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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가곡 <바우고개> 1절 )

한국인들이 애창하는 대표적인 가곡 가운데 하나인 <바우고개>는 그 동안 작곡가 이흥렬(李興烈·작고)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월북한 극작가겸 연출가 이서향(李曙鄕·본명 榮秀,1915∼?)이 작사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이문학회 마루에서 포즈를 취한 백난영 여사
이서향의 아내 백난영(白蘭英·86) 씨는 최근 발행된 이문학회(以文學會) 회보 <이문회우> 제5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바우고개>는 남편이 14세이던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다 지은 것으로, 훗날 남편의 친구인 이흥렬 씨가 작곡해주었다는 얘기를 남편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이서향과 이흥렬 두 사람은 동향(함남 원산)출신으로 어릴적 친구사이였다.

<바우고개>의 작사가가 이서향에서 이흥렬 씨로 뒤바뀐 것은 이서향이 월북한 이후부터다. 이후 출간된 모든 음악서적에는 바우고개 작사자가 이흥렬로 둔갑돼 있다. 그러나 해방전에 출간된 각종 자료에는 <바우고개>의 작사자가 엄연히 이서향으로 나와 있다.

한 예로 1934년 도쿄(東京) 상문사(桑文社)에서 간행한 <<이흥렬 작곡집(제1집)>>는 가곡 <행복>과 함께 <바우고개>의 작사자가 서향(曙鄕)으로 나와 있으며, 또 1939년 6월 8∼9일 경성 부민관에서 개최된 동아일보 주최 제1회 '전(全)조선창작작곡발표 대음악제' 팸플릿에도 마찬가지로 나와 있다.

▲1934년에 간행된 <이흥렬작곡집(제1집)>에는 '바우고개'의 작사자가 (이)서향으로 나와 있다.

음악계의 한 인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얘기였으나 아무도 이를 내놓고 거론하기를 꺼려했던 사안"이라고 털어놨다.

백 여사는 "한동안 월북작가들의 이름조차 거명할 수 없었던 시대여서 이같은 사실을 밝힐 수 없었지만 이제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 동안 '빨갱이 마누라'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발벗고 나서서 밝히지 못한 내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일본 니혼대(日本大)에 유학, 국문학과와 예술학과를 졸업한 이서향은 귀국 후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당대 최고의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한 이서향은 6·25 당시 서울에 내려와 부인 백 여사를 만나기도 했는데 이 일로 백 여사는 나중에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편 이흥렬은 생전에 자신이 <바우고개>의 작사자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이서향의 가족을 설득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백 여사와는 동서간이자 이서향의 친동생인 음악가 이호섭(李瑚燮·전 중앙대 교수. 작고)의 부인 이화용(李和蓉·80·경기 고양시 화정 거주) 씨는 "남편의 국민학교 시절 음악선생이었던 이흥렬 씨가 생전에 더러 집으로 찾아와서 (바우고개 작사 문제와 관련) 아무 말도 하지말아 달라고 간청을 하곤 했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 이 씨는 "아마 (바우고개가) 금지곡으로 낙인찍힐 것을 이흥렬 씨가 두려워했던 것 같았다"며 "그러나 이제는 원작자를 정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이흥렬 씨의 아들인 이영조(李永朝·58)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은 "이같은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 자료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는 "사실일 경우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1940년 4월 or 5월, 약혼사진
남편이 월북한 이후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마저 꺾여버린 백 여사는 "남편생각을 할 때마다 '이런 억울한 일도 있나'싶어 회한에 사무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白麟濟) 박사의 맏딸로 경기여고, 이화여전 영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백 여사는 미군정시절부터 탁월한 통역(영어)실력을 인정받아온 재원. 한동안 숙명여고 교사를 지냈으며, 이후로는 유명인사들의 영어 개인교수를 하며 지내왔다.

지난해부터 백병원이 세운 경남 김해 소재 인제대학교 생활관에 머물면서 해외입양아 모국유학생들의 모국교육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슬하에 1남(영균·미국 LA거주·공인회계사)을 두고 있는 백 여사는 자신의 회한의 인생 회고기를 <이문회우>에 연재해오고 있다.(이문학회:http://cafe.daum.net/imoon, 전화:766-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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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