모래사장이 어우러진 장소로 그 당시 러시아 대제였던 표트르 대제가 그의 아내 예카테리나를 위해 만들었으며, '예카테리나의 계곡'이라고 이름 붙혔습니다. 그 명칭이 에스토니아어화하여 '카드리오르그'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드리오르그 공원엔 무엇보다 카드리오르그 성이 가장 큰 볼거리입니다. 1718년에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의 대가 니콜로 미체티가 설계한 이 성은, 성 건축을 시작할 때 러시아 대제가 직접 벽돌 세 장을 얹었다고 합니다. 이 성은 현재 에스토니아 대통령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전 기사에서 한번 소개한 바 있는 에스토니아 세계 노래대전시 쓰이는 무대(Singing Bowl)가 있는데, 그 무대에는 2만명이 올라 합창을 할 수도 있으며, 2십만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카드리오르그 공원 옆 해안가에서는 탈린의 항구와 구시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데, 산책코스로 아주 좋습니다. 해안가에서 언덕 쪽으로 보이는 '천사의 상'은 탈린 엽서사진에 자주 나오는 동상입니다. 1902년 만들어진 러시아 군함 '루살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동상으로 탈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상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고, 그 뒤쪽으로 있는 아무 장식 없는 길죽한 기념물은 소련이 '소비에트의 서쪽 끝'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탑이라고 합니다.

로카 알 마레(Rocca al Mare. Vabaohumuuseumi 12)는 에스토니아 각지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민속촌으로 코플리(Kopli)만 근처에 자라잡고 있어, 반나절 코스로 다녀오기 적당한 곳입니다. 그곳에 있는 에스토니아 식당은 탈린에서도 꽤 알려진 식당입니다. 시내에서 트롤리버스 6번을 타시고 동물원까지 가시면, 들어가는 입구가 표시 되어있습니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민속촌을 꼬박꼬박 방문하신 분이라면, 세 나라 민속촌의 분위기가 다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셔도 좋습니다.

탈린은 발트3국 중 가장 관광산업이 발달한 곳이라고 해도 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일단 호텔의 경우 유스호스텔에서부터 아주 비싼 곳까지 선택의 폭이 다양합니다. 유스호스텔도 비교적 많이 있으므로, 탈린에 처음 오는 배낭여행객들도 그리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탈린 시청광장의 관광안내소에 가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줍니다. 제가 가본 중 재미있는 식당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리면 Olde Hansa(Vanaturg 1)에 가보세요. 이곳은 '중세식당'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시청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시청광장을 산책하시다가, 중세시대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으면 바로 이 식당입니다. 나무로만 만든 그릇, 가죽으로 만든 메뉴판, 종업원 의상도 중세식이며, 촛불만 이용하는 조명 등 계산대의 현급출납기를 제외하면 보이는 것은 전부 중세식입니다.

중세시대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해 주곤 하는데, 만만한 가격은 아니더군요. 하지만 낮시간엔 분위기를 즐기면서 커피만 한잔 마셔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핀란드 패스트푸드를 맛보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Carrols, Hesburger 등의 핀란드 맥도날드는 탈린 여기저기 있습니다. 물론 핀란드에서 놀다오신 분은 다 지겹다고 하시겠지만…

탈린에도 한국식당이 있습니다. 탈린에 고려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고, 한인연맹체까지 있습니다. 이곳의 한국식당의 맛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맛과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한반도를 그리는 그리움으로 가득한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아리랑(Ari-ran Telliskivi 35)은 탈린기차역(Balti jaam) 뒷편에 자리잡은 식당으로, 분위기만 볼 때는 서울의 일반한식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실지로 한국인이 요리를 하고는 있지만, 재료수득에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드신다면 썩 나쁘지는 않은 곳입니다. 한국음식은 역시 한국에서 먹어야 제 맛입니다. 메뉴가 에스토니아식으로 표기되어 있긴 하지만 분명 한국어입니다. 암호 해독하는 기분으로, 과연 무슨 음식일지 알아맞혀 보세요.

고려겨레식당 (Punane 68)도 권해드립니다. 찾기가 약간 힘들고, 겉모습은 식당이라기보다 바에 가까운 곳입니다. 한국음식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식단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엔 한번도 가보지 못한 우즈베크 장성 출신의 고려인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고 얘기하고 대화 나누시면 음식 몇 접시 그냥 더 주실지 모릅니다. 주인 아저씨는 한국에 한번도 가보시지 않으셨지만, 전라도 사투리가 아주 구수하더군요.

버스를 타고 탈린에 오게 되면 도착하게 되는 탈린버스터미널 역 앞, 간판에 용 한마리가 크게 그려진 Kim이라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이드북에서 이곳을 한국식당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종업원들조차도 그곳은 한국식당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얼마 전 '폭탄테러'를 당해서 현재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식당의 정보는 약 일년 반 정도의 정보이기 때문에 그동안 주소나 '메뉴' 등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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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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