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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1983년도에 태어났을 때, 나는 서설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순수 우리말인 '눈썰미'에서 따온 것이다. 처음에는 '설미'라고 지어주려다 혹시나 사람들이 딸의 이름을 눈'설(雪)'자에 아름다울'미(美)'인 한자이름으로 오해를 할까봐, 순수한 한글이름이란 것을 알 수 있도록 '설믜'라는 이름으로 결정한 것이다.

딸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전산망구축이 되어 있지 않아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전산화가 되어가는 것에 따라 딸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는 딸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왔다. 그러나, 딸이 가져온 주민증에는 아름다운 이름 '서설믜'대신 '서설므ㅣ'라는 이상한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자기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소유할 수 없는 딸은 주민증을 발급받았다는 기쁨보다 이름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으로 인해 슬픔과 스트레스를 껴안고 있었다.

딸의 이름을 찾아주고자 관공서에서 한글학회 등을 돌아다닌 나는 결국 '어쩔 수 없다'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다음은 아버지인 내가 딸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적어 본 글이다.

전자주민증에 이름이 기재되지 않는다고?
"예, 주민증뿐만 아니라 여권, 은행통장 등 행정 전산망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제 이름이 표시되지 않습니다."

올해 나이는?
"만 17세입니다."

기분이 어떤가?
"오랫동안 당해 온 일이라 특별하지는 않지만 찝찝합니다."

이름을 말씀해 주겠습니까?
"서설믜입니다."

어느 부문이 기록되지 못하는 거지?
"'믜' 가 '므 l' 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의' '늬' 는 기록됩니다만 유사구조의 음절 문자는 기록되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름에 의미가 있을텐데.
"네,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

행산망에 기록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지?
"우리나라 행정 전산망이 우리말의 구조와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손으로 얼마든지 잘 쓸 수 있는 제 이름을 컴퓨터에 그대로 기록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합니다. 지금 현재 21세기 첨단 전자 시대에 제 이름을 기록못하는 컴퓨터 때문에 공식적이고 사회적인 제 이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명백한 인권침해입니다."

지금 행정전산망 코드가 완성형이어서 고치기 어려울텐데 난감하겠어.
"나라에서 하는 일이 왜 이렇게도 허술한지 모르겠어요. 우리 말의 구조와 원리에도 안맞는 방식을 컴퓨터의 코드로 만든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쓰이거나 안 쓰이거나 앞으로 쓰일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우리 말이라도 다 기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천지에 어느 나라가 제 나라 말을 다 기록못하는 문자 코드를 사용할까요? 정말 이해하기 어렵군요."

앞으로 할 일은?
"제 이름을 공식적으로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선 민원 제기부터 해야겠지요? 제 이름이 먼저 나고 행산망이 생겼으니, 분명 행산망의 준비가 부족한 탓이고 그 책임은 순전히 국가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나라 행산망은 완성형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우리말의 언어의 원리와 구조에 비추어 볼 때 조합형이 맞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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