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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그룹 회의실.

승우: 신규사업 확장건은 모두 중단하고, 계열사 여유자금은 모두 끌어 모으십시오. 현재 유동 가능한 자금이 총 얼맙니까?
신팀장: 계열사 통틀어서 350억입니다.
신팀장: 장기풍이 사모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꾸면, 저희 지분도 22. 5%로 하락합니다.
승우: 적어도 45% 이상이 되어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즉시 퍼시픽 아시아펀드 이름으로 삼송백화점 공개매수 들어가십시오. 공개매수가는 만 오천원입니다!

같은 시간 삼송백화점 회의실

달평: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꾸실 겁니까 ?
기풍: 우리가 가진 지분도 22%에서 19.8%로 하락해. 거기다 내 지분 9.6%를 더 하면, 29,4%. 놈들 보다 지분이 앞서. 하지만 양미라는 대표이사 자리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신우에 주식을 넘기기로 했으니까, 9%가 더 합쳐져서, 신우는 31.5%. 우리 보다, 2.1% 앞서게 돼. 우리들 총알은 200억이야. 놈들은 만 오천원에 공개매수를 신청했어. 우린 만육천원으로 신청하는 거야.
채린: 그럼, 다해서 40.7%쟎아. 신우그룹이 45%를 매집하면...
기풍: 나머지 4,3 %에 플러스 알파. 그건 내가 책임진다.
채린: 오변호사님.. 역공개매수 신청하세요! 공개매수 가격은 만 육천원입니다!


최근 종영을 앞두고 시청률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SBS드라마스페셜 <줄리엣의 남자>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원인은 차태현, 김민희 등 신세대 스타들이 펼치는 멜로 연기지만, 줄거리의 뼈대를 이루는 사건이 백화점 경영권을 둘러싼 기업간의 숨가쁜 M&A(기업간 인수합병)전이라는 점이 더욱 재미를 더하고 있다.

특히 흥미있는 사실은 드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M&A 과정이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96년 초 신원그룹의 명동 제일백화점(제일물산)에 대한 적대적 M&A과정이 그것. 결국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삼송백화점의 실제 모델은 촬영 배경인 '삼성플라자'가 아닌 명동 제일백화점이며 신우그룹은 바로 신원그룹을 가리키는 셈이다.

실제 백화점 M&A 사건 모델로 삼아

96년 당시 신원그룹의 제일물산 인수는 동부그룹의 한농인수 이후 첫 적대적 M&A 사례여서 당시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줄리엣의 남자> 조연출 김형식 AD는 "백화점 M&A 과정은 96년 신원그룹의 명동 제일백화점을 인수를 모델로 했으며 각종 수치자료는 IMF 위기 당시 미도파백화점의 자료를 응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돈을 갖고 튀어라', '깡패 수업', '행복한 장의사' 등 영화 시나리오만을 써온 박계옥 작가는 이 사건을 토대로 M&A관련 자료 수집과 취재과정을 거쳐 극본을 썼고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선 회계사, 변호사 등의 자문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드라마는 한 대형 백화점(삼송백화점)이 IMF위기로 금융비용이 올라간 상황에서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고 자금난으로 부도에 직면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결국 백화점 사장인 아버지의 자살로 백화점을 경영하게 된 송채린(예지원 분)과 삼송백화점을 차지하려는 신우그룹의 후계자이면서 송채린의 약혼자인 최승우(지진희 분)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삼송백화점의 2대주주인 양미라(김성령 분)는 1대주주인 채린에 맞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신우그룹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백화점에 100억원의 채권을 갖고 있던 명돈 사채업자의 손자 장기풍(차태현 분)과 소찬비(김민희 분)가 채린을 도우면서 숨가쁜 경영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제일백화점 경영권 다툼이 M&A 촉발

사건 설정이 황당해 흡사 만화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이 드라마의 실제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훨씬 더 극적이다. 76년 명동에 문을 연 제일백화점은 90년대 들어 롯데, 미도파, 신세계 등 인근 백화점 등에 밀려 경영난을 겪는 상황이었다. 당시 제일백화점의 모기업인 제일물산의 1세대 창업자들이 작고한 뒤 후손들간에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고 그 사이에 끼어든 신원그룹이 결국 제일물산을 통째로 차지한다는 것이 실제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다.

92년 제일물산 창업주인 김해동 회장이 작고한 뒤 형제들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1대주주 김인식 회장의 지분이 47%에서 26.35%로 줄어든 것이 발단이었다. 이때 2대 주주로 2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김인준씨는 95년 경영권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고 이 과정에서 신원그룹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마침 유통업 진출을 노리고 있던 신원그룹은 이를 받아들여 계열사와 협력사들을 동원해 제일물산 지분의 20.95%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삼송백화점' 2대 주주 양미라 부사장이 송채린에 맞서 신우그룹에 도움을 청하고 신우그룹이 삼송 지분 확보에 나서는 것까지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96년 1월17일 임시주총에서 신원그룹이 1대 주주의 지분까지 사들여 제일물산을 인수하게 되지만 신원그룹 역시 이듬해 IMF를 거치며 전 계열사가 워크아웃 기업으로 지정되고 만다. 결국 제일물산의 2대 주주가 신원그룹을 '흑기사'(적대적 M&A를 돕는 세력) 삼아 1대 주주를 밀어내려다 회사를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실제 드라마의 결론은 이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정확한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인 오종록 PD는 이 드라마가 'IMF 기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IMF가 터진 것은 97년이지만 2∼3년이 흐른 지금이 그때의 이야기를 할 시점"이라는 것. 덧붙여 "지금 벤처 바람이 분다고 바로 벤처에 관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어설픈 짓"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2~3년 뒤엔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정현준, 이경자 사건이 드라마로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 코스닥신문(55호; 10월30일 발행)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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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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