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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독립영화협회 주최 제27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KIFF 2001) 개막식에 갔다. 2001년 마지막 달을 시작하는 날 저녁 7시,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폴 해릴 감독의 <지나, 여배우 나이는 29>와 빅터 볼레의 <이모의 데이트>가 개막작으로 상영된 후 동숭 아트홀 행사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막을 연 개막식은 배우 권해효와 <영자>의 주인공 배수진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지난 9월21일의 '조선일보 반대 영화인선언'에 참여한 후 주목을 받고 있는 권해효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공식 행사가 끝난 후 계속된, 독립영화 감독들로 구성된 그룹사운드 '깜장 고무신'의 락 공연에서였다. 한겨레신문(11월30일자) 등에 소개되었던 깜장 고무신의 멤버들(김동원, 황규덕, 강만진, 김일안, 이규만, 민동현)이 무대에 나와 조율을 하고 있는 동안, 잠시 동안의 썰렁함을 권해효는 익살스러운 멘트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왼 팔에 두른 빨간 완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혹시 조선일보에서 오신 분이 계시면 빨갱이로 오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6명의 멤버들은 제각기 개성 있는 복장에 모두 왼팔에 빨간 완장들을 두르고 있어 유독 눈에 띄었는데 이에 대한 재치 있는 해명(?)이었다. 권해효는 단지 선언에만 이름 석자를 올린 것이 아니라 몸에 밴 실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기대학교에서 안티조선을 주제로 강연을 했으며,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행사에도 기꺼이 와서 기여를 하겠다는 약속을 한 터다.
권해효는 <민족 21> 12월호에 인터뷰를 했는데, 여기서 "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안티조선'같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라며 안티조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회를 이끌고 있는 지식층이 말입니다. 지식인들의 문제를 지적하면 오히려 그들은 편가르기를 한다고 비난하면서 문제를 왜곡시켜 버립니다. 그걸 제일 앞장서서 하는 게 조선일보에요. 지면을 무기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관철시키죠. 안티조선운동은 대중과 더불어 우리 사회 지식인, 여론 주도층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운동이라고 봅니다. 여러 사람들이 '안티'를 공개 선언함으로써 앞으로 조선의 인터뷰나 기사 청탁을 거부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장치를 만들자는 거죠."

스스로 "연기 말고는 아는 게" 없다는 권해효는 조선일보의 문제와 안티조선운동의 의미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에서 몸으로 실천한다. 그는 또 이렇게 얘기한다.

"우파는 자기만 지키면 되지만 좌파는 다른 사람들까지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죠. 또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진 사람이죠. 옆집 사람과 마누라가 싸우면 심정적으로야 자기 마누라 편이지만 그렇지 않고 옳은 사람 편을 드는 게 B급 좌파라고 생각합니다."

권해효는 이렇게 자신을 B급 좌파라고 규정한다. 권해효는 김규항처럼 이렇게 자신을 낮추면서도 'A급 좌파'들에게 경종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 하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김규항의 말대로 자본주의의 대안을 알고 있는 듯 한 A급 좌파 지식인들이 극우신문 조선일보를 기웃거리는가 하면, 우파 지식인들이 우려하는 지식사회의 위기를 함께 합창하고 있는 행태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주 간혹 있는 일이긴 하지만,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지식인선언'에 참여하고도 기자의 집요한 공세에 끝내 몇 마디 해주는 사례가 발생하곤 한다.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조선일보에 대한 문제의식이 권해효 만큼 확고하다면 단호하게 자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세상을 읽는 지혜와 철학이 없으면 배우는 그저 광대에 머무를 것이다. 학자도 마찬가지다. 지식 장사꾼으로 머무르지 않으려면 권해효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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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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