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자실의 본질과 허상

기자실은 출입처에서 기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해 준 공간이다. 관공서 등 출입처에서 굳이 예산을 들여 기자실을 운영하는 이유는 출입처 홍보를 위해서다. 그러나 출입기자들이 시민들의 권리나 지역발전을 도외시하고 순전히 '관급자재'(출입처에서 내놓는 홍보-보도자료)와 거기에 따라오는 '플러스 알파(?)'에만 너무 신경을 쓰고 기자실을 개인사무실처럼 사용할 경우 기자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곳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관공서 등 출입처에서는 기자실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집행할 뿐이지 실제로는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이 예산을 마련, 기자실이 운영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작 기자실에 와서 목소리를 높일 자격은 시민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시민들은 기자실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면서 기자실의 병폐를 감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기자실의 실상을 잘 모른다. 출입기자들이 기자실의 실상을 알려 '자기얼굴에 침뱉기식' 보도를 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많은 사람이 큰소리 친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택시 기사도 요금을 주는 승객이 가자는 대로 차를 몰고 간다. 정치인도 정치자금 명분으로 돈을 받은 기업인의 의견을 존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자실은 그렇지 않다. 출입처 기자실 운영을 위한 세금 납부자와 예산집행자는 따로 있는데 큰소리치면서 집주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임대료를 내지도 않고 무료로 기자실을 사용하고 있으면 시민들과 출입처측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시민들과 출입처 관계직원들은 무엇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특히 관변단체가 지방자치단체 청사 내 사무실을 무료로 사용하다 철수한 지 오래인데 기자실은 무슨 특권을 갖고 있기에 무료로 그것도 큰소리 쳐가면서 자기 집과 자기 사무실처럼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관공서 등 출입처 홍보를 위해 출입처에서 기자실 운영예산을 투입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예산은 시민들이 낸 혈세로 마련된다. 따라서 시민들은 관공서 각부서를 맘대로 출입하듯 관공서 내 기자실도 한번씩 방문, 자신이 내고 있는 혈세가 이들 사무실 운영비로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그러나 인천공항 기자실은 시민들의 출입은 고사하고 문화관광부에 똑같이 등록된 언론사 시민기자의 출입을 막았다. 공항 기자실 출입문에 붙어 있는 '등록된 기자 외에 출입을 금합니다'란 문구대로라면 공항기자실에는 출입기자로 등록된 사람 외에는 출입하면 안된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물론 타출입처 중앙일간지-방송사-통신사 기자들, 인천공항 부사장을 비롯한 공보실 직원, 외부인사 등 한 사람도 이곳에 출입할 자격이 없다. 공항기자실과 공보실측은 이를 지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그 해괴한 문구를 떼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군수가 기자실을 없앤 남해군

기자실이 없어지거나 휴게실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 늘고 있다. 경남 남해군, 경북 구미시, 김천시 등이다. 지난 95년 6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최연소로 당선된 김두관 남해군수는 민선자치단체장을 맡고부터 군청 기자실을 없애 전국적인 화제거리를 낳았다. 관선군수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 군수는 가감히 기자실을 없애 한국언론사에 한페이지를 기록할 만한 일을 해낸 것이다.

남해군 기획감사실 정책홍보팀 관계자는 30일 "일각에서는 김 군수가 기자실을 없앤 것은 군수 당선전 지역신문인 '남해신문' 사장으로 있을 당시 받았던 차등대우와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김 군수는 군수를 맡고 막상 일선 행정기관 안에 들어와 일을 해 보니 고스톱을 치는 등 기자실이 소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기자실을 생산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출입기자들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출입하지 않겠다고 밝혀 기자실을 없애게 됐다. 군민들도 기자실에서 쫓겨난 것처럼 보이는 출입기자들을 처음에는 동정했지만 김 군수는 출입기자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면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에 맞서 군정의 잘못된 부분을 들춰내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계속 보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군수의 이같은 공개행정 및 민원인에게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주는 '민원공개 법정제도' 등을 파격적으로 도입, 지난 95년 지방선거에서 36세의 나이로 당선된 데 이어 98년 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 최연소 기초단체장 재당선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정책홍보팀 관계자는 이어 "청사 사무실 공간이 없어 가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남해군의 경우 현재 일간-주간지 등록기자 구분 없이 군수-부군수실 등에서 주요 군정 브리핑을 실시하는 방법으로 군정홍보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 기자실이 다시 마련되면 뜻있는 시민들과 모든 기자들을 모아놓고 건설적인 군정 토론을 벌이고 질의-응답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비회원 기자들이 단합해서 없어진 구미시청 기자실

구미시청 기자실을 없앤 과정은 남해군과는 다르다. 남해군은 군수가 직접 나서서 기자실을 없앴지만 구미시는 시청 기자실 협회에 가입되지 않은 비회원 기자들이 합심해서 기자실을 없앴다.

시청출입기자로 등록돼 있다 지난 94년부터 회원자격을 박탕당한 모신문사 이아무개 기자는 30일 "구미시청 기자실은 지난 93년부터 대구에 본사를 두고 기자협회에 가입된 언론사 기자들만 출입기자로 등록, 기자실을 정식으로 출입할 수 있다는 자체 내규를 만들어 회원과 비회원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시공무원 등도 출입기자 회원들은 주류인 A군으로, 비회원 기자는 비주류인 B군으로 구분해 차등대우했다. 특히 시청 공식 출입기자는 A군 기자만 인정, B군 기자는 기자실도 못들어가 복도에서 왔다갔다하는 '복도기자'라는 호칭을 듣기에 이르러 비회원 기자의 불만은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일부 비회원 기자는 기자실에서 전달되는 촌지를 목격하고 이를 가십기사로 보도하거나 시정 비판 기사를 의도적으로 게재하는 등 방법으로 맞섰다. 그러나 시공무원 등은 비회원 기자에 의해 두들겨 맞는 기사가 보도되면 기자실로 찾아가 해명하기에 급급했고 식사대접 등으로 회원기자들의 입을 막았다.

말하자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거둬가는 꼴'이 된 셈이다. 더구나 기자실로 들어오는 보도자료나 정보는 회원 기자들만 독점할 때가 많아 기자실은 정보공유 공간이 아니라 정보 독점실로 바뀌어 더 이상 참지 못한 비회원 기자들은 기자실 간사 등을 만나 기자실의 편파적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럴 때마다 기자실 간사는 조금만 참으면 같이 출입할 수 있다고 달래곤했다. 그러나 해가 계속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씨의 진술은 계속됐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비회원 기자들은 한자리에 모두 모여 특단의 대책을 강구키로 했다. 바로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자실을 비회원 기자와 똑같이 사용하든지 아니면 아예 폐쇄하라는 내용을 구미시에 정식민원으로 접수한 것이다. 관계공무원은 회원기자와 비회원기자 모두에게 기자실 공동사용과 관련, 이들의 의견을 묻는 공문를 보냈다. 회원기자들은 그러나 비회원기자와 함께 기자실을 사용하면 위신이 깎이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를 들어 차라리 기자실 폐쇄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로써 구미시청 기자실은 없어지고 바로 옆에 있는 문화공보담당관실 사무실로 흡수됐다."

성역은 언젠가는 무너지기 마련

이밖에 경북 김천시청 기자실이 출입기자-김천시간 갈등으로 잠정 폐쇄됐다 지금은 '휴게실' 간판을 걸고 기자들의 휴식공간이나 기자작성 공간으로 활용되는 등 민선자치시대를 맞아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기자실이 없어지거나 휴게실로 이용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인천공항 기자실은 이같은 시대적 추세를 한번쯤 감안했으면 한다. 오죽했으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성유보)이 지난 29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관련한 사태에 대해 성명을 내고 이곳 기자단을 '불한당'이라고 비유했으리.

한국언론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정확히 진단한 민언련측에 박수를 보낸다. 문제는 비단 인천공항 기자실뿐이 아니다.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를 관광성 외유로 간주하고 이들이 사용한 예산의 반환을 요구한 시민단체나 감사당국 등은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관공서 기자실 예산이 어디서 나오는지 충실히 점검해 보아야 하리라. "사람 위에 사람없고 기자 위에 기자없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체 게바라의 금언처럼 삶의 현장 속 다양한 팩트가 인간의 이상과 공동선(共同善)으로 승화되는 나의 뉴스(OH MY NEWS).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