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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 한 정치가의 정치 경제사상은 현실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하였는가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그 인물이 현실세계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실천이 기본지침이 되는 이념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당면한 전략적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전략적 과제를 실현해나가기 위한 투쟁방식을 어떻게 선택하고 있는가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10일 경상대 장상환(경제학) 교수가 사회과학연구소(소장 정성진) 주최 월례발표회에서 “김철의 정치경제사상”이란 논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한 말이다. 다음은 장상환 교수가 정리한 김철의 주요 경력과 그의 정치사상 평가 주요 내용이다.

김철은 누구인가

김철(1926~1994)은 일제의 민족강점기에 태어나 우리나라 근현대 정치사의 중심과 변방에 서 있으면서 진보적 정치사상을 펼쳤던 인물이다. 그는 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 제1기생에 응모, 족청과 인연을 맺는다.

1949년 일본으로 건너가 거류민단에 참여하였다. 1952년 귀국해, 자유당 창당에 참여하고, 그 뒤 족청계 숙청에 휘말려 자유당을 탈당하고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다. 일본 체류 중에 사회주의인터내셔날(SI)이 민주적 사회주의의 목적과 임무를 밝힌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읽고 공감하면서 사회민주주의에 눈을 뜨게 된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지만 공산주의는 일당과 계급독재 등 민주주의를 부정한다고 보고 사회민주주의에 사상적인 거처를 발견한 것이다.

김철은 1957년 영구 귀국하여 혁신정당을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1960년 4.19혁명 후 한국사회당에 참여하였다가 총선 참패 후 1961년 통일사회당 결성을 주도하고 국제국장을 맡았다. 5.16군사쿠데타 후 귀국을 미루고 사실상 망명하면서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순방하였다.

김철은 1964년 귀국하여 1965년 양호민 등과 함께 통일사회당 발기대회를 열었다. 통일사회당은 1969년에 한국정당으로서는 SI의 정회원이 되었다.

1970년 김철은 통일사회당 위원장으로 선출되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는 중립화평화통일안을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혐의로 입건되고, 야당 연합의 하나로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였다. 김철은 1971년 광복절에 발표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 요구 성명 때문에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유신체제 하 선거불참을 선언하였고 73년 당은 해산명령을 받았으나, 그 해 12월 다시 재건하여 김철은 고문으로 물러앉게 되었다.

1974년 말 김철은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하였다. 1975년 투옥되어 2년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해외에서 그의 석방운동이 벌어져 만기 다섯 달을 남기고 석방되었다. 1978년, 79년에 김철은 혁신세력의 통일을 위하여 노력했으나 결국 통합에 실패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 김철은 신군부의 입법의원 제의를 수락하여 명예에 오점을 남겼다. 김철은 1986년 사회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수 자리에서 밀려났고, 1987년 7월 ‘사회주의민중협의회’를 구성하여 활동하다가 1994년 별세하였다.

김철의 정치 사상 평가

김철은 민족적인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김철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날에서 정립된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념을 한국사회에 적용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 가입하는 등 국제연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실천의 성과는 크지 않았고, 특히 이후 시기의 진보정당운동에 계승되지 못하였다. 그의 그룹은 현실의 사회운동 주류적 흐름과 결합되지 못하였다. 1980년대의 치열했던 변혁운동세력 내의 사회구성체 논쟁에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김철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한계는 객관적으로 당의 주체역량이 되어야 할 노동자, 농민, 학생, 여성, 문화, 종교 등의 각 분야에 걸친 대중조직이 취약하였던 데서 오는 것이었다. 지역적 조직기반도 취약했다.

그러나 인식과 실천의 방법이 지나치게 연역적이었던 것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 사실에 근거하여 이론과 실천을 검증하는 귀납적 접근이 필요한데 그는 그렇지 못하였다.

결론적으로 김철은 실패한 정치가였다. 그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투철하게 신봉하였지만 한국사회의 각 발전단계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대중과의 결합을 위한 실천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운동을 발전시키고 다음 시기에 계승시키는 과제를 성과 있게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민주사회주의이론을 보급하는 사상가로서의 역할은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철과 그의 그룹의 실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진보정당, 혁신정당운동은 자세에 있어서는 대중의 입장에 분명하게 서면서도 실천방법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실사구시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김철 자신도 강조한 바 있다. “당 이념으로서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는 데는 어디까지나 이 나라의 역사적 현실의 제 조건에서 출발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의 정신과 고투를 계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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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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