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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문화개방 이후 처음 이뤄진 일본 대중가수의 대형공연은 차게 & 아스카의 콘서트로 시작됐다. ⓒ 이종호


26일 토요일,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쏟아 붓는 비에도 불구하고 차게 & 아스카의 공연장 안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화장실 줄은 이미 그 꼬리를 복도로 내몰았고, 방송단과 기자들은 삼각대를 가지고 옮겨 다니며 공연전의 모습까지 스케치하려는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무대 양 옆 좌석이 비어있기는 했지만, 예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었다.

공연시작 시간보다 20분이 지난 7시 50분, 갑자기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조명이 꺼졌다. 차게 & 아스카의 홍보 영상이 무대 양옆의 스크린에 비쳐졌다. 단지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차게! 아스카!'하며 반가운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정각 8시. 무대를 가리고 있던 커튼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고함 볼륨은 이미 맥시멈이었다.

그들의 공연은 '돌아오지 않는 그대여'라는 노래로 시작되었다. 아스카는 언제나처럼 흰색 셔츠위에 검정색 쟈켓을 입었고, 차게는 평상시의 야구모자 대신 카우보이 모자에 선글라스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너를 잃으면 나의 모든 것은 멈춰버려.. 언제나 옆에서 용기를 줘'라는 가사의 노래 'Walk', 'Higher Ground', '시간의 파도를 넘는 사랑'을 부른 후, 차게와 아스카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차게는 매우 큰 스케치북을 들고 나와 '자게'라고 쓰여진 페이지를 펼치며, "제 이름은 자게입니다. 잠깐만!"이라며 말을 했고, 그의 익살스런 표현에 장내는 웃음으로 넘쳤다.

"여러분, 첨 뵙겠스므니다. 차게와 아스카입니다. 저는 '자게'입니다. 만나서 반갑스므니다." 차게는 일본인 관객을 염려했는지 '아리가또'라는 말을 짧게 한 후, 다시 한국어로 "오늘 바무를 머시지게 보내브시다"라며 분위기를 돋구었다.

아스카는 자주색 노트를 들고 나와 "안녕하세요, 저는 아스카입니다. 여러분이 많이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므니다. 저희가 한국의 스테이지에 서게 되었스므니다. 저희들은 지금 행복에 가득 차있스므니다. (일본어로 몇 마디 한 후...)감사하므니다. 잠보!!"하고 외쳤다.

▲ 잠실 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운 한일 양국의 팬들 ⓒ 이종호



다른 외국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간단한 한국말을 제외한 모든 말을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차게와 아스카는 한국과 일본관객을 위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스케치북과 노트에 양국언어로 모두 써서 한국어로 먼저, 다음에는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바로 다음 후속곡으로 'Love Song'과 '만남'이라는 노래를 부른 후 차게는 "여러분, 즐겁스므니까"를 두 번 반복해 말한 뒤, "(내 말을)알겠스므니까?"라고 말해 다시 한 번 웃음을 선사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세련된 차게의 무대매너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아스카가 "여러분, 덥지 않으세요?" 라고 묻자, 객석에서 "아니오"라는 대답이 바로 크게 울려나왔다. 콘서트 이틀동안 6000명의 일본인 관객이 방문했다고 하지만, 한국관객들도 꽤 앉아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한국인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아스카는 영어앨범에 들어있던 곡 'The River'를 피아노소리에 맞춰 구슬프게 불렀으며, 차게와 함께 후렴구 'let me take you to the river.....' 부분을 부를 때는 매우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 이종호



차게는 'Tokyo Tower'를 기타연주까지 직접하면서 불러주었는데, 마지막 부분의 일렉트릭 기타소리는 심금을 울렸고, 강한 비트가 인상적이었다.

아스카의 '시작은 언제나 비'라는 노래가 끝난 후, 차게와 아스카는 일본어로 소근대더니, 아스카의 "어이, 친구 노래할까?"라는 질문과 동시에 'No Doubt'의 반주가 시작되었다.

이 노래가 시작되자 객석의 팬들이 대부분 일어나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 노래의 '우리는 여름의 탄 피부가 엷어지듯 헤어졌다' '우리는 사랑의 색을 칠하면서 견뎠어, 물감이 없어진 곳에' 라는 가사부분을 좋아한다는 대학생 이영미씨는 "차게 & 아스카의 노래가사는 정말 한편의 시 같아요"라며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갑자기 무대에 커튼이 올라왔고, 그 위로 'On Your Mark'라는 애니메이션 영상이 쏟아져 내렸다. 'On Your Mark'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던 곡으로서 우리나라에는 비디오영상 또한 처음 소개된 것이다.

영상이 끝나자 차게는 쟈켓을 벗고 티셔츠차림으로, 카우보이모자 대신 두건을 두르고 나왔으며 후지TV드라마 '101번째 프로포즈'의 주제곡인 'Say Yes'와 빠른 템포의 경쾌한 노래 'Heart', '진실이 아닌 나의 눈동자'를 연이어 불렀다. 아스카는 무대 위에 올라가 신나게 춤을 추고 재주까지 넘었다. 팬들의 함성과 호응은 점점 그 강도가 높아지다가 후지TV드라마 '생각해 보면 그가 있다'의 주제곡 'Yah,Yah,Yah'가 나오자 거의 최고조에 이르렀다.

'1969년 빛에 흠뻑 젖어 살았다, 1969년 사랑하는 것들이 곁에 있었다'라는 가사로 콘서트마다 가장 인기리에 애창되는 'N과 L의 야구모자' 연주가 시작되자 한국과 일본의 양 팬들은 '1969' '1969'을 따라 외쳤으며, 공연장은 태양의 불꽃이 떨어진 듯 뜨거워졌다.

ⓒ 이종호
아스카는 [Pride]라는 노래를 부른 후, "저희는 전후세대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를 함께 슬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가까운 나라입니다. 그만큼 우호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우리들끼리 좋은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진심으로 가므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객석에서는 끊임없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고, 마지막 곡으로 'On Your Mark'가 바로 시작되자 아스카는 눈물을 훔치느라 한동안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무대위의 뮤지션들이 모두 사라지자 관객들은 근 5분 '앵콜'을 외치며 박수를 쳤고, 다시 나온 차게와 아스카는 밴드를 소개했다. 한국여성기금의 일행들이 무대위에 올라 꽃다발을 선사하자, 차게는 "사랑합니다"를 외쳤고, "오늘 저희를 초청해주신 한국여성기금과 시민연대여러분, 대통령영부인께 이런 멋진만남을 갖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며 'Something There', '태양 그리고 먼지속에서'를 앵콜곡으로 불렀다.

공연이 완전히 끝나자 평소 선글라스를 벗지 않던 차게는 선글라스를 벗고 '짱!'이라고 쓰여진 스케치북을 들고 무대를 돌며 인사했다. 공연이 끝난 시각은 10시 20분.

일본관객들은 공연장에 불이 환하게 켜지자, 자리에 놓여있던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를 담느라 부지런한 모습이었다. 쓰레기가 많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주워담는 모습이 빨리 나가기 위해 공연전부터 서둘러 출입구를 메운 한국인들에 비하면 그래도 보기좋은 모습이었다.

일본인들의 더 재미있던 행동은 쓰레기를 담다가, 아예 차게 & 아스카와 관련된 물건은 모조리 싹쓸이하는 것이었다. 공연장 의자에 꽂혀있던 팸플릿, 쓰레기봉투로 나눠 준 비닐백, 창문에 붙여져 있던 공연포스터까지 모두 떼어 가는 것으로 부족해, 그 앞에서 판매하는 차게 & 아스카의 뺏지와 기념 포스터를 사느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42살의 아저씨들이 혼신을 다해 만들어낸 젊은 공연, 남녀노소가 함께 하나된 공연이었다.

음반이 발매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연을 열 때, 예상되는 위험성은 너무나 컸다. 음악을 들을 수도 없고, 음반이 판매되지도 않고, 그런 열악한 상황아래서 이번 공연이 그 위험성을 불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매개체가 '음악'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언어도 틀리고 노래의 가사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의 열기가 높았던 것은 듣는 이의 감정에 맞춰 흐르는 리듬, 음악으로 인해 더 강하게 뛰는 심장박동, 그리고 콘서트만이 전해주는 감동의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이종호


그런 의미에서 '차게 & 아스카'의 첫 내한공연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는 비판의 의식도 깊다. 일본 관객 6000명이 공수되어 오지 않았다면 이번 공연은 썰렁했을 것이라는 대부분의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국제화로 인해 문화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가운데, 누구네 나라의 누구콘서트에 누구네 사람이 와서 관람했다는 게 딴지를 걸만한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가수들이 내한공연을 하면, 미군부대의 군인들이 공연을 보러 우루루 몰려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오히려 이번 공연으로 인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어우러져 음악이 주는 기쁨을 함께 느끼고, 뜨거운 공기를 같이 들이마셨다는 것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한 곡도 빠짐없이 라이브로 노래하고, 멋진 무대매너를 보여준 것, 그들의 뛰어난 음악성과 항상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22년 간 다양한 계층의 인기를 받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것은 반짝스타가 많은 한국가요계에서 본 받아야할 것이 틀림없었다.

한국에서의 일본 대중음악의 경쟁력과 대중성을 콘서트 한번의 결과로 속단하는 어리석은 결과는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화교류를 통해 슬픈 과거와 밝은 미래로 가까워질 두 나라의 희망에 실망을 던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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