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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중학교에서 발생한 집단폭력 사건이 인터넷의 게시판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뒤덮고 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길래 그같은 학내 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이회창 총재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일까.

사태의 개요는 이렇다. 문제의 폭력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4월. 성수여중의 폭력 서클 구성원들이 한 학생에게 잔혹한 방식의 집단폭력을 가했다. 피해 학생은 40일 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상을 입었고,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가해 학생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버젓이 학교를 다니고, 거꾸로 피해 학생은 전학을 가야 하는 모순을 보다못한 피해학생의 어머니가 탄원서를 썼고, 그 내용이 PC통신과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네티즌들의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사건의 불똥이 이회창 총재에게 튄 것은 가해 학생 중 한 사람인 김아무개 양이 성수여중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협박성 글 때문이었다.

"(중략) 니네들 자유총연맹이 어떤 단체인 줄 알어? 아무려면 내가 뒷일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그 년을 두드려 팼겠냐? x신들아. 글구 강조하지만 울 아빠의 자유총연맹은 아무도 못 건들여. (중략) 그리고 울아빠가 그러는데 담 대통령은 이회창 씨가 된다고 하셨어. 이회창 씨는 울 아빠 단체 편이라고. (중략) 앞으로 2년만 버티면 울 아빠는 진짜 아무도 못 건들여."

이런 글을 올린 가해 학생은 자유총연맹 지역 지부장의 딸이었고, 평소 아버지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이회창 총재의 홈페이지에는 자유총연맹과 이회창 총재의 관계를 밝혀라, 성수여중 폭력 사건에 대해 해명하라는 글들이 게시판을 덮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는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회창 총재는 자유총연맹과 무관하다는 홈페이지 운영자의 해명이 있었지만 네티즌들의 해명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보아 원내 제1당의 총재가 자유총연맹의 뒤를 봐주고 있을 리도 없고, 더구나 한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의 진상을 해명할 입장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한나라당이나 이회창 총재의 입장에서는 봉변을 당한 기분 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몹시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터넷과 PC통신의 게시판에서는 네티즌들의 성화가 빗발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주요 자료들은 수천 건씩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온라인상의 이곳 저곳을 뒤덮고 있으며, 여러 개의 대책 모임 사이트들이 운영되고 있다.

거기에는 학교 폭력에 대한 대책 요구에서부터 이회창 총재에 대한 해명요구까지 갖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한 여중학교의 폭력사건과 관련하여 이회창 총재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회창 총재를 이 사건에 끌어들이는 것은,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추론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정작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초래된 배경에 대해 주목한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해명을 요구하고 있는 많은 네티즌들은 상식적인 추론조차 하지못하는 바보들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느닷없는 봉변이든 아니든, 이미 많은 네티즌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이 사태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많은 네티즌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이회창 총재와 자유총연맹이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적 예단이 자리하고 있다고 나는 진단한다.

여기서 자유총연맹은 현재의 남북화해 정국을 못마땅해 하며 정권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극우보수 세력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회창 씨는 울 아빠 단체 편"이라고 아빠가 말했다는 가해 학생의 글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이 총재가 극우보수 세력의 대부격인 위치로 떠받들여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앞으로 2년만 버티면 울 아빠는 진짜 아무도 못 건들여"라는 가해 학생의 말에서 섬뜩한 느낌을 갖게 된다. 아 그렇구나! 세상이 이대로 아주 바뀐 것이 아니구나! 언제 다시 뒤로 돌아갈 지 모르는 것이 우리 현실이구나!

그 철없는 가해 학생이 내뱉은 말은 나에게 새로운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정말로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이 되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학생이 말한 "울 아빠를 진짜 아무도 못건드리는" 세상은 도대체 어떠한 세상을 말하는 것일까. 그래서 이번 사건은 철없는 여학생에 의해 빚어진 해프닝으로만 넘겨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나는 이회창 총재가 이번 사태를 어처구니없는 봉변으로만 넘겨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여중학교의 폭력 사건과 야당 총재의 관련이라는, 상식에서 벗어난 그같은 예단에 어째서 그렇게 많은 네티즌들이 의식적으로 공감하고자 했는지, 그 의미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이회창 총재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만 있다면, 이번에 치르는 봉변의 대가는 보상되고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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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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