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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계절은 겨울이다. 덧없이 흐르는 것이 세월이라 ! 강산의 변화가 참으로 오묘하기 그지 없다. 불과 몇해전만 해도 '이제' 라는 표현을 자주 썼거늘, 요즈음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시절(時節)을 보며 '벌써 이리 되어 버렸나' 하는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바람 매섭고 눈 쏟아지는 가슴엔 늘 여유로움이 남아있다. 소복히 쌓여가는 눈으로 인하여 잠시 인간사의 비애를 잊고 허망함을 배운다.

광주·전남 지역에 13일 저녁 무렵부터 첫눈이 내렸다. 전국적으로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눈은 14일 저녁 무렵 때까지 그칠줄 모르고 사람사는 동네에 내렸다. 이틀새 하늘은 하얀 눈꽃송이를 천지(天地)에 뿌려 놓았다. 세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두터운 하얀 겉옷을 입었고 사람들은 바람찬 거리에 맞서 두터운 외투와 우산으로 무장했다.

눈이 그친 토요일 오후 설경을 구경하려 광주에서 가까운 백양사역을 둘러 보았다. 무궁화호를 타니 광주역에서 불과 30여 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차안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니 산 정상에 가득 쌓인 설경이 기가 막히다. 짬내어 정상엘 올라보고 싶은 욕망이 불쑥 든다. 그렇지만, 오늘은 이미 백양사(白羊寺)를 향하여 나선길 되돌릴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차 여행의 백미(白米)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짝꿍 세상물경을 들여다 보는 재미 말이다.

백양사역은 내장산 국립공원중 백양사 지구에 위치한 간이역이다. 장성군 북이면에 위치한 백양사역은 전라남북도의 경계역으로서 1914. 1. 1. 사거리 역원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이후 1950. 6. 30. 6.25동란으로 역사가 소실되는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역이다. 역이름은 인근에 유명사찰인 백양사(白羊寺)의 이름을 본따서 1967. 1. 20. 역명을 사거리역에서 백양사역로 개칭하였고 1987. 9. 1. 역사를 신축 준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양사역에 내렸을 때 육칠십년대 역사(驛舍)의 애환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하얀 설경위에 쭉 뻗은 철로의 모습이 마치 길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아니어도 내가 가므로 생기는 것이다" 라는 외침과 어우러지며 멀어지는 객차의 흔적과 겹치어,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다. 기차는 하얀 언덕 위에 가로놓인 두 개의 선을 따라 점으로 변화하며 그렇게 사라졌다.

백양사역에서 도보로 1분도 안 되는 사거리 버스정류장에서 20여 분 마다 오는 군내버스를 기다리며, 호떡을 천 원어치 구워 들었다. 오후 3시가 가까워서인지 출출함을 달랠겸, 어릴적 어머님께서 구워주시던 호떡 생각이 불현듯이 뇌리를 스쳐서 였다. 지금은 길거리 어딜 가나 호떡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스무 해전만 하더라도 겨울이 오면 군것질거리가 그리 마땅치 않았다. 고작 '뻥튀기'가 간식의 전부였다. 추운 겨울날 연탄불 위에 앉아 어머님께서 손수 해주시던 호떡 맛에 비할 것이 못되지만 그럭저럭 출출한 뱃속을 채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버스를 타자 버스는 장성호를 담아돌며 백양사(白羊寺)로 향하였다. 가을이었으면 단풍으로 수놓일 길이, 오늘은 하얀눈으로 수놓아 졌다. 그 맛도 제법 볼거리를 제공했다. 다만, 길이 빙판으로 변하여 자칫 사고를 부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백양사(白羊寺)는 전라남도 장성군에 편입되어 있는 고찰로 커다란 바위봉인 백학봉(학바위)을 배경으로 가을이면 좌우에 흐르는 맑은 계곡과 빼어난 단풍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 백학봉 1 ⓒ 국중광

차가 멈추어 서자 하얀 눈길을 걸었다. 백양관광호텔 앞에서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약 1.5km 구간의 산책로는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앙상한 단풍나무가지 위에 소복히 쌓인 눈이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백양사 입구에 이를쯤 감나무 군락이 보인다. 길섶에 까치밥으로 한두 개 남겨 두어야 할 홍시가 무더기로 매어 달려 있다. 빨간 아기 볼처럼 하얀 눈속에 어우러진 모습이 가히 기가 막혀 카메라 셔터를 몇 컷 누른다. 은갈색 나무와 하얀 눈속에 빨갛게 달아 오른 아기 볼... 한번쯤 상상을 해 보라 !

▲ 눈밭에 열린 홍시 ⓒ 국중광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단풍나무로 둘러 쌓인 쌍계루가 있다. 쌍계루는 백양사 단풍의 절정을 이루지만, 오늘은 설경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흔히 봄은 백양, 가을은 내장이라고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백양의 설경 역시 설악에 견줄한 하다.

백양사 경내로 들어서자 맞은 편에 유명한 비자림이 있다. 비자나무는 늘 푸른 나무로 5천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주차장에서 백양사에 이르는 구간에 수백 년 된 갈참나무와 더불어 오늘처럼 춥지 않은 날에 찾아들면 산림욕에 더없이 좋은 장소일 듯 싶다.

백양사(白羊寺)는 원래 백암사(白岩寺)라 불리었다. 백제무왕 33년(632년) 여환선사가 창건하여 백암사라 명명했다. 1034년 중연선사가 대대적으로 보수를 한 뒤 정토사로 고쳐 부르다가,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던 3일째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듣는 것을 보았다. 7일간의 법회가 끝나는 마지막 날 스님의 꿈에 흰양이 나타나 스님의 설법을 듣고 회개하여 다시 환생하게 되었다고 감사의 절을 올렸다고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양이 죽어 있었고 그 이후 절의 이름은 백양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백양사 전경 ⓒ 국중광

백양사를 경내를 뒤로 하고 정류장으로 내려서는데 저 앞에 걸어가는 한쌍의 연인이 세워놓은 작은 눈사람이 보인다. 올망졸망하게 꾸밈없이 서 있는 작은 조각상이다. 기품있게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장군상이다. 나들이를 접으며 비록 날이 풀리면 녹아 없어 질지언정 보무도 당당히 빙그레 웃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우리내 삶도 저 눈사람처럼 평온한 웃음으로 세상속에서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 눈사람 1 ⓒ 국중광

덧붙이는 글 | ※ 여행메모 : 백암산에서 내장산으로 이어지는 등산코스

   - 제1코스 : 주차장-백양사-약사암-영천굴-학바위- 백학봉-도집봉-상왕봉-운문암-백양사(총 9.3㎞, 약 4시간 30분 소요) 
   - 제2코스 : 주차장-백양사-운문암-능선갈림길-사자봉-청류암-홍련암-주차장 (총 8㎞,약 4시간 30분 소요) 
   - 제 3코스(백양사-내장산 연결) : 백양사-영천굴-백학봉-구암사-대가마을-내장산-신선봉-금선계곡-내장사 (약 9시간 소요) 
   - 제 4코스(백양사-남창골 연결) : 백양사-운문암-능선갈림길-몽계폭포-남창골 → 전남대 수련원 → 주차장 (총 7.2㎞ 약3시간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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