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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러분, 지난 한해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2001년에도 희망을 일궈냈습니다.

2001년은 사회 각 분야별로 기득권 세력과 개혁세력 간의 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한해였습니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언론계-정치권-시민단체 사이에 찬반논란을 일으켰고, 언론개혁문제가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공론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티조선 운동 등 언론권력을 감시하는 시민과 네티즌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커졌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부분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1년을 언론개혁 승리의 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정치권은 여야간의 소모적 정쟁이 어느때보다 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인권신장을 위한 크고 작은 결실은 주목할만 합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가인권기구들이 발족했습니다. 여성계에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등을 결성하면서 성폭행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했고 장애우들은 '이동권 요구' 시위를 본격적으로 벌이는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신장을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습니다.

노동계는 구조조정반대 시위를 조직화했고, 농민들은 쌀값보장 시위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그런가운데 사립대학을 비롯한 사립고등학교의 '사학민주화' 움직임도 그 어느 때보다 거셌습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전국 사학들의 부패실상은 사학구성원들의 지칠줄 모르는 투쟁을 통해 사회 곳곳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제적으로는 9.11 테러사건이 우리를 충격 속에 빠뜨렸습니다. 이 사건은 아프간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21세기에도 우리는 전쟁속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위기의식을 안겨주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테러와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쪽지 이어날리기'를 주도했고 그에 동참한 4453명의 '반전평화' 촉구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01년 오마이뉴스에 등장했던 뉴스의 인물 가운데 우리 사회를 진전시키는데 기여한 3명(단체)을 '올해의 인물'로 발표합니다. 오마이뉴스는 2001년을 달군 여러 이슈들 가운데 언론개혁 운동, 인권신장 운동, 사학민주화 운동을 주목했고 그 중 어느 하나를 선정하는데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세 부문의 상징적 인물과 단체를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로 선정합니다.

(선정작업은 1차 독자 추천, 2차 편집국 심사로 이뤄졌습니다. 독자들의 추천은 10일간에 걸쳐 약 150여 명이 추천에 동참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00년 10월24일 소설가 이문열 씨의 책 733권이 고물상에 넘겨지는 순간. 책값은 현재 발행되는 최저 화폐액면가인 10원이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화덕헌 이문열돕기운동본부 본부장

'언론개혁'은 2001년의 가장 큰 화두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올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다. 언론개혁의 거대한 흐름은 평범한 사진관 주인이었던 화덕헌(37) 씨를 '행동하는 시민'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화씨는 지난 7월 이문열 씨가 언론개혁론자들을 지칭해 '홍위병'이라고 표현하자 이에 분노, 자신이 살고있는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이문열 돕기 운동본부>를 결성했다.

화씨가 결성한 운동본부의 첫 번째 사업은 '이문열 책 반납운동'. 일 개인으로부터 시작됐던 이 사업은 불과 4개월여만에 1백명 이상의 동참자를 이끌어냈다. 11월3일, 운동본부는 이문열 씨가 사는 '부악문원' 앞에서 독자들이 '자진반납'한 이문열 씨의 책 733권에 대한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식을 마친 책들은 단돈 10원에 고물상에 넘겨졌다.

화씨의 '이문열 책 반납운동'은 '한 사람의 독자'에 불과했던 사진관 주인이 만들어낸 불씨가 우리 사회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화씨는 스스로도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이 되어 이문열씨를 옹호하는 한 유명 소설가에게 '왜 이문열 씨 책 장례식을 치렀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또 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8월29일 노들장애인야학의 박경석 교장이 자신의 손과 휠체어를 버스손잡이에 수갑과 쇠사슬로 묶은 채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우리도 버스를 타고 싶다."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의 1년은 '아직도 부끄럽기만 한' 우리사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박 교장을 비롯한 장애인들은 "장애인도 맘놓고 버스탈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하며 수차례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몇차례에 걸쳐 시내버스를 점거한 채 쇠사슬로 온몸을 묶고 농성을 벌였고, 그때마다 전경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왔다.

박 교장은 지난 4월 20여 개 장애인 사회단체들을 결집해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결성했다. 그리고 지하철 철로 아래에서, 서울역 천막에서, 일반버스 안에서, 그와 장애인들은 몸을 아끼지 않는 투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알려나갔다.

그와 장애인들에게 2001년은 버스타기가 더 이상 행사가 되지 않는 날을 향한 첫 발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다.

10월24일 덕성여대 학생들의 삭발식. ⓒ 오마이뉴스 이종호
덕성여대 총학생회·교수협의회

24시간 1인 릴레이 시위, 무기한 천막 농성과 단식, 그리고 집단 삭발...
학생, 교수, 교직원이 따로 없었다. 여기에 졸업생들도 큰 힘을 보탰다. 2001년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에서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분규를 겪고 있는 모든 사립학교에 하나의 모범이자 희망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기약 없는 투쟁'을 택했던 이들에겐 참으로 견디기 힘든 한 해였다. 1학기에는 재단 측과 밀고 당기는 싸움 속에 하루하루를 긴장과 고통 속에 보내야 했고 2학기 들어서는 그들의 '철저한 무관심'에 맞닥뜨려야 했다. 결국 10월24일, 사태 해결에 무성의한 재단과 교육부에 맞서 01학번 새내기를 포함한 20여명의 여학생들과 그 스승들이 선택한 것은 눈물의 삭발이었다.

이들의 아픔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10월말 관선이사가 파견되면서 지난 2월 재단측의 교수협의회 교수 부당해임으로 시작됐던 덕성여대 학내분규는 정상화의 단초를 마련했다.

물론 이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젠 강의실의 '평범한' 교수와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들의 새해 희망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분들에 대한 소감과 사연은 12월 21일부터 3일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연재됩니다. '선정 사진' 전달식은 12월 20일 오후 7시 안국동 철학카페 느티나무에서 열리는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송년식'에서 함께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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