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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 중에 가장 우선으로 꼽는 것이 '정치의 후진성'이다. DJ집권 이후 경제사회분야에 대한 구조조정 및 개혁은 상대적으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가지면서 실천되었고, 향후 착실한 이행이 지켜진다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 예컨대 IMF이후 국민고통을 수반한 강력한 구조조정에 힘입어 경제분야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국내외 평가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발전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의 후진성은 여러 가지 장벽에 부딪혀 극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후진성의 원인으로 부패, 비효율성 등 여러 가지를 지적하지만 보다 근복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정치란 사회통합을 목표로 하는 합리적인 조정기능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정치 구조 자체가 분열적 구조를 갖고 있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즉, 정치가 스스로 분열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회분야에 대해 사회통합과 합리적 조정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다시말해서 사회통합과 합리적 조정을 목표하는 정치가 자기 스스로 분열구조에 빠져 있어 대부분의 정치행위가 결과적으론 사회통합을 해치고 사회조정기능을 상실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정치의 분열구조를 만들고 고착화시키고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한국정치의 3대 암적행위 '색깔론', '지역주의', '비방'이라고 꼽는다. 왜냐하면 이 3대 암적행위가 발동하면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보통 한국정치에서 3대 암적행위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동원된다. 만약 한쪽이 '색깔론' 혹은 '지역주의' 딱지를 붙이고 나서 근거없는 비방을 퍼부으면 당하는 쪽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대부분 패배한 것이 대체적인 결과였다.

'색깔론'과 '지역주의' 딱지를 붙이면 '이다', '아니다'의 지겨운 논쟁이 반복되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근거없는 주장'으로 판명되어 국민에게 허무주의를 조장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대상자는 피해자가 되어 있다. 결국 이 3대 암적행위는 한국정치의 분열구조속에 기생하면서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주술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번 걸리면 지독하게 앓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색깔론'과 '지역주의' 그리고 '상호비방'이 시작되면 '왜'라는 문제가 사라진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 '급진', '좌파', '용공', '영남과 호남' 등으로 매도되면 그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은 사회적으로 설득할 힘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그 집단과 정치인이 주장하는 내용은 사장되고 '색깔과 지역'의 딱지만이 남아 맹위를 떨치는 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국민경선 결과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른바 '노무현 현상'이다. 제주, 울산, 광주의 경선결과는 국민을 감동시키면서 몇 십 년 누적되어 온 '지역주의'가 눈녹듯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대세론을 형성하던 1위 주자는 '음모론'을 주장하며 경선포기까지 생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광주의 결과는 언론과 국민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정치사에 기록될 혁명이라고 평가한다. 노무현 현상은 국민들이 '노무현'을 통해 지역주의를 끝장내고 전 국민의 화해와 통합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당 경선이 '지역주의'를 넘어가는 능선에서 '색깔론'이란 구태방식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급진', '좌파' 등의 딱지를 상대후보에게 마구 갖다 붙이고 '이다', '아니다' 논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는 모두가 멈추어주길 바라지만 색깔론을 동원한 후보는 그 상황을 즐기는듯 반복하고 있다.

더 이상 색깔론이란 주술로 국민을 현혹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 국민은 색깔론이란 주술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얼마나 많이 속아왔는가? 구체적인 예를 들면 무궁무진하지만 이조차 색깔론을 부추기는 것이 되는 것 같아 열거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쉬운 예로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비판세력을 '용공', '빨갱이'로 매도하고 목숨까지 빼앗아 갔던 기억이 오래지 않다. 아직도 분단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억제되고 있음을 인정하도록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제한받는 국가와 민족에게 미래는 과거의 도그마속에 갇혀 부러진 상상력만이 존재하는 불행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이다', '아니다' 논쟁을 그치고 "왜?"라는 논쟁이 있어야 한다. 용공, 빨갱이 딱지가 아니라 그 가치를 둘러싼 생산적 논의 없는 색깔론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주술을 걸자 색깔론, 지역주의, 비방을 동원하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에겐 무조건 패배를 안겨주자. 그 정치인과 정치집단이 다른 무슨 말을 해도 3대 암적행위를 동원하면 패배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이것만 한국정치가 분열구조에서 벗어나 진정하게 사회통합과 합리적 조정기능으로 복원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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