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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당 내부의 혁신의 일환으로 제기된 인적쇄신에 대통령의 그림자, 국민의 정부의 2인자, 백의정승이라 불리우는 권노갑 씨와 동교동계의 퇴진이 포함되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돌연한 민주당 총재직 사퇴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권노갑 씨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권력가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자.

역사 속에서 권력가의 끝은 그리 좋지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나친 권력, 독단과 전횡 끝에 반발에 부딪혀 탄핵을 받거나 인위적인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비롯한 연 씨 가문이 그러했고, 고려조의 박술희와 이자겸을 포함한 경원 이씨, 척준경, 무신정권의 주역들, 기철, 신돈 등이 그러했으며, 조선조의 예로는 김종서, 한명회, 박원종, 홍국영, 안동 김 씨, 대원군 등이 예이다.

연개소문은 강력한 독재로 수·당의 침입에서 나라를 구하긴 했지만, 이후 자신의 아들들에게 물려준 권력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로 이른다.

고려의 개국에 기여한 박술희는 나주부인의 소생인 태자 무를 왕위에 올리며 2대에 걸쳐 승승장구하지만, 충주세력인 정종과 광종에 의해 거세당한다. 경원 이씨는 7대 80여년간 외척으로서 권좌를 누리는데, 이자겸에 이르러 자신의 딸들을 두 왕에게 바치며 극도의 권력을 누리고 왕권까지 탐하다가 왕의 밀명을 받은 척준경에게 진압당한다. 이후, 척준경도 권력이 비대해지자 제거당한다.

한편, 무신정권의 시작인 정중부, 경대승 등도 그들이 권력을 잡은 방식인 쿠데타나 쿠데타 걱정으로 목숨을 잃고, 4대 60년간 무신정권의 전성기를 열었던 최 씨 가문도 결국 배신에 의해 종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원나라의 외척으로 고려에서 권력을 구가하던 기철 등 원나라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권신들도 공민왕 등에 의해 축출당한다. 신돈의 경우도, 지나친 권력이 문제되어 최영, 이성계 등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조선조의 김종서는 고명대신이며, 단종정권의 핵심인물이었지만, 너무 큰 권력 때문에 세조 임금에 의해 비명횡사 당한다. 한명회는 예외적인 인물로 살아서는 모든 권력을 누렸지만, 죽은 후인 연산군 때, 부관참시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역사 속에서도 그의 공과와 무관하게 권력의 화신으로 남는다.

박원종은 중종임금을 세워서 권력의 중심에 서지만, 결국 지나친 권력이 화근이 되어 죽게 된다. 홍국영은 정조 임금 등극의 일등공신이지만, 역시 너무 많은 권력 때문에 탄핵받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안동 김 씨 일문은 철종 임금 이후, 외척으로서 풍양 조 씨와 함께 엄청난 권력을 행사했지만, 지나친 남용은 대원군의 등장으로 끝나고, 대원군 역시 지나친 권력으로 아들인 고종 임금과 며느리 명성황후에 의해 견제받고 권좌에서 쫓겨난다.

위와 같이 공과와 무관하게 지나친 권력은 견제와 탄핵을 낳고 결국은 좋지않은 결과로 치달았던 것이 역사가 말해주는 비대권력의 종말이다.

그런 가운데, 재미있는 예는 많은 권력을 가졌거나, 공이 있어 권력의 핵심에 올랐거나 오를 수 있었는데도 평탄하거나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한 인물들도 있다는 것이다.

조선 초의 하륜은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이 되고, 태종 임금을 도와 정변의 승자가 되게 하고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는데도, 평탄한 권좌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분수를 지킨 때문이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경우, 임진왜란에서의 공으로 그 대중적 지지도가 선조임금을 능가할 정도여서 질투를 받는 정도였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함으로써 역사에 길이남는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이 정사이다.

그러나, 야사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전사하지 않았고 숨어서 평화롭게 살다가 죽었다는 설이 있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높아진 인기가 시기와 모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며, 죄목은 전쟁수행 과정에서 임금의 허락없이 나무를 베어서 거북선 등을 제조한 것 등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순신 장군묘가 몇년 뒤 이순신 장군이 자연사했을 정도의 시점에서 이장된 것(이전에는 빈 묘지였는데, 실제로 묻게되었다라는 주장)과 당시의 상황을 예로 들고 있다. 이 밖에도 분수를 지키거나 청백리로서 끝까지 좋은 결말을 본 경우는 의외로 있다.

위와 같은 권력가의 역사는 현대에도 존재한다. 지나친 권력으로 아들에게 죽음을 당한 이기붕, 박정희 정권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이 오히려 대통령과 자신을 죽게 만든 차지철, 지나치게 커진 권력과 신망에 따른 의혹이 탄핵의 빌미가 되어 수 차례 외유를 다녀온 김종필, 권력남용 끝에 감옥에 간 전두환 씨의 친인척, 6공화국의 황태자에서 김영삼 정권 때 감옥에 간 박철언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한편, 흥미로운 또 한 가지 역사는 권력의 수 명은 어디까지인가인데, 그것은 바로 차기 대권창출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박술희나 이자겸, 한명회, 김종필 등 오랜동안 권좌에 있었던 인물들은 비록 그 끝이 좋지 않았거나, 진행중이긴 하지만, 차기 대권에 일정한 공로를 세웠을 때, 유지된다는 점, 또, 권력의 중심인 왕이나 대통령에게 소용이 될 때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역사가 말해주는 권력가의 미래는 왕도 대통령도 그 누구도 아니고, 자신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즉, 분수를 지키고 스스로 물러설 줄 아는 자만이 역사에 좋은 인상으로 남고, 자신의 인생도 평탄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권노갑 씨나 그로 대표되는 현정권의 권력가들의 미래는 명약관화하지 않을까? 권력의 연장을 위해서는 차기대권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고, 좋은 마무리를 위해서는 분수를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 결과가 드러나지 않은 채 진행중인 상황이지만, 권노갑 씨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물론 권노갑 씨를 비롯한 권력의 중심인물들이야 권력의 맛을 안 상태고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역사는 말하고 있다.

" 겸손하고 분수를 지키는 자만이, 인생에서도 역사에서도 생존하는 자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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